프롤로그'''' 김이 뿌옇게 서린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영상은 매우 나른하면서도 야릇한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한 면은 온통 거울로 덮여 있었다. 그 거울 속에서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가 각각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눈을 감고 따뜻한 물을 즐기는 모습은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한층 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탕 정 중앙에 마치 해초처럼 일렁이며 누워있는 모습은 아까 본 남녀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정말 거짓말처럼 평범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몸의 어느 한군데도 물 밑바닥에 닿은 곳 없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모습이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작은 얼굴의 반은 이미 물에 잠겨 보이는 것은 중앙에 모여 있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전부인데 그 보이는 선들이 매우 가늘고 고운 것이 여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째든 그들 모두가 전부 눈을 감고 따뜻한 온기와 힘찬 물방울의 감각을 보기에도 나른할 정도로 즐기는 모습이 오늘 하루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드는 지친 표정들이었다. 각자 따로 명상에 잠겨 있는 그들 모두는 표면상으로 그 안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무심해 보였다.' 기묘한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왼쪽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넓은 침대 같으면서도 쿠션감이 없어 누워 자기에는 어쩐지 불편 할 것 같은 조금은 이상한 고급스러운 평상 같은 것이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조금 높은 벽에 위치한 툭 튀어 나온 굉장히 큰 물뿌리개 같은 샤워 부스 세 개가 각자의 자리에서 샤워하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샤워 부스의 수는 이곳이 지금 탕 속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이 매일 같이 사용하는 전용 욕실인 것을 살며시 암시하는 듯 했다. 그리고 거대한 거울과 마주보는 나머지 한 벽면은 전부 유리로 되어있어 거기가 출입구라는 것이 상상이 안갈 정도로 문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탕 속의 세 명과도 어쩐지 닮아 보이는- 대형 미닫이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생긴 통 유리가 욕실을 출입하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유일한 물건은 끝에 달린 작은 나무 색의 문고리가 전부였다. ' 그렇게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독특하다면 독특한 욕실의 한 가운데는 공중목욕탕도 울고 갈 초대형크기의 탕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곳을 사용하는 거울에 비친 세 명의 사람들이 마치 육식 동물들처럼 각자의 텃세권을 주장하는 듯 조금씩 간격을 두고 떨어져 들어가 있는 것이 가능하게끔 하였다. 탕은 그 크기만큼이나 성능 면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엄청난 물방울이 끝임 없이 뿜어대는 대형 스파가 위풍당당하게 설치되어 있어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돈을 많이 사용해 만든 곳이 확실한 듯 그곳을 사용하는 지친 표정들의 사람들을 한결 편안한 얼굴로 차츰, 차츰 바꿔 가고 있는 중이었다. '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명상에 빠져있는 시간이 대략 30분가량 지났다. 남자와 마주보고 있던 여자가 중앙에 있는 인간 해초를 향해 유유히 움직여 미끄러지듯 매끈한 수영 솜씨를 뽐내며 다가갔다. 거의 닿을 듯한 가까운 위치에서 멈춘 여자가 물 속에 잠겨 있어 일렁이게 보이는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차가운 한마디가 조용한 장막을 깨트리며 울려 퍼졌다.' “떨어져.”' 약간은 허스키하고 낮은 미성. 하지만 지독히도 차가웠다.' 스르르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