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헉!'이게 무슨 소리일까? 이상한 상상은 금물이다. 이것은 열여덟 여고생 청아가 지각을 면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리는 소리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 다행히 교문이 보였지만 경계선을 밟자마자,'“지각!”'누군가가 외쳤다. 돌아보면 그가 있다. 완벽한 마스크에 정떨어질 정도로 깔끔한 교복 차림의 그가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청아를 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표정에는 유치원 때부터 짝꿍만 해온 죽마고우로서의 다정한 미소, 혹은 봐줄 수도 있다는 너그러움 따위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가 내뱉었다.'“토끼뜀, 오십 번!”'청아의 얼굴이 온통 구겨졌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가련한 시선으로 애원하는 청아를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외면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바로 서정민, 너무 잘나서 탈인 청아의 냉정한 소꿉친구이다.'낑낑!'청아는 이미 자율학습이 시작되어 조용한 학교 교정을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다. 토끼뜀 오십 번은 연약한 여학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게다가 지각이 워낙 잦아 매일 되풀이하다 보니 그녀는 이제 자신이 토끼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여린 허벅지와 종아리에 알이 배어 끊어질 것 같다. 그러나 청아는 지각을 한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이런 가혹한 처사를 내린 냉정한 친구 정민을 향해 구시렁거렸다.'“정말 나쁜 녀석, 한번 눈감아 주면 오죽 좋아? 내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쿡쿡.'무거운 가방을 멘 채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그녀의 뒤를 누군가가 웃으며 따라오고 있다.'“다리 많이 아파?”'“흥, 무슨 상관?”'청아는 화가 나서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안면몰수하고 차갑게 대할 때는 언제고, 지금 병 주고 약 주니? 청아는 어느새 자신의 앞을 막아선 정민을 사납게 노려보고 지나치려 했다.'“자, 업혀.”'그런데 그 냉정한 녀석, 그녀의 앞에 등을 보이며 앉는다.'“됐어. 저리 비켜.”'내심 하늘을 나를 듯 행복했지만 여자는 튕겨야 한다기에 그래보았다. 솔직히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절대 이대로 넘어가 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자,그가 선이 고운 얼굴로 엷게 웃었다.'“알았어. 미안해.”'“치.”'저렇게 예쁘게 웃으며 사과하고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청아의 전투력은 상실되어 버리고 만다.'절뚝절뚝, 청아는 못내 억울해서 몇 마디를 중얼거리고는 다리를 끌며 걸어가 그의 등에 척 업혔다. 키가 큰 그는 청아를 가뿐하게 업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저기까지만 업어 준다. 내일부터는 지각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