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사시간 내내 남자의 귀에는 신부님의 설교가 들리지 않았다. 하늘은 작은 티 하나 없이 파랬고, 여름 햇볕은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뜨겁고 강렬한 햇빛이 싫지만은 않은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미사 시작 전에 우연히 본 여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단아한 옷차림과 몸매. 맑은 물처럼 투명한 피부와 고혹적이기까지 한 눈매. 무엇보다 한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 옅은 분홍색 입술 사이로 내비치는 새하얗고 고른 치아를 보며 강현은 아득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던 그였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것일 텐데 혹 그렇게 해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알아가면서 실망이 적잖을 거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지민을 보며 자신이 여태껏 갖고 있던 그 생각을 단 순간에 바꿔버렸다. 첫눈에 반할수도 그리고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정신없이 따라 나왔지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처음 보는 남자가 다짜고짜 말을 건다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마음은 급해지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후면 독일로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첫눈에 반한 그녀를 그대로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를 따라 나섰지만 그녀의 옆에는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함께였다. 무작정 그녀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그녀의 집을 알아내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너무도 고맙게 목소리가 무척 커서 조금 사이를 두고 따라가는 강현에게까지 그들이 하는 대화가 들려왔다.''“언니, 이번 주 토요일언니 생일이잖아. 친구들 만날 거야? 어떻게 할 거야?”''“글쎄. 소윤이가 애들하고 다같이 모이자는데.”''“그래, 언니들하고 신나게 놀아. 나이트도 가구.”''그녀의 가족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집 앞으로 지나쳐 돌아온 강현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너무도 우스웠다.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와 그녀의 집을 알아내고, 우연히 알아낸 그녀의 생일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궁리를 하는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우스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여자의 모습이었다. 운명 같은 느낌.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도 운명이란 단어가 떠오를 만큼 강한 느낌으로 어필한 여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25년간 강현에게 있어서 그런 느낌, 혹은 그와 비슷한 느낌의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말 한마디 해보지 않고, 단지 겉모습만 보고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수없는 혼란이 거듭되며 강현의 머리를 괴롭혔지만 지민의 편안하고 따뜻해 보이는 미소와 미사포를 쓴 단아하고 청초한 그 느낌은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 강현에게 남아 있었다.''금요일 아침부터 그녀의 집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 문밖으로 나오면 괜히 그곳을 지나가는 척 걷기도 했고, 운동을 하는 척 팔을 올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다시 대문이 열렸고,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뒤로 모두 넘겨 묶은 검은 생머리. 쉬폰소재 핑크색 원피스와 흰색 볼레로 카디건.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와 너무도 걸맞은 옷차림이었다. 강현은 크게 숨을 내쉬고 그녀의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