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만세!”'겨울방학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학교 동관 건물을 나오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이제 학교여! 1년 동안 안녕이다.’'발걸음도 경쾌하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강이경 22세. J여자 대학교 3학년. '오늘부터 일 년 동안 휴학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한 후 에 6개월 동안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올 예정 이었다. 아직 아르바이트는 알아보는 중이었지만 조만간 꼭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굳게 다짐중인 이경이었다.'모자란 부분은 집에서 각출. 엄마는 나중에 시집갈 때 떼고 준다지만 알게 뭐랍니까. 그때는 그때 가서 또 배를 째면 되는 것이지.'깡충깡충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를 나서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울려댔다.'“어. 이진호. 웬일이냐?”'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같은 서클 출신인 진호. '“뭐? 그래? 그런데 너희 학교 너무 멀잖아.”'연합서클 친구들 몇 명이서 진호네 학교인 M대 앞에서 모이기로 했단다. 진호네 학교와 이경이네 학교는 무려 서쪽 끝과 동쪽 끝인데 말이다. '“뭐? 강유 오빠가 쏜다고?”'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이경이의 귀에 들어오는 솔깃한 한마디. 연합 서클 선배가 쏜다고 하니 마음이 쏠린다. 웅얼웅얼 망설이던 이경은 마침내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뭐. 휴학도 했는데 며칠 노는 거 상관없잖아. 릴렉스! 릴렉스!”'혼자,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알바 같은 거 내일부터 알아보면 될 텐데 뭐.'지하철 한번,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진호네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진호의 학교인 M대는 언덕 높은 곳에 있는 학교였다. 등산을(?)해야 해서 이경은 내내 투덜거리며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걸어가는 사이, 진호에게 또 전화가 왔다.'“응. 너희 학교 앞. 산타는 중이다. 뭐? 한 십오 분 늦는다고? 다른 애들은? 아, 뭐야. 그럼 내가 첫 타야? 머나먼 곳에서 열심히 달려 왔건만 너무들 하네. 흥. 알았어!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테니까 끝나고 나서 전화해 줘.”'진호를 비롯한 이 학교 애들이 전부 늦는단다. 전화를 끊고 이경은 혼자 다시 툴툴거리며 언덕을 올라갔다. '“어? 이 길은 뭘까?”'열심히 오르막길을 오르던 그녀는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골목길을 발견하고 우뚝 섰다.'진호네 학교에 올 땐 늘 오던 길만 왔었지. 이 골목으로 가도 학교가 나오려나? '왠지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직전해서 오던 몸을 돌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을 한 걸음인 줄도 모른 채, 그녀는 그렇게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높은 담장들이 쭉 늘어서 있는 저택들은 온통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높은 담장들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나무들은 무성할 때로 무성해서 이경은 마치 숲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버렸다. 이기적인 높은 담장만 아니라면 정말 멋있었을 텐데. 그렇게 골목길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가는데 눈앞에 커다란 집이 한 채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