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트럴 파크를 돌아 큰길을 쭉 따라가면 69번가 모퉁이 앞에 누구나 아는 앤티크 호텔 <잠시만요>가 있다. 오늘의 임무는 에 투숙한 한 남자를 감시하는 일이다.' 이렇게 추운 날에 얌전히 집에나 들어갈 것이지 무슨 바람을 피운다고 돌아다니는지 모를 노릇이다. 집에 가서 뜨거운 코코아나 마시면서 <노티스>나 보면 좋겠는데. 엘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하얗게 번지는 입김과 존재감을 알리는 콧물을 참으며 빠르게 걸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몇 호더라?”' 일단 화장실로 직행해 마이크가 찔러 넣어 준 쪽지를 찾았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다가 겨우 꺼내 펼친 쪽지에는 마이크가 괴발개발로 그려 놓은 것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1107호, 제이크 노이먼, 무역상, 10살 어린 여자와 바람피우는 현장 사진이 필요함]' “나쁜 놈! 말미잘 같은 게. 하긴 남자만 미쳤나, 유부남을 만나는 여자도 미친 거지.”' 엘리는 구시렁대며 증거 확보에 필요한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냈다. 척 보기에도 싸구려였지만 어제 마이크가 특별히 줌이 잘되는 거라며 조심스럽게 건네준 거였다. 물론 기가 차다는 눈빛에 찔리는 심정을 숨기지 못하더니 여차하면 버리라고 준비했다며 더듬거리긴 했다. 그러나 정말 버리게 되면 못해도 사흘을 통곡하며 물어내라 할 거라는데 빈약한 통장 잔고의 전부를 걸 수도 있었다. 한숨을 쉰 엘리는 놓치지 않게 낡은 끈을 손목에다 걸어 둔 상태로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을 나섰다.' 땡! 나름 긴박한 흉내를 내며 벽을 따라가서 호수를 확인했다.' “여기다. 1107호. 근데 어떻게 기다리지?”' 일단 방문 앞까지 오긴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리자니 배도 고프고 심심하기 그지없다. 지나가는 손님들이 뭐라고 보겠냐고. 무엇보다 혹시나 호텔리어들과 부딪힌다면 수상하게 여겨져 쫓겨날 것이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 엘리는 반대편 복도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1107호의 문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얌전하던 문고리가 돌아간다.'“헉!”' 서둘러 지나가는 투숙객인 척 해보려 했지만 이미 복도 끝이었다. 밖으로 난 창문을 뚫고 공중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면 수상하게 볼 시선을 피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당황한 엘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1108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문이 열렸다.' 엘리는 자신을 힐끔 보는 제이크 노이먼을 향해 어색하게 웃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1108호로 들어갔다.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문이 열린 걸로 봐서 백십 퍼센트 있겠지만-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문고리를 살짝 잡았다. 그리고 열린 틈 사이로 힘겹게 눈을 붙여 복도를 서성이는 제이크가 빨리 가기만을 빌며 훔쳐보았다. 제발 방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해주…….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