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적룡은 영상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빠져나가려 머리를 굴러보아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각 마을에 일어났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얘기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매주 한 번씩 하는 영상 회의는 아주 중요했다. 한 주에 발생한 마물 습격 사건이나, 처리 결과, 그리고 각 마을의 정세변화를 얘기하며 필요한 조력을 얻는다. 경우에 따라선 군대파견 요청도 한다. 적, 흑, 백룡마을은 성역 외부 타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군사적인 부분에서 열세다. 또한 외국이란 난점으로 군대파견 요청은 외교적인 수순도 밟아야한다. 이런 모든 문제를 주간영상회의에서 결정해야 한다. ''- 섭섭하구나, 적룡아. 내가 미덥지 않니?''“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형님.”''- 그런데 왜 말을 못하는 거지? 우리들이 네 상담상대로 부족한 것 같구나.''“그렇지 않습니다, 형님!”''형님 청룡이 저 자세로 나오면 무조건 실토를 해야한다는 소리였다. 적룡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흑룡과 백룡을 흘겨보았다. '사전에 모의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룡이 저런 말씀을 할 이유가 없었다. 꼭대기 형인 청룡은 동생이 어떤 문제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이처럼 대놓고 묻거나 하지 않는다. 잘 해결하겠거니 지켜봐주고, 정 안 되어 도움을 청하면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는 사람이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저리 물어보고 있단 말이야. 이 일을 어쩌지? 그냥 해결된 다음에 말씀드린다고 고집을 부려봐? ''- 난 네가 무척 걱정되는구나, 적룡. 언제나 그렇듯 난 널 믿는다. 네가 어떤 일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지켜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형제인 우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인가? 네 얼굴이 나날이 수척해져 가는 걸 빤히 보고 있는 게 괴롭다. 무엇이 널 괴롭히고 있지? ''적룡은 놀라 입을 헤 벌렸다. 영상 속 청룡이 단정한 얼굴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적룡?''“아, 아닙니다, 형님. 그저…….”''- 그저?''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청룡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네 용들의 장자인 청룡은 언제나 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끝낸다. 저렇게 좌르르 쏟아내는 경우가 없었다. 동생들인 자신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청룡의 근처에 있으면 오한이 든다고 할까. 그 차가운 기운을 왕창 뿌려대고 있는 통에 그 기운을 못 이겨 사라진 보좌관 수만해도 열이 다 되어갔다. 이번 청룡의 보좌관도 위에 구멍이 나서 입원해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새로 보좌관을 뽑아야하지 싶었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차가움으로 인해 오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못 이겨 없는 병도 생겼다고 몇 번째 보좌관이 말하며 사직서를 냈지? 한동안 그 화제로 떠들썩했던 것 같은데. ''적룡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청룡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청룡의 성격을 생각해볼 때 저런 말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혹시 두 동생들이 일러준 대로 읊고 있는 건 아닐까?''적룡은 흑룡의 능글맞은 모습과 백룡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대화가 오고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왜 그러지, 적룡? 내 질문에 답을 하기 곤란한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말끝을 살짝 흐리며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한 청룡을 보니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천하의 청룡 형님이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어? 가슴이 울렁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