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사랑의 재회

또각- 또각-

사무실 밖, 구두 굽 소리가 자자하게 들리는 오전.

한 여성이 사무실 복도를 누비며 걸어왔다.

찰랑거리는 검은 긴 생머리에 가녀린 체구, 빨려 들어갈 것은 검은 눈동자와 작은 얼굴에 쌍꺼풀 짙은 눈, 오뚝한 코, 생기 가득한 도톰한 입술.

그녀의 이름은 김초희, MJ 기업의 오래된 사원이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안녕하세요.”

“초희 씨, 좋은 아침이에요.”

짧은 인사에도 다들 바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하여 떨떠름한 인사가 끝나고 그녀는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

“하….”

초희는 퀭한 눈으로 짙게 깔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평범한 대학에 졸업하면 꿈에도 못 꾼다는 이 MJ기업. 사실상 알아주는 대학 들어갔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회사가 대단한 만큼 하는 일도 두 배일 터였다.

“초희 씨, 그거 알아?”

“네?”

“아니, 글쎄 오늘 새로 오신다는 과장님 있잖아!”

“아, 그래요?”

당최 왜 신이 나 있는지 모를 판이었다.

대꾸해 줬으니 빨리 가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녀가 컴퓨터 모니터를 켜자 최 사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최 사원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울긋불긋한 얼굴이 되곤 했다.

점점 똥 씹은 낯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자리를 옮겨 다른 사원에게 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 언제나 코가 막히고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아, 오늘따라 어깨가 뭉치네….”

초희는 목을 돌리며 어깨를 두드렸다.

“어제 야근하더니만, 몸이 많이 힘든가 봐?”

“아, 다 그렇죠. 뭐….”

“휴식실에 커피믹스 좋은 거로 바뀌었던데 가서 좀 쉬고 와요.”

유 사원은 초희의 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녀의 눈이 반으로 접히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쩌면 그녀를 챙겨주는 사람은 유 사원밖에 없을지 모른다.

시간을 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밤새도록 한 근무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도 나왔다.

오전 8시.

휴식실에는 단 한 사람도 있지 않았다.

초희는 조용한 때를 틈타 커피믹스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에 탔다.

은은한 커피 냄새가 한순간 휴식실에 넓게 퍼졌다.

그녀는 자리를 옮겨 옆에 있는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산 지 꽤 됐는데, 아직도 답답해서야….”

얕은 숨을 내쉬곤 커피가 든 종이컵을 천천히 돌리며 경치를 구경하였다.

어제서부터 넋을 놓더니 이젠 바깥 경치를 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곳에 시간을 쏟게 된 것인지.

초희가 정신 차릴 땐 이십 분이 지난 후였다.

“뭐 안 좋은 일 생기려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그녀의 미간이 찝찝한 예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금방 종이컵을 버리곤 사무실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사무실에 도착한 지금 듬직해 보이는 남성과 옆에 찰싹 붙어있는 연 대리가 눈에 띄었다.

“초희 씨, 왜 이제 와! 새로 오신 과장님이셔.”

“아, 안녕하세요. 과장님.”

초희는 과장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고개 숙여 인사부터 했다.

과장은 인사를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슬슬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더는 가만히 숙일 수는 없어 고개를 올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동공이 떨리며 제대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없었다.

학창시절보다 성숙해진 베일 듯한 조각형 미남. 키도 조금 더 컸는지 그녀의 키는 그의 어깨까지 밖에 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존재감이 너무 큰 그 사람은 새로 오게 된 조태훈 과장이 맞았다.

이 사람이 초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게 관건이었다.

‘조태훈…?’

헛것을 보는 듯싶어 눈을 비비적거렸다.

“초희 씨? 안녕하세요. 새로 온 조태훈 과장입니다.”

“……!”

태훈은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야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순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한 번에 알아본 자신도 대단하다 느껴졌다.

어쩌면 그도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아닐까.

태훈은 초희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베일에 싸인 인사만 끝내고 태훈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초희는 과장과 달리 혼자서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초희 씨? 뭐해. 안 들어오고.”

“아, 죄송합니다.”

호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초희는 삐딱하게 굳은 다리로 조심스레 자리에 가 앉았다.

그 일이 뭐라고 초희는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타자치는 소리와 인쇄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런 건 잘만 들리는데 사람들의 말소리엔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신경 쓰지 말자….’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헛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조태훈. 대한민국이 좁긴 좁구나…. 여기서 첫사랑도 만나고.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MJ기업.

이런 회사에서 학창시절에 숨이 막힐 정도로 좋아했었던 첫사랑을 만났다.

그것도 상사와 직원으로 간별이 간 상태로.

정신 차리기는 개뿔.

초희는 멍하니 업무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설렁설렁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그때, 초희는 종이에 꽂으려 했던 압정이 손에 스쳤다.

“초희 씨, 괜찮아요?”

“네…? 괜, 괜찮습니다!”

태훈은 초희와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재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살폈다.

손엔 핏기가 조금 고인 정도였다.

작은 상처였지만 크게 반응하는 그의 모습에 초희는 발음이 허술해졌다.

자신을 보고 걱정하고 있는 태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그때와 똑같았다. 초희가 다친 것을 보면 바로 달려 와주는 태훈이었다.

‘진짜….’

초희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였다.

그러니 지금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겠지.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았다. 다시 만났다는 것이 왜 이렇게 더 속상한 것인지 몰랐다.

초희는 자신도 모르게 태훈의 팔을 낚아채 잡았다.

“초희 씨?”

태훈의 팔을 잡은 상태로 그녀의 팔이 부들거렸다.

태훈은 난감해했지만, 초희는 그런 표정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시는 놓아주기 싫은 것처럼 그녀는 태훈의 팔을 더욱 조여오고 있었다.

****

나이, 18살. 초희는 처음으로 사랑의 눈을 뜨게 되었다.

“야, 태훈 오빠 얼굴 닳겠다. 닳겠어.”

민주가 같이 있기 귀찮은 듯 투덜거리고 있었다.

“뭐래, 조용히 좀 해봐. 우리 오빠 얼굴에 집중하게.”

“널 누가 말리냐.”

“알면 조용히 해라.”

민주는 태훈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초희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초희의 곁에서 같이 있어 주는 것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조각이야. 아주 그냥! 저 날카로운 턱선, 날카로우면서도 매끈한 콧대, 베일 듯 날카로운 저 눈! 무슨 사람이 저렇게 생겼냐, 진짜…. 황홀하다.”

“넌 진짜 미쳤어.”

“맞아…. 그런 것 같긴 해.”

초희는 긍정을 표시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민주는 초희의 등짝을 아무 말 없이 세게 내리쳤다.

초희의 표정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민주의 손맛이 얼마나 센지 알게 해줬다.

민주는 더는 못 참겠는지 초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넌 여기서 계속 보고 있어라. 난 들어간다?”

“나 혼자 여기 있으라고?”

“난 갈 거야.”

“야! 허민주!”

민주는 그 자리를 달리다시피 벗어났다.

민주의 이름을 있는 힘껏 불러봤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도 초희는 혼자 한참 그곳에 머물렀다.

조금 더 서 있었을까, 태훈이 공책에 뭘 적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 무슨 저런 모습까지 완벽하니…?”

초희는 푹 빠져서는 벽에 기댄 채 느른하게 웃었다.

“헙!”

태훈은 잠시 느껴졌던 이상한 촉에 미간을 찌푸리며 초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초희는 재빨리 벽 뒤에 숨어서 들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본 건 아니겠지…?’

벽에서 나와 태훈이 눈치 챘나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하였다.

생각할수록 골머리를 앓아 자신의 교실로 일단 뛰고 보았다.

계단을 내려갈 때 아슬아슬하게 안 넘어진 게 다행이었다.

반에 들어온 초희는 눈엔 힘이 한층 풀려있었다.

민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살풋 고개를 꺾었다.

“너 왜 벌써 와?”

“하…. 너무 떨려.”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가쁜 숨을 고르느라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뭐라고?”

“떨린다고!! 태훈 오빠가 나 봤으면 어떡해!”

“왜 이래….”

민주의 떨어졌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쳤다….’

뭐 아무 일도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혼자 호들갑이었다.

그녀의 복숭아마냥 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시선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바보같이 맥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해왔다.

“후하, 숨이 안 쉬어져.”

“그래, 잘 죽어.”

“아, 허민주!”

“왜 뭐, 또. 왜 소리 질러!”

민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구겼다.

****

하굣길에 어쩌다 말을 걸어 태훈과 친해진 지 넉 달이 지난 지금.

사랑이란 감정이 절대 식을 수가 없었다.

그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해맑게 웃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오늘 태훈 오빠 농구 경기한다고!”

“어쩌라고….”

“같이 가자. 응?”

“아, 귀찮게 정말!”

초희는 민주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급히 뛰어나갔다.

민주는 정색을 내밀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냥 초희에게 그냥 잡혀가는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