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자신의 관아로 다녀온 수령 뒤로 응참각인들이 따라 들어왔다. 포도청으로 들어오자, 자신들이 죄인이 된 듯 주변을 겁먹은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청사의 집무실이 열리며 체건이 나왔다. 그들 앞에 체건이 다가갔다.

“포도청에선 이씨의 자백을 바탕으로 조사서를 작성했다. 검시관은 검안서 가지고 왔나?”

“예, 나리.”

수령의 뒤에서 검시관이 나와 검안서를 내밀었다. 검안을 받아든 체건이 대청의 의자에 앉고, 수령과 아전들, 그리고 응참각인들은 한쪽으로 도열해 섰다. 그들 역시 땅에서 올라오는 역한 냄새가 힘든 듯했다. 다만 한 사람만이 찡그리지 않고 있었다. 김 종사관이 그를 눈여겨봤다.

옥사에서 이 애련이 끌려 나왔다. 피가 묻은 옷을 벗고 노랑 치마와 다홍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리 입고 있으니 이 애련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그저 어린 신부였다. 심문 의자에 오라를 두른 채 앉은 이 애련을 향해 체건이 말했다.

“심문을 시작하겠다. 네가 죽인 게 확실하다면 그에 상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수령이 있는 다른 쪽 끝에 번희가 와서 섰다. 수령이 흘끗 번희를 봤다. 그가 번희를 향해 이죽거리자, 번희가 눈길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체건이 최종사관에게 물었다.

“중촌에서 온 수령에 대한 것, 지금까지 뭣 좀 알았나?”

“지금 알아놓은 부정축재로도 봉고파직은 당장 가능합니다.”

“수고했네.”

검안서를 손에 들고 체건이 천천히 넘기며 애련에게 말했다.

“죄인은 말해 보라. 어찌하여 힘없는 늙은 안 소사를 칼로 찔렀지?”

의자에 앉은 애련이 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혼인도 하기 전에 자신의 남동생과 정을 통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자신의 남동생에게 시집오라는 말을 단칼에 거절한 앙심이었던 듯합니다. 저의 혼례 후에도 헛소문을 냈습니다. 다른 남자하고도 정을 통했다고요. 2년입니다. 2년간 그 소문에 시달렸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서방님께서도 많이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결국, 제가 친정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도저히 분이 가라앉질 않아서! 흑!”

수령이 삐죽거리며 말을 보탰다.

“보나 마나 거짓입니다. 생긴걸 보십쇼. 얌전하게 생겼는데 말하는 걸 보면 보통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 살자니 궁해서 돈 있는 늙은 홀애비 꼬실 생각이었을 겁니다.”

검안서를 뒤지던 체건이 의생을 불렀다.

“의생. 그대가 보기에 안 소사가 반항한 흔적이 있었나?”

“아닙니다. 그는 힘이 없는, 여든이 넘은 노파입니다. 앉은 채로 당했습니다.”

“이상하군. 여기에 보면 비껴서 찔린 곳이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다면 왜 굳이 찌르기도 어려운 쇄골 위의 어깨를 찔렀지?”

잠시 머뭇거리던 의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건 사람을 처음 죽이는데 머뭇거려서… 일 것입니다.”

그때 김 종사관이 의생에게 말했다.

“머뭇거린 자가 어떻게 네 번이나 찌를 수 있나? 이건 처음부터 죽일 마음을 품고 간 것이야.”

김 종사관의 말에 수령이 불쾌한 듯 대꾸했다.

“아니, 그럼 우리 관아의 의생이 있지도 않은 말을 꾸민다는 건가?”

“의심스럽습니다. 자상을 직접 검시할 때 참여한 의생이 맞습니까?”

날카로운 김 종사관의 말에 수령이 머뭇거리다 검시관을 바라봤다. 수령의 눈치를 흘끗 본 검시관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검시할 때 항상 옆에서 저를 돕는 의생입니다.”

“그런데, 무슨 의생이 포도청 흙내를 맡고 인상을 찌푸리지?”

수령과 의생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김 종사관을 바라봤다. 김 종사관이 체건을 향해 말했다.

“여기 분명 시체를 검시할 때 직접 살피고 만지는 오작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 오작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포도대장 나리?”

아전들과 응참각인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김 종사관을 바라봤다. 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종사관은 아까 유일하게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사내를 향해 물었다.

“자네가 시체를 직접 만지는 사람 아닌가?”

당황한 듯 그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나리. 제가 오작입니다.”

“관아에서 주로 뭘 했나?”

“시체 검시와 매장도 하고, 가끔 염도 하러 다닙니다.”

“이번 검시는 누가 했지?”

김 종사관의 질문에 오작은 슬쩍 수령의 눈치를 봤다.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런지 수령은 오작에게 눈치를 주지 못했다.

“제가 했습니다요. 잘못했습니다! 나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오작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바들바들 떨었다. 김 종사관은 그의 옆으로 가 물었다.

“얼마나 해 왔지?”

“흑흑. 지금 수령님이 부임하신 이래 계속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럼 검안서는 누가 작성했나?”

“흑. 제가 다 했습니다. 조작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검안서를 보며 체건이 말했다.

“사건 조사 후, 너의 죄와 수령의 책임에 대해서는 따로 추궁하겠다. 그럼 시작한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수령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우리의 조사에 의하면 안 소사는 덩치가 꽤 좋은 노인이었다. 검시한 안 소사의 덩치는 어떠했는가? 검안서에 쓰지 않는 이유가 뭐지?”

오작이 대답했다.

“굉장한 거구입니다. 그 부분은 빼라고 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

“그걸 자상에 의거해 설명할 수 있는가?”

엎드렸던 오작이 일어나 적극적으로 사건 재연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이렇게 서 있었을 겁니다. 이리로 와 보실래요?”

오작의 손짓으로 최 종사관이 앞으로 왔다. 실제같이 서니 덩치가 꽤 있는 최 종사관과 작은 오작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칼을 쥔 것처럼 손을 치켜든 오작이 최종사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반사적으로 최 종사관이 오작의 얼굴을 가볍게 밀쳐냈다. 쌍코피가 터진 오작이 당황해 최 종사관에게 말했다.

“나리. 지금 안 소사 역할을 좀 해 주십쇼.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것처럼 오작은 온몸을 써 가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안 소사가 덩치가 큽니다. 제가 이 애련입니다. 이렇게 칼을 들고 덤비면서 안 소사가 이 애련을 밀쳤을 겁니다. 그리곤 옆으로 피했겠죠? 이때, 가슴을 겨누었던 칼을 내리꽂으면!”

최 종사관은 오작이 설명하는 대로 몸을 그대로 옆으로 돌려 피하는 시늉을 했다. 오작이 주먹 쥔 손으로 내리꽂는 척을 했다. 주먹은 정확하게 목 옆, 쇄골 위에 닿았다.

“검안서의 첫 번째 자상이라고 기록한 곳과 일치하는군. 다음!”

그 후로 한참 동안, 오작은 온몸을 써가며 이 애련 역할을 함과 동시에 최 종사관은 신음까지 내 가면서 안 소사의 역할을 해냈다. 검안서에 따른 자상 설명이 끝나자 언제 모였는지 포도청 군졸들이 박수를 쳤다.

“와아! 진짜 재밌다!”

“검안서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군졸들의 웃음과 함성에 오작이 쑥스러운 듯 허리를 굽혀 반듯하게 인사를 하다 체건과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얼굴이 창백해졌다. 순식간에 울상이 되어 다시 엎드렸다.

“포도대장 나리!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신 검안서 작성 안 할 테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파르르 떠는 손끝이 가련해 보일 정도였다. 검안서를 덮은 체건이 수령을 향해 말했다.

“우리의 조사서에서 이 애련이 실토한 자백과 완전히 일치하니 수령은 이만 가 보도록 하게.”

너무 싱겁게 끝난 심문에 수령이 눈치를 봤다. 검안서를 일개 천민에게 시킨 죄를 묻지나 않을지 걱정하면서.

“포도대장 나리.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참, 저 오작을 데리고 갈 건가?”

뜨끔한 얼굴로 수령이 대답했다.

“나리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군졸들이 애련을 다시 옥사로 데리고 나갔다. 번희는 바로 판결을 내릴 것 같았던 체건이 말을 아끼자 궁금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때 수령이 번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 다시 이죽거렸다. 번희가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번들거리는 눈빛이 살아난 수령이 눈치 없이 체건에게 말을 걸었다.

“저,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데요. 나리. 저 다모, 저희 관아로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수령을 흘끗 보는 체건의 이마에 핏대가 올라섰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체건이 차갑게 한 마디 했다.

“오늘부로 자네를 봉고 파직하네.”

수령의 뒤에 있던 아전들이 사색이 되어 체건을 바라봤다. 수령은 입을 벌리고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 입에서 한마디만 더하면, 그간 했던 부정축재를 빌미로 의금부에 이송할 것이니 각오하게.”

찬바람을 일으키며 집무실로 들어가다 체건은 엎드린 오작을 봤다.

“오늘부터 자네를 좌포청 포도군사로 임명한다. 특별히 종사관들의 보조를 맡고, 앞으로 검시가 있을 경우 돕도록.”

엎드려 있던 오작이 일어나 집무실로 사라지는 체건을 멍하니 바라봤다. 김 종사관이 오작 옆으로 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굉장해. 우리도 자네처럼 몸 던지며 사건 재연하는 걸 배울까 봐.”

“으어어어어어헝! 감사합니다, 포도대장 나리! 이 한 몸 불살라 충성하겠습니다!”

오작의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면서, 먼저 흘렀던 쌍코피를 덮었다. 웃음이 터진 김 종사관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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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로 들어온 체건을 따라 번희가 조용히 들어왔다. 의자에 앉으며 체건이 자신의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그런 체건을 향해 번희가 눈이 휘도록 웃었다.

“그래, 왜 왔느냐?”

“이씨는 어찌 되는 거예요?”

“원래대로라면 참형이다.”

“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울상을 짓는 번희를 슬그머니 무릎에 앉히고는 체건이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사람을 죽인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절을 훼손한 안 소사역시 죄질이 나쁘다. 그래서 전하께 조사서를 올릴 생각이니라.”

“전하께요?”

“유일한 방법이니 해 보자꾸나.”

“무죄방면 되었으면 해요.”

번희는 나가려 체건의 팔을 풀려 하자, 체건은 풀지 않았다. 버둥거리는 번희를 보며 체건이 팔에 힘을 주었다.

“나리, 남이 알까 부끄럽습니다. 제발 좀.”

나가려고 아등바등하는 번희에게 심통이 난 듯 체건이 말했다.

“왜 벌써 나가려느냐? 주방에서 할 일도 없거늘.”

곤란한 번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체건이 번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 밖에서 군졸들의 소리가 가까워지자 괜히 초조한 번희가 더 발버둥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