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퍽!

“이 새끼가! 이렇게 맞아도 한 마디 비명을 안 질러!”

“여보, 그만 해요! 애가… 애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남자는 술에 취해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여인은 그런 남자의 다리에 매달려 절규했다. 남자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진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인형인 듯,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슬프지도, 두렵지도, 아프지도 않아 보였다.

“내가, 응, 이 자식 놈 먹여 살린다고 그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이게 몸뚱이라도 제값을 해야지!”

“어흐흐흐흑! 차라리 절 죽이시고 아이는 그냥 두세요! 흑!”

여자의 곡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담 밖의 하늘과 땅은 칠흑처럼 까맣고 어두워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곡소리조차.

“이 집이로군.”

늙은 여인 하나가 곡소리 울리는 집의 마당으로 선선히 걸어 들어왔다.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파가 걸을 때마다 허리춤의 방울 뭉치가 소리를 울렸다. 짤랑, 짤랑, 짤랑. 방울 소리가 제법 컸던지, 방에서 아이를 때리던 남자가 금세 문을 열고 반색을 했다. 여전히 몸은 휘청거렸지만, 눈만큼은 또렷했다.

“어이구! 어르신!”

“어르신은 무슨.”

늙은 노파의 회청색 눈은 눈물로 범벅된 여인의 눈과 마주쳤다. 영문 모를 늦은 방문. 불안을 느낀 여인은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 남자를 보았다. 노파는 방 안에 축 처져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눈을 돌렸다.

“영험한 무당이셔! 괴물 같은 저놈 얼굴에 표정 찾아 주신다는!”

여전히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사내의 말에 입을 꾹 다문 여인이 마당으로 슬슬 나왔다. 눈물로 얼룩진 뺨을 세수하듯 비비며 작게 인사했다. 떨리는 숨소리가 여전히 불안했다.

“쇤네, 저 놈 에미입니다.”

“그래. 늦은 밤에 미안하네만, 내 소식 듣고 왔네. 아들을 볼 수 있겠나?”

노파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면서 뒷소리로 물었다. 머뭇거리던 두 남녀가 따라 들어갔다. 방문이 닫혔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는 작은 보따리를 하나 안고 노파의 손을 잡고 나왔다.

“그럼 내 연락 함세. 걱정 마시게.”

“잘, 잘 부탁드립니다. 쇤네 곧 찾아뵙겠습니다요. 흑!”

여인이 목맨 소리로 인사를 하며 자신의 어린 아들을 바라보았다. 맞은 자국인 듯, 여기 저기 멍으로 얼룩진 얼굴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저 어미를 빤히 바라보고는 여전히 말없이 노파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의 얼굴에 얼핏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왔다 사라졌다. 여인의 뒤통수를 보며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위로했다.

“내가, 저놈 싫어한 게 아니야. 고쳐보려고 여기저기 안 알아본 곳이 없었어!”

여인이 다시 울며 그를 돌아보았다.

“예. 우리 아들, 곧 고쳐지겠지요.”

두 남녀는 그렇게 서로를 위안하듯 움막집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진정하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야, 아이의 몸값으로 받은 돈뭉치를 방구석에서 발견하고 발작하듯 아이의 이름을 외치며 뛰쳐나갔다. 그런 여인을 뒤로하고 남자는 돈을 챙겨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날, 좌포청으로 방울을 허리에 찬 노파가 11번째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

수많은 포졸들이 가까이 보이는 작은 집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횃불도 밝히지 않은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깊은 산속인 듯 머리 위로 별조차 보이지 않았다. 작은 집에 다가갈수록 또렷이 보이는 많은 천들과 무구들이, 그곳이 굿당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마당에는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천들과 아무렇게나 쌓여있어 쓴 지 오래된 걸 알아볼 수 있는 무구들이 널려있었다. 주변엔 아무런 인가도, 인기척도 없는 첩첩산중이었다. 사람이 혼자 살고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오싹할 정도였다.

굿 당 뒤에서 또 다른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뒤로 희미하게 신음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꿍얼거리는 늙은 목소리였다. 그곳을 향해 포졸들이 에워싼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한 사내가 손을 들어 모두를 멈췄다. 많이 해 본 듯한 간결한 손짓과 단단한 표정, 날아가는 벌레 하나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눈매를 갖춘 그는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는 듯, 모든 포졸들 하나하나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더욱 조용해진 포졸들이 무리 지어 작은 숲길 앞에 진을 쳤다. 그들이 가까이 갈수록 음산한 목소리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니 여기저기에 깨진 독들의 파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 아이들의 옷이 널려 있었다. 옷일 뿐이건만, 형상 자체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모습이었다. 왠지 입었던 아이들은 엄청난 고통과 비명 속에 죽었을 것 같은 상상을 일으켰다.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소매에 듬뿍 묻은 피는 이미 검붉게 변해 버렸고, 옷자락 여기저기는 칼에 베인 듯, 선과 함께 그대로 피 외의 다른 것들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사내는 인상을 더 구겼다. 이미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흙에 베여있는 쇠 냄새가 피비린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귀를 기울였다.

“이놈은 왜 이리 질겨. 괜히 돈 줬어.”

굿 당 모퉁이를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인 노파의 등이 보였다. 그 앞엔 살아있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건만, 마치 아이를 하나 앉혀 놓은 듯 노파는 웅그리고 앉아 계속 말을 뱉어냈다.

사내가 손짓을 했다. 포졸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온 기척을 느끼고, 노파가 놀라 몸을 돌리며 소리 질렀다.

“거기 누구야!”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바람 소리만 횡 할뿐, 그렇게 심하게 울던 소쩍새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여름밤이었다. 노파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파가 앉았던 자리 앞엔 대나무 관 하나가 땅에 박혀 있었다. 모퉁이 뒤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노파를 주시하던 사내가 대나무 관을 봤다.

‘찾았다!’

사내가 속으로 외쳤다. 얼마나 오랫동안 추적했던가. 노파가 사내가 있는 모퉁이로 살살 걸을 때마다 허리에 찬 방울 뭉치가 소리를 냈다.

짤랑, 짤랑, 짤랑.

“으으…… 끄… 으…….”

갑자기 대나무 관 안에서 아이의 신음이 들렸다.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노파는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더니 대나무 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더 고통스러워지면 꺼내주마. 클클클.”

노파가 바닥에 누워있는 칼을 보며 희미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야 칼에 네 혼을 담아 내 영력을 올리는 거야. 이 할미는 참 널 만나 다행이지 뭐니. 이전 것들은 악만 쓰고 겁만 먹고, 머리는 나쁘고. 너처럼 영민한 것의 혼이라야 쓰지.”

섬뜩한 이야기였다. 듣고 있는 아이의 심장은 괜찮을 걸까. 사내의 팔이 올라갔다. 손을 폈다 힘 있게 꽉 쥐자 포졸들이 침묵을 깨고 일순간에 마당을 지나 노파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움직이지 마!”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내들로 놀란 노파는 숨을 멈추었다. 명령하는 사내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종사관! 어서, 대나무 관이 있는 곳으로!”

“예!”

세 명의 사내가 노파를 지나 대나무 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치 무기인 양 그들이 들고 온 것은 농가에서나 쓸 법한 농기구였다.

“절대 관 안으로 흙이 들어가선 안 된다! 아이가 살아 있다!”

놀란 노파가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꽉 부여잡는 사이 종사관이라는 세 명의 사내가 미친 듯이 대나무 관의 주변을 파냈다. 진흙으로 뚜껑이 밀봉된 상태의 커다란 독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독의 절반이 드러났을까. 사내가 신중하게 굳은 진흙을 깨부수었다. 마침내 독의 뚜껑이 덜걱거리며 흔들리자 사내는 긴장한 듯 땀을 흘렸다. 조심히 독을 여니 그 안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 무울…….”

사내가 팔을 내려 아이를 안아 올렸다. 퀭한 안색과 움푹 들어간 볼, 붉은색이라곤 한 군데도 볼 수 없는 입술이 오랜 기간 물 한 모금도 못 먹었음을 일러 주었다. 뻗어오는 작은 손에 피가 엉겨 있었다. 아이의 왼쪽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없었다. 안아 올린 사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본 포졸들은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같이 온 포졸들의 함성과 종사관이라는 남자들은 기쁜 함성을 질렀다.

“살아있다! 와아!”

“살려냈어! 드디어 끝을 냈군!”

아이를 안은 사내가 외쳤다.

“대기시킨 의원을 데려오라!”

먼발치에 같이 온 듯, 의원이 서둘러 내려왔다. 아이를 건네받고는 급히 물을 몇 방울 흘려 넣었다. 괜찮다는 표정으로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를 이끈 사내가 노파를 향해 돌아섰다.

“니 죄를 아느냐!”

근엄하고 낮은, 분노로 온몸이 가득 찬 사내가 말을 던졌다. 노파는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듯 갑자기 눈의 초점을 풀고 몸을 굽혔다.

“뉘신지? 아이고, 이 늙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게, 가끔 귀신이 보이기도 하고.”

횡설수설하는 노파를 향해 사내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오직 죽음뿐!”

“아구구구! 나으리! 나으리! 그건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놈은 귀신 씌운 놈입니다. 혼이 없어요. 저놈 귀신이 제게 옮겨붙은 겁니다.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감히 내 앞에서 아이 탓을 하느냐! 그 입이 심히 불경하도다!”

“포도대장님! 이곳 좀 보십시오!”

포졸 하나가 그들이 있는 모퉁이의 반대 지점에 서 있었다. 그곳엔 대나무 관이 수도 없이 파묻혀 있었다. 아주 오래된 듯, 마르고 마른 색뿐이었다. 포졸들이 달려들어 파기 시작했다. 모두 진흙으로 밀봉한 독이었다. 그 안엔 이미 죽어 뼈만 남은 아이들이 있었다. 살아남은 건, 오직 한 아이뿐. 사내의 눈에 분노 가득한 눈물이 고였다.

“이 지독한!”

사내는 야차만큼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 포도대장 이양건의 이름으로 방울 마마를 단죄한다. 종사관! 사형시키라!”

빠르게 검을 꺼낸 노파 옆의 종사관이 비명 나올 새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의원의 품에서 흐려져 가던 눈으로 노파가 죽는 순간을 본 아이는 안심한 듯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간 ‘방울 마마’라고 불리던 노파에 의해 팔려 가거나 유괴된 아이들의 사건은 그렇게 좌포청 포도대장 이양건의 끈질긴 수색으로 한 아이를 살리면서 막을 내렸다.

****

“뭐라?”

“아이의 어미가 남편을 죽이고 목을 맸습니다.”

포도부장의 보고에 이양건은 힘이 빠졌다. 방울 마마로부터 구한 아이의 부모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언제 그랬다더냐.”

“어제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들을 합니다.”

“무슨 소리?”

“귀신들린 아이랍니다.”

“귀신들려?”

“예. 태어나서 한 번도 웃은 적 없고, 운적도 없으며 다른 아이들처럼 놀지도 않았답니다. 다만, 기억력이 심히 좋아 한 번 본 것은 잊질 않으니, 귀신들렸다고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

“주변에서 그러니 구한 건 구한 거고. 죄책감은 또 감당할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이야기하던 포도부장이 애써 안타까움을 참는 목소리였다. 이양건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의원을 만나러 가겠다.”

****

의원집에 도착한 이양건이 차를 마시며 아이를 보고 있었다.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벌써 일주일이었다. 그날 밤 이후로 의원의 집에서 아이는 치료받고 있었다. 의원은 이양건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입을 뗐다.

“아이가 갈 곳이 없군요. 안타깝습니다.”

“다시 가도 좋진 않았을 겁니다.”

“실은, 그런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잘 가르치면 뛰어난 능력으로 큰 공을 세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가요?”

“예. 좋은 환경에서 덕을 가르치고 행동 습관을 잘 들이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우리가 정 있는 부모에게서 정 배우고, 술 마시는 부모에게서 술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양건은 문득 옷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내려보니, 아이가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하얗게 천이 감긴 왼손의 끝에서 짧아진 새끼손가락이 보였다. 아이는 옷을 잡은 그 손을 놓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의원 역시 이양건의 시선을 따라 아이의 옷자락 쥔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침묵 후, 의원이 말했다.

“생각이 얼굴로만 나타나진 않는다는 것, 포도대장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의원이 푸근한 미소를 짓자 아이의 손에 힘이 약간 느슨해졌다. 하지만 얼굴엔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양건은 그런 아이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