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모, 납치당하다 (2)

눈발이 내리던 그 겨울 밤, 그녀는 여느 때처럼 방 안에서 서책을 읽고 있었다. 방 안에 켜둔 호롱불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습에 잠시 눈길을 두던 그때, 다급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녀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호기심 많은 그녀는 읽던 서책을 접고, 슬며시 밖으로 나와 마당으로 향했다.

마당 안으로 뛰어들 온 건 대사헌 정영임과 그의 호위무사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신발이 벗겨진 호위무사의 발에서 흐른 피가 흰 눈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비명이 새어나올까 얼른 입을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아비는 그 둘을 급하게 곳간으로 숨겼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아비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아비는 놀란 얼굴로 서연에게 다가왔다.

“어째서 나와 있는 것이냐?”

“소리가 들리기에….”

“잘 들어라. 넌 지금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알겠느냐?”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넌 알 것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알겠느냐, 어서 서연이를 데리고 들어가시오.”

그녀의 어머니는 급하게 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어미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아비를 봤다. 급하게 수건과 물을 들고 곳간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어린 나이였지만 한없이 불안함을 느꼈다.

“어머니, 저 분은 대사헌 나리가 아니십니까? 어찌 저런 모습으로.”

그의 어머니는 서연을 꼬옥 끌어 앉았다.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다. 서연아 너는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정의로운 분이야. 그것이 우리 집안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너는 아버지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 분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돼.”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떨고 있었다. 그녀도 어미를 꽉 끌어 앉았다. 그들이 집으로 숨어든 지 3일째가 되도록 눈발은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집 안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곳간으로 음식을 나르는 일을 맡았다. 3일째 되는 밤에도 주먹밥을 들고 조심스럽게 광으로 다가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대사헌과 그의 호위무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터라 더 그러했다.

“서연아 네가… 우리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아니어요. 여기 물과 주먹밥입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대사헌은 잠시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곧 나비가 수놓아진 손수건을 그에게 건넸다.

“내가 너에게 몹쓸 모습을 보이구나.”

“아니어요.”

옆에 있던 그의 호위무사가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도 아가씨처럼 어질고 어여쁜 아내를 두면 참 좋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저, 아가씨… 나중에 혹시라도 우리 아이를 만난다면 전해주시겠습니까. 어른으로서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라고요. 올바른 뜻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라 그리 말해주십시오.”

“아드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천수호입니다. 혹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이 아비가 미안하다고도 전해주십시오….”

“예 꼭 그리 전하겠습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빈 바구니를 들고 일어섰다.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그녀는 주위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광에서 나와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4일째 되던 날,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아비는 도통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밖의 소식을 제대로 전해줄 사람이 없었다. 동생 동연이 그녀의 방을 찾았다.

“누님, 소식 들었습니까?”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거 말이냐?”

“예. 어머니께서 밖으론 한 발짝도 못나가게 하시니, 도통 답답해서 말입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나라님이 바뀌겠어. 그런 불경한 말은 입에 담지도 마.”

“아버님도 며칠째 안보이시니 누님은 궁금하지 않소?”

“돌아오시면 여쭤보아야지.”

총명한 그녀는 이 일이 분명 광에 있는 저들과 연관이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숨어든 지 일주일째, 그의 아버지가 황급히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는 급하게 그녀를 찾았다.

“아버지….”

그의 아비는 신발도 벗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방을 나왔다.

“어머니와 동연인 어디 있느냐?”

“무슨 일입니까?”

그때였다. 많은 무리의 군사들이 그녀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 선봉에 선 자의 지휘에 맞춰 그들은 집안의 모든 이들을 도륙했다. 그리곤 그의 아비와 가족은 물론 광에 숨어 있던 대사헌과 그의 호위무사를 포박했다.

“역모 죄를 숨겨준 대가가 어떤 것인지 몰랐소?”

“병판 당신까지 이리 돌아설 줄 몰랐소이다. 지금 역모라 하였소? 나라의 주인을 하루아침에 도둑질 해놓고 지금 역모라 하였는가!”

아비의 눈에 핏줄이 섰다.

“대의를 위한 일이오.”

“무엇을 위한 대의란 말인가.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명분 없는 대의가 무슨 소용이요.”

“오랑캐와 화친하겠다는 것이 왕이오? 나라를 오랑캐의 손에 넘기겠다는 것이 왕이냔 말이오.”

아비는 그를 노려보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와 동연, 그리고 어미를 봤다. 아비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 남거라.”

병조판서는 군사들을 시켜 그들을 끌고 나가라 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들과 헤어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정신을 차려 눈을 뜬 그녀가 있던 곳은 기방이었다. 그녀는 행수에게 아비와 가족들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잊으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녀들이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망나니 칼이 그렇게 크고 무서울 수가 없었다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그리 죽는 모습이라니.”

“대단한 양반들이라며?”

“어린 사내놈도 있었던 거 같은데….”

방 안에 갇혀 이야기를 듣던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한이라도 온 듯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렸다. 죽은 자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에선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녀들이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치맛단을 찢어 줄을 만들었다. 목을 맬 생각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녀가 줄에 목을 걸려는 그 순간 행수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죽음조차 그녀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리곤 그녀는 어디론가 비밀스럽게 끌려갔다.

행수는 방문을 열고 그녀를 밀어 넣은 뒤 문을 잠가 버렸다.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건 영의정 박처선이었다. 그녀는 방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밖에서 잠겼는지 열리지 않았다.

“가까이 오너라.”

그녀는 꼼짝 앉고 그대로 그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느냐? 내가 네 아비와 네 어미, 그리고 동생까지 죽였다.”

그녀의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허나 너는 내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넌 오늘밤 원수의 손에 머리를 올리게 될 것이야.”

그녀는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벽에 걸려 있는 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벽으로 달려가 칼을 빼어들고는 처선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처선은 가볍게 칼을 빼앗아 던져버리고는 그녀를 포박했다.

“잘 들어라. 네 아비를 관과에 고발한 것이 네 약혼자 하기재다.”

그녀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지금 이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약혼자의 아비를 팔아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지.”

“거짓말….”

“너는 네 아비가 정의로운 자라 생각하지? 나는 그런 네 아비를 죽인 원수라 여기고?”

그녀는 처선을 노려봤다. 울지 않으려 애쓰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랑은 처선을 피해 몸을 웅크렸다.

“정의롭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이더냐.”

그녀는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의롭다 여기는 정의를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오랑캐와 화친하는 것은 조선의 수치다. 그런 왕을 섬기고자 하는 네 아비 또한 죽어 마땅한 자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의가 그런 것이오? 친한 벗을 죽이고 정당성 없는 정권교체를 무력으로 이뤄낸 것이 당신이 말하는 정의요?”

처선은 고개까지 젖히며 크게 웃었다.

“듣던 대로 총기 가득한 아이구나. 일어서거라.”

하랑은 꼼짝 않고 처선을 노려봤다. 처선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하랑의 목에 위협적으로 갖다 대었다.

“일어서라 하였다.”

하랑은 처선의 칼이 움직이는 대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선만큼은 꼿꼿하게 처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처선은 칼을 휘둘려 그녀의 옷가지들을 벗겨냈다. 하얗고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하랑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네 아비가 널 끔찍이도 아꼈지. 제 목숨보다 소중히 말이다.”

하랑의 발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오늘을 평생 기억하거라. 그리고 치욕스럽게 살아가거라.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네가 선택하는 것이다만 이대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느냐? 네가 죽고 사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넌 아마 평생 나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기녀 따위의 신분으로 감히 쳐다보지 못할 자리란 말이다. 그러니 평생 번민하며 살거라.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나와 네 약혼자를 원망하며 복수를 꿈꾸며 평생 그리 원망하며 살거라,”

처선은 비열하게 웃으며 칼을 거뒀다. 하랑은 수치심과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처선을 노려봤다. 반드시 저 얼굴에서 살려 달라 애원하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하기재 그놈의 목에 칼을 꽂을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내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끔찍한 하룻밤을 보낸 뒤, 그녀는 다시 기방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단 하루도 행복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악착같이 가야금을 배우고 기녀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익혀나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가야금을 두들기고, 몸가짐을 익혔다. 화장술을 배우고, 기녀의 웃음을 배웠다. 그렇게 하랑은 화원각의 최고 기생이 되었다. 허나 처선과 하기재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신이 있다면 꼭 한 번쯤 그들과 마주하게 되리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