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의 회상

작은 주막에 도하와 정, 재우가 앉아 있다. 대낮부터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키고 있는데 곧이어 영생이 들어와 앉았다. 부쩍 수척한 얼굴이었다. 영생은 재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잘 보내었네. 끝까지 웃으며 들어갔어.”

“그랬습니까? 참으로 다행입니다.”

영생은 힘없이 웃어보였다.

“쌀은 약속대로 절로 보내두었습니다.”

“그 많은 걸 진짜 그리로 다 보냈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드만.”

“대신 이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주소.”

재우가 안을 향해 외쳤다. 잠시 뒤, 나이는 있어 보이나 곱게 생긴 주모하나가 국밥을 말아가지고 나왔다.

“여기 있소, 맛있게 드셔요.”

“워매, 근데 여긴 뭔 주모가 이리도 예쁘다요.”

주모는 농을 하는 재우를 살짝 흘겨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재우는 국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중년의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얼른 국밥 그릇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네.”

“밥 먹다 말고 뭘 그리 중얼거려.”

“아니 저기 저 남자 말이오. 아까부터 계속 나를 째려보는 것 같지 않소?”

“실없는 소리 하기는, 얼른 국밥이나 먹거라.”

재우는 고개를 두어 번 갸웃 하다 이내 고개를 파묻고 국밥 먹는 데에 열중했다. 도하는 다시 영생을 보곤 물었다.

“많이 수척해졌네 그래.”

“아닙니다. 덕분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값을 받고 한일인데 은혜랄 게 무언가.”

“그나저나 사부께서는 안보이십니다.”

“사부? 아, 쓸데없이 비질만하는 그놈.”

영생은 무슨 소린가 싶어 도하를 봤다.

“아닐세. 그 놈이 콧대가 여간 세야지. 웬만해서는 절간에서도 내려오지를 않으니.”

“참으로 진중하고 용맹하게 생기셨습니다.”

“누가? 그 자가?”

“예. 앞으로도 무술은 틈틈이 배울 생각입니다.”

“자네도 눈이 좋질 못 하구만. 그 산 도둑 같은 놈이 어딜 봐서 진중해.”

그때 국밥에 정신 팔려 있던 재우가 끼어들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곱상하기만 한 나리보다야 더 남자답고 용맹하더구먼요.”

“뭐야 이놈아. 넌 국밥이나 먹거라.”

재우에게 핀잔을 주던 도하의 시선이 정에게 머물렀다. 아까부터 말도 없이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리 앉아있기만 했다.

“넌 무얼 그리 생각하느라 혼을 빼놓고 있느냐.”

정은 그제야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별생각안합니다.”

“이 놈이나 저놈이나 까칠하기는. 아까부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얼 그리 생각하는 게냐.”

그때였다. 아이들의 곡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게를 짊어진 남정네하나가 나타났다. 지게에는 멍석으로 둘둘만 것이 보였는데 사람의 발이 쑥 나와 있었다. 재우는 국밥을 먹다 말고 놀라 주룩 흘려버렸다. 사내의 뒤로 아이 둘이 곡소리를 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들은 곧 주막을 지나 멀리 사라졌다. 정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또 바라봤다.

“저것이 뭐다요?”

영생은 상에 놓여있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궁궐 보수 공사에 동원되었던 자인가 봅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저리 명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장사를 제대로 치를 수도 없는 집들이 태반이니 저리 멍석으로 둘둘 말아 땅에 묻어버리는 걸로 장사를 끝내는 게지요. 부모 없는 아이가 또 늘었습니다.”

영생은 답답한 얼굴로 아이들의 그림자를 쫓았다. 도하도 착잡한 심정이 되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정의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정은 당황하여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아이들이 걱정되어 그러더냐? 걱정마라 내 사람을 시켜 아이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다.”

“그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해결된다고 하여 저 아이들이 만족할거라 생각하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심정을 나리는 모르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돈이 저 아이의 아비를 다시 살릴 수야 없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구나.”

정은 아이들을 보며 옛날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10년 전 정이 불과 5살 때였으나 또렷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정은 아버지를 참으로 좋아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정은 특별히 제 아비를 유독 따랐다.

아비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길고 반짝이는 긴 검을 꺼내 휘두를 때면 온 천지에 자신의 아비보다 멋진 사내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신도 크면 아비처럼 검을 다루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 조그만 입으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어대었다. 그러면 아비는 껄껄 웃으며 10살이 되면 검술을 가르쳐주겠노라 약속했었다.

어미는 항상 어린 정을 끌어안고 이야기했었다. 아버지는 나라님을 곁에서 모시는 아주 높은 분을 지키는 무사라고. 그래서 나라님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을 하는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일러주었다.

매일매일 바쁜 탓에 그의 아비가 정과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틈이 나는 날이면 그의 아비는 정을 자신의 목에 태우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정을 말에 태우고 하루 종일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냇가에 나가 작은 물고기들을 가득 잡아와 안겨주고 가을이면 열손가락 가득 잠자리를 잡아주던 다정하던 아비였다.

호위무사로 오랜 시간을 일한 덕에 살림도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었다. 아비는 정에게 산이고 바다였다.

그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아비를 기다리는데 해가 넘어가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어미는 졸려하는 정을 없고 마당을 이리저리 오가며 자그마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였다. 빠르고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집 앞에 와 멈춰 섰다.

대문이 열리고 피투성이가 된 정의 아비가 들어왔다. 정의 아비는 두어 번 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은 잠결에 아비의 손길을 느끼고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정은 아비를 보자 반가움에 안기려하였으나 아비는 그를 안아주지 않고 땅에 바로 서도록 내려놓았다. 그리곤 정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은 그제야 아비의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겁을 집어먹었다. 정의 아비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어머니를 지켜야 해. 반드시 살아서 어머니와 함께 이 도성을 빠져나가야 해. 아비는 좀 더 뒤에 따라 갈 거야. 그러니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알겠니?”

정은 싫다고 도리질을 했다. 아비는 정의 어깨를 양손으로 쥐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비가 곧 따라가마. 사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아비가 일러주었지?”

정은 단호한 아비의 눈빛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옆에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울었다. 정의 아비는 우는 아내를 뒤로 하고 다시 말을 타고 집을 벗어났다. 정의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 빠르게 작은 봇짐을 챙겼다. 그리곤 정을 업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마을 뒷길을 지나 도성을 벗어났다.

도성을 벗어나는 내내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두 사람은 며칠을 그렇게 내리 걷고 또 걸었다. 두 사람은 강원도 깊은 산기슭까지 흘러들었다. 정의 어머니는 악착같이 돌밭을 일구어 정을 키웠다.

정이 9살이 되도록 어머니는 곡식이나 필요한 것을 살 때에만 잠시 장에 다녀 올뿐 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에게도 산 이외의 생활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정은 그 밤 아비를 본 이후로 다시는 아비에 대해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워낙 어린 나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정은 분명 그날 피철 갑을 하고 다급하게 자신을 보러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했다. 궁금했지만 알 수도, 알 길도 없었다.

정이 9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눕기 시작했다. 의원에게 보여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3개월을 내리 앓다가 허망하게 정의 곁을 떠났다.

정은 어머니가 정성들여 일군 밭을 파서 어미를 묻었다. 무덤 곁으로 어미가 좋아하는 들꽃을 캐다가 심었다. 1년을 내리 어머니의 무던 곁에서 지키다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하고 한양으로 올라왔다. 어머니가 그토록 한양에는 가지 말라 일렀지만 정은 자신의 아비가 왜 그날이후로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던 것인지 그 연유를 알고 싶었다.

한양에 간다고 하여도 딱히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어디서 10년 전 아비의 흔적을 찾아 궁금증을 풀 수 있을지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은 가야했다. 어쩌면 세상천지에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정을 한양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와 도성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정은 어지럼증을 느껴 한 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 장사치들, 갖가지 음식들과 장신구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람들 틈에 정신없이 이리저리 치이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그게 바로 하랑이었다. 화려한 연꽃이 수놓아진 비단으로 만든 한복을 입은 하랑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하랑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다른 기생들은 더러운 꼬마 놈이라며 정을 무시했다. 하랑은 잠시 정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