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생 사월, 스님 한겸

“나리, 이렇게 훤한 대낮에 기방 출입이라니요~.”

재우가 도하의 뒤를 졸졸 따르며 볼멘소리를 해댔으나 도하의 발걸음은 너무도 가볍게 <화원각>을 향하고 있었다. 재우는 다시 도하를 부르려다 저자의 아낙들이 모두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곧 입을 다물었다. 재우도 이젠 이들의 시선이 익숙한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도하의 뒤를 따랐다.

비취색 비단이 봄 햇살을 받아 여인보다 고운 도하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뚝하고 날렵한 콧날이 갈색의 깊은 눈동자와 더불어 기품 있는 풍모를 더했다. 고운 얼굴과 달리 딱 벌어진 어깨와 풍채는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입가에 슬며시 떠오르는 장난기 다분한 미소는 저자 아낙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여인들에게 장난스럽게 미소를 날리며 걸어가던 도하의 발걸음이 장신구를 파는 점포 앞에서 멈추어 섰다.

“왜요? 하랑 고것에게 줄 비녀라도 고르시는 겝니까?”

“이놈아 그리 째려보다가 눈알 빠지겠다, 상전을 그리 보는 종놈도 있더냐.”

재우의 쀼루퉁한 표정에 농을 하면서도 도하의 눈은 좌판 노리개를 훑고 있었다.

“그래도 양반 체면이 있지. 대낮부터 기방출입이 웬 말입니까요~.”

“네 놈이 나를 양반으로 생각하기는 하는 모양이구나. 일주일 동안 고뿔로 앓아누웠더니 몸이 근질근질하구나.”

그때 도하의 눈에 노란색 나비가 수놓아진 노리개가 보였다. 눈치 빠른 장사치가 도하의 손에 노리개를 쥐어주었다.

“나리께서는 역시 안목이 높이십니다요. 이게 바로 엊그제 물 건너온 놈입지요.”

도하는 장사치의 허풍인 줄 알면서도 기분 좋게 노리개 값을 지불했다. 흐뭇한 얼굴로 노리개를 보며 걷는 도하가 못마땅한 재우는 멀찌감치 떨어져 툴툴대며 걸었다.

“그렇게 쏘아보다 네 주인 뒤통수 뚫어지겠다.”

그렇게 재우에게 농을 건네며 골목을 도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승려 하나와 부딪쳤다. 승려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도하를 그대로 지나쳐 빠르게 사라졌다.

“무엇이 저리 급하실꼬.”

“화원각으로 향하는 나리 발걸음만 하시려고요.”

도하는 재우의 말에 아랑곳 않고 승려가 지나간 자리를 훑어보았다.

“내 저런 얼굴을 한 스님을 만난 건 또 처음이구나.”

“그건 또 뭔 소리래요?”

“꼭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사내의 눈빛 같단 말이지.”

“나리께서 아직 고뿔이 다 낫지 않으셨나봅니다. 화원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워 저는 또 다 나으셨지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놈이 아까부터! 그래 이놈아, 내 날아갈 것이다. 꽃을 찾아 벌이 날아가는 것이 무엇이 어떠냐.”

<화원각>은 도성 최고의 기방답게 멀리서도 한눈에 띌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벽 사이사이 비단으로 만든 나비매듭이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나풀거렸다. 건물부터가 화려하고 교태로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도성의 모든 소문은 <화원각>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고관대작들과 많은 양반네들이 <화원각>의 문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런 <화원각>에서 단연 최고의 손님은 누가 뭐래도 도하였다. 도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도하를 알아본 기생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를 맞았다.

“나리 요새는 왜 이렇게 뜸하셨습니까?”

“저희들이 얼마나 나리를 기다린 줄 아십니까?”

“그래서 내 이리 바쁘게 너희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냐.”

재우는 도하와 기생들이 하는 짓이 마냥 못마땅했다. 자신은 그림자 취급도 안하고 도하에게 달려드는 꼴이 아니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하는 화원각 기생들 모두가 하룻밤이라도 모시기 원하는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도하는 바람기 다분한 듯 보이나 정작 그를 따르는 여인들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사내였다.

그러면서도 음주가무에 능하여 거문고, 대금은 물론 난을 치는 솜씨도 수준급이었으며 말을 몰고 활을 쏘는 솜씨 또한 뛰어나 기생들이 몸 달아 하는 것도 예상 못할 일은 아니었다. 기생들의 농을 받아주던 도하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도하의 팔을 잡고 있던 초선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리께선 또 하랑 형님을 찾으시는 겝니까? 매번 하랑 형님께 뒤지니 이년 섭섭합니다.”

“너는 내게 여인이고 하랑은 내게 벗이니 너무 섭섭해 말거라. 근데 나의 벗은 왜 이리 보이지 않는 것이냐?”

그때 옆에 있던 기생 하나가 끼어들었다.

“말도 마십시오. 지금 형님께서 새로 온 기생 하나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나리가 발길이 뜸하신 동안 하루하루 난리굿이 벌어져다니까요.”

그때 쨍그랑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화원각을 울렸다. 도하는 곧 소리가 나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분이 그 도하 나리라는 분인 거지요?”

새로 들어온 기생 하나가 도하의 뒤를 보며 초선에게 물었다.

“그래 화원각의 모든 기생들이 한 번쯤 안기고 싶어 하는 분이지, 너야 지방 촌구석에서 올라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집안이 훌륭한 분입니까? 아니면 재물이 많은 분인가요?”

초선은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혀서는 새로운 기생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분은 그 자체로 기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분이야. 어디 지방의 유지 아들인데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 준비를 한다고도 하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큰 재산을 물려받은 고아라는 소문도 있고···. 뭐 아무렴 어때? 나리는 그냥 나리지.”

“이런 얘기 그만하고 이제부터 재미난 구경이 벌어질테니 우리도 얼른 들어가 보자고.”

3명의 기생들도 도하를 따라 빠르게 소리 나는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기방의 기생들과 기둥서방은 물론 기방 식구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도하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좀처럼 쉽게 가정을 드러내지 않는 하랑이 기생 하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깨진 술잔들이 널려 있고 술상에서 떨어진 음식들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하랑은 술병을 들고 그녀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기생에게 억지로 술병을 쥐어주며 대거리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자 따라 보거라. 기생년이 술을 따르는 걸 마다하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내 오늘 네 년의 술을 받아 마시고 말 것이야.”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기생이 손에 힘을 주지 않자 술병은 또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힘없이 깨져버렸다. 그 모습을 초조하게 보고 있는 기방 사람들 틈에 작은 체구에 귀여운 외모의 정이 있었다. 기방 심부름을 하는 아이였다. 정은 도하를 발견하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쏘아 봤지만 한편으론 이젠 이 난리가 끝나겠군, 하는 생각으로 안심도 되었다.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기방에 이 소란이 웬 말인가.”

기방 식구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하가 온 것을 보고야 정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야 난리가 끝나겠군, 하는 안도감의 표정들로 바뀌었다.

“내 벗을 만나러 왔는데 바빠 보이는구먼.”

도하는 하랑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랑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구경하던 기녀들에게 손짓해 널브러진 술병과 음식들을 치우게 했다. 정리를 끝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기녀를 방에 가두어 두도록 했다.

도하와 하랑은 술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밖에서 둘의 이야기가 궁금한 기방 사람들이 기웃 거리며 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시었습니다. 고뿔은 다 나으신 것입니까?”

“못 본 사이에 더욱 예뻐졌구나.”

“가꾸고 꾸미는 것이 저의 일이지요.”

도하가 농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하랑은 누가 봐도 그 미색에 빠지지 않을 자가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녀의 살결은 투명하리만치 하얗고 고왔다. 붉은 꽃잎에서 따온 듯한 붉은 입술은 그녀의 하얀 살결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머리는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빗어 올렸으며 눈빛은 고혹적이며 기품 있었다. 살갗이 비치는 검은색의 저고리에 풍성한 살굿빛 치마가 하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아까 그 기녀 말일세. 술 따르는 것을 마다한다는 게 참인가?”

“3일 전부터 저 꼴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랑의 얼굴을 살피던 도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년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 나리는 이 상황이 우스우십니까?”

“네가 그리 악을 쓰는 이유를 알겠어서 웃는 게다. 네가 이리 소란을 피우니 기부들이 나설 틈이 없었겠구나. 매질을 당하거나 몹쓸 짓을 당하는 것보다야 네가 악쓰는 꼴을 보는 것이 낫기야 하겠지.”

하랑은 도하가 자신의 속내를 꿰뚫자 이내 같이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