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 ''''<나야.>'태석의 낮은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귀로 흘러나오자 지오의 몸이 순간 흠칫거렸다. 그를 만나고 6개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태석의 목소리에 ‘조건반사 반응’을 보였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면 몸이 흠칫 떨려오고, 모락모락 그들의 밤이 생각나고, 그러다 얼굴이 벌게지고,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아직까지 면역이 되지 않는 그의 목소리였다. 지오는 휴대폰을 손으로 틀어막고 흠흠, 목소리를 다듬었다.'<왜?>'<오늘 10시쯤에 갈게.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섹시하게 꾸미고 기다려라. 쿡>'슬쩍 비웃는 태석의 얼굴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져 지오는 한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이미 태석은 전화를 끊은 후였다. 싸가지 없는 인간. 꼭 전화도 저 할 말만 하고 먼저 끊어 버린다.'“아우 열 받아! 그럼 섹시하지도 않은 여자랑 붙어있는 너는 뭔데!”'이미 끊어진 휴대폰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지오는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웃음소리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두 얼굴에 모이자 아주 불타오를 만큼 벌겋게 달아올랐다. 싸가지 없는 인간을 상대하느라 툭 끊어져버린 그녀의 이성이 재빨리 이어졌다. 아직 회사라는 사실을 잊었다. '“지오 씨. 남자친구 전화인가 봐?” '“네? 그런 거 아니에요!”'지오의 상사이자 마케팅부 과장인 유나의 웃음 섞인 질문에 지오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한다. 남자친구라니, 말도 안 된다. 태석은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다. 자고로 연인이라면 설레는 데이트도 하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뒤돌아보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기를 온종일 붙들고 있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 사이에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입안의 씁쓸함에 지오는 이마를 찡그렸다. 입안에 모래라도 들었나? 그녀는 입안 구석구석, 이리저리 혀를 굴려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 다들 오늘 회식 있는 거 알죠? 특별히 우리 마케팅부만 회식하는 거니까 조용히 빠져나갑시다. 후후.”'오유나 과장의 말에 10명 쯤 되는 마케팅부 사람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지오도 책상을 정리하고 핸드백을 들었다. 태석이 10시까지 집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지오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태석은 손목에 차고 있는 은빛 메탈시계를 흘끔 보았다. 10시 30분. 정확히 10시에 맞춰 도착한 태석이었다. 몇 번이나 벨을 눌러도 대답 없는 지오의 아파트 현관 앞에서 10분 쯤 기다린 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흘 넘게 태석을 야근의 수렁으로 밀어내던 프로젝트가 끝나 모처럼 기분 좋게 옮긴 발걸음이었다. 지오의 뽀얗고 보드라운 살결이 너무 그리웠다. 그녀의 피부 곳곳에서 풍겨나는 향기를 맡고 싶었다. 지오의 살내를 떠올린 태석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온몸의 어느 곳보다 진한 흥분을 느끼는 부분이 뻐근해졌다. 겨우 그 정도만 생각해도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 본 태석은 운전석의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으며 이를 갈았다. 참을성하면 알아주던 그였는데,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태석은 휴대폰을 들어 지오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길게 눌렀다.'나타나기만 해봐라. 꼭꼭 씹어 먹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