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오늘도 사랑해

갑자기 차선을 바꿔 끼어든 차 덕분에 하영은 깊이 빠졌던 생각의 늪에서 단번에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러시아워가 아닌 시간에도 길은 많이 막히고 있었다. 하영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멀리서 커다란 스크린에 광고로 보이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하영은 무심코 그곳을 응시했다. 자동차 광고가 끝나고 한없이 푸른 들판이 영상화면에 담겼다. 그리고 화면은 느리게 움직이더니 한 남자의 모습이 그 큰 스크린을 꽉 채우면서 나타났다. 순간 하영은 호흡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 남자는 하영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영은 떨리는 두 손을 맞잡고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어? 윤건후네. 한동안 잠적해서 안 보이더니 요새 다시 나오기 시작했네요.”'운전기사가 옆에 앉은 박수현에게 말했다.'“그러게요. 한 4, 5년 됐죠, 아마? 그때 무성한 소문만 낳고 소리 없이 연예계에서 잠수를 타서 추측설이 엄청났잖아요. 그때 아마 지희수와 결혼설까지 오고 갔죠? 그 일 있고 나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지희수는 엄청 뜨고 윤건후만 잠적했죠. 뭐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지희수 말고 또 다른 여자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던데…….”'“맞아요. 저도 기억해요. 그때 윤건후 어떤 예능프로에 나와 사랑고백을 했는데 그때 영이라고 했던 그 여자가 나중에 결국 지희수로 밝혀졌죠. 지희수 본명이 김지영이거든요.”'하영의 떨리는 두 손은 자동차 시트를 꽉 움켜잡았다. 갑자기 큰 두통이 회오리바람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입술을 가볍게 떨고 있었다.'“암튼 연예계 세상은 복잡한가 봐요. 어떤 게 진실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어요. 그나저나 좀 있으면 윤건후가 주연으로 한 영화가 곧 개봉한다면서요? 컴백 후 첫 작품이라 다들 기대가 많은가 봐요.”'윤건후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반복될 때마다 몰려오는 통증은 더 깊이 하영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영은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갔다. 그런 하영의 모습이 룸미러를 통해 보이자 박수현은 급히 머리를 돌렸다.'“하영 씨, 어디 불편해요? 왜 그래요?”'“멀미가 좀…….” '“박 기사님, 차 좀 세워 봐요.”'차가 도로변에 세워지자 하영의 몸이 밖으로 쓰러지다시피 흘러나왔다. 그녀를 부축하러 다가오는 박수현에게 하영은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나서 한적한 곳을 찾아 무릎을 쭈그리고 앉았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면서 식은땀이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혹시 길에서 우연히 부딪치게 되더라도 가볍게 인사하면서 지나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그 이름 세 글자에 이렇게 격하게 반응할 줄 몰랐다. 식은땀 방울과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함께 적시기 시작했다. 하영은 괴로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팠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동안 숨죽여 살아오던 그녀의 빨간 심장이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심장은 그때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해내기 시작했다.''[본문 중에서]'''유펑은 하영이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였다.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그때 하영을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하영이 한국 오고 나서도 가끔씩 메일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요즘 들어 연락이 뜸해졌다. 하영에게 각별하게 대해줬던 친구였던 만큼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가운 건 사실이었다. 하영은 유펑이 전화번호 적어준 메모지를 만지작거렸다.'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나서 우선 각자의 방에서 짐을 풀기로 했다. 건후는 방에 들어오자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부터 벗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불쾌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짜증났다. 입국절차도 순조로웠고 그 어떤 사고도 없이 잘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토록 찜찜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건후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만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하영을 뜨겁게 포옹하던 그 유펑인지 뭔지 하는 그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잠깐이었지만 그 남자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남자의 직감이었다. 하영에 딴 마음을 품은 남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 일에 왜 기분이 우울해지는지 그게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냥 키스 한 번 한 거였잖아. 그것도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데 내 기분이 왜 이렇게 오버하고 난리지?’'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 시켜도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날 분위기에 취해 한 키스였지만 아직도 그때 그 느낌을 떠올리면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호텔까지 오는 내내 애써 태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그녀의 희고 가는 손이 그의 눈앞에서 움직일 때마다 그의 가슴에서 묘한 기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그녀의 빨간 입술에 눈이 가면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면서 그 입술을 빨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너무나 솔직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몸에 건후는 화가 나고 가슴이 다 답답해졌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느닷없이 나타난 남자 하나가 그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덥석 안더니 그녀의 두 손까지 꼭 잡으며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의 두 눈에는 오로지 그 두 사람만 보였다. 팬들의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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