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네가 가라, 펜트하우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높이의 건물.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손 그늘을 만들어 보지만, 그래도 쨍한 빛줄기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층수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건물은 감히 올려보기도 버겁다 생각하던 지호다.

“거지 같네….”

건물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지호는 결국 거지 같은 상황에 굴복하기로 했다. 아니, 사실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굴복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고층 빌딩 앞에 지호가 서게 된 사연은 이렇다.

***

“네가 가라 펜트하우스”

옆에서 사과를 집어먹던 지호는 똑똑히 엄마의 말을 들었지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잘 못 들은 거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호는 그렇게 병실 TV에서 한참 절정을 향해 달리는 막장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막장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엄마가 여자 주인공의 머리채를 잡기 시작했고, 병실 안 모든 아줌마 환자가 입을 모아 ‘죽일 년!’ ‘갈아 마실 년!’ 각종 신박한 욕 들을 내뱉는 그 틈새로 또다시 똑똑히 들려오는 목소리를 지호는 이번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네가 가라고 그 펜.트.하.우.스! 민지호!”

왜냐하면 병실 안에 있는 아줌마 환자들의 욕들도, 막장의 대 환장 쇼를 보여주는 TV 드라마

소리도 모두 이겨 먹는 엄마의 우렁찬 성량은 못 들은 척하기엔 좀 많이 쪽팔렸다.

“미쳤어? 어딜 자꾸 가래”

결국 참다못한 지호가 사과를 우물거리며 대꾸하자 엄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지호의 양어깨를 꼭 잡았다.

“그 집에서 주는 일당이 한두 푼도 아니고 이렇게 일 못 나가고 있다가 영영 잘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래서 나보고 그 집을 대신 들어가라고?”

“딱! 한 달이야, 엄마 입원해 있는 동안만. 응?”

평생 휴일 없이 일만 하던 엄마였다. 아무리 직업 만족도가 높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깟 일자리가 뭐가 그리 대수여서 이리 전전긍긍하는지 답답한 지호였다.

게다가 딸내미에게 대신 땜빵을 해달라니! 엄연히 자신도 직업이 있건만 자꾸만 이런 식으로 백수 취급을 하는 엄마에게 지호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놀아? 나도 일하는 사람이야.”

“넌 회사 안 다니잖아”

“꼭 회사를 나가야만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나도 맨날 밤새워서 작업하느라 초주검이야. 됐어, 난 못 해”

결국 엄마의 스매싱이 지호의 등짝으로 날아와 꽂혔고 ‘아악!’ 스매싱 강도와 맞먹을 만한 데시벨로 소리를 내지른 지호는 화끈한 등을 문지르며 엄마를 힘껏 노려봤다.

“어디 자식이 그런 눈으로 애미를 봐? 눈 안 깔아?”

“아 좀! 그냥 이참에 관둬. 남의 집 가정부 일이 뭐 그리 아쉽다고 이 난리야”

“내가 그냥 가정부랑 같냐? 명색이 재벌 총수 집안 집사라고! 집사!”

본인은 꾸역꾸역 집사라고 주장하지만, 엄마가 하는 일은 가정부였다.

엄마에게는 재벌 총수 집안 집사라는 이상한 권위 의식이 있었다.

남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심지어 그 집 살림까지 본인 손으로 꾸려나간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다. 어쩔 땐 본인이 그 집 사모님인 양 행세를 할 때도 있었으니 엄마의 직업 만족도는 가히 대한민국 최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던 중 그 잘난 재벌 집 손주 도련님이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컴백했다.

그 도련님은 그냥 얌전히 본집으로 기어들어 오면 될 것을 꼴에 독립하겠다고 선언했고, 또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 준 회장님은 장차 기업을 뒤이을 손주에게 어마어마한 펜트하우스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작은 사모님이 가장 아끼는 집사도 패키지 구성으로 딸려 보냈다.

그게 바로 지호의 엄마였다.

어찌 보면 엄마에게는 뜻밖의 전근인 셈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별다른 불평 없이 그 집으로 옮길 수 있었던 건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작은 사모님이 제시한 상여금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달이 월급에 붙어 나올 인센티브도 꽤 짭짤해 단단히 입맛을 다시고 있던 엄마였다.

하지만 곧 재수에 뒤이어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딸려온 악재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펜트하우스로 첫 출근 도장을 찍기 전 늘 고질병으로 달고 살았던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급기야는 다리까지 절더니,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던 중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엄마였다.

놀란 지호가 엄마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받은 병명은 디스크. 이미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기에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지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걸을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은 엄마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도 당장 펜트하우스에 출근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더 걱정스러워했다.

어쩌면 엄마에겐 그 집으로 일을 하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강력한 사형선고로 느껴졌을 것이다. 대기업 사원 못지않은 월급에 넉넉한 인센티브가 당장에 아쉬웠던 엄마는 지호를 스페어타이어로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다른 가정부에게 그 좋은 자리를 내주느니 잠깐 동안 지호를 이용해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 엄마의 계획이었다.

“아니,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어차피 그 댁 도련님도 집 안에서 집사랑 마주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만 일하면 되는 거라니까? 들킬 일이 없다고”

이 까탈스러운 집주인과는 절대 마주칠 일이 없으니 그냥 닥치고 자신의 땜빵을 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엄마를 앞에 둔 지호는 그저 기가 차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엄마, 그럼 내 작업은 어떻게 하라고?”

“그 집 일 하고 남는 시간에 하면 되잖아.”

“나도 바쁘다고!”

“네가 출근 시간이 있어? 퇴근 시간이 있어? 대중없이 일하는 년이. 어차피 낮에 실컷 퍼 자고 놀다가 다된 새벽에나 일하면서! 한 달 동안 이 엄마 도와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지랄이야!”

그렇게 지호는 엄마와 몇 시간 동안의 실랑이를 벌였다.

급기야 나중이 되어서는 자식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전 되었고, 어느새 막장 드라마를 보던 아줌마 환자들의 시선은 지호 모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지호가 세상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엄마의 눈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망신 주려고 작정한 엄마의 눈물이었다.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건만 엄마의 ‘악어의 눈물’ 작전만 나오면 지호는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손을 놔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엄마의 작전은 통했고 그렇게 지호는 굴복하고 말았다.

***

탕-

단 한 발의 총성이었다. 하늘을 가르던 꿩 한 마리가 힘없이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데 필요한 것은 단 한 발의 총알, 그뿐이었다.

이안은 자신의 총알로 인해 벌어진 결과에 눈을 두지 않고 바로 시선은 돌려버렸다. 이때, 이안의 뒤에서 경쾌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 있는 동안 실력이 녹슬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네놈은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어.”

변함없는 사냥 실력을 칭찬하는 도 회장에게 이안은 간단히 목례를 했다.

“과찬이십니다.”

“내가 지금껏 해 온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뭔 줄 아느냐? 네놈한테 사냥을 가르친 일이다.”

도 회장의 말에 이안의 표정은 미세하게 굳어갔다. 이러한 이안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챌 리 없는 도 회장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철학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약육강식. 그건 변하지 않는 삶의 원칙이지. 최상위 포식자만이 살아남는 건 자연의 섭리이자 당연한 이치다.”

***

약육강식.

어릴 적부터 이안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말이자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하는 말이었다.

이안은 어릴 적부터 숫기 없고 얌전한 아이였다. 이안의 할아버지인 도 회장은 그런 이안을 항상 걱정했다. 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집안의 장손이란 놈이 계집애처럼 말수도 적고 온종일 틀어박혀 책만 읽어대니, 한 회사를 손안에서 쥐락펴락하는 노인네 눈에는 그 모습이 어지간히 답답해 보였다.

이안의 아버지는 이안이 어릴 적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졌다. 아비 없이 자란 이안이 애틋한 도 회장이었지만 한편으론 자기 아들이 일찍 떠난 빈자리를 채워야 할 사람 역시 이안이었기에 마냥 이안을 귀여운 손주로 부둥부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 회장은 자신의 손주를 큰 그릇으로 키워내기 위해 주말마다 이안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어린 이안은 자신의 눈앞에서 총을 맞고 축 처진 채 사냥개의 입에 물려온 꿩을 볼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때마다 도 회장은 이안 앞에 죽은 꿩을 들이밀며 말하곤 했다.

“이안아 똑바로 봐라.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결국 약한 것은 더 강한 것한테 잡아먹히는 법이야. 여기저기 물어 뜯겨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하는 거다.”

기어이 도 회장은 어린 이안에게 사냥총 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이안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살생을 매일 주말마다 강제로 해야만 했다.

도 회장은 이런 자신의 교육 방식이 여린 이안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장차 한미그룹의 수장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 회장의 바람대로 이안은 사춘기를 거치며 점점 남자답게 자라났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곱상한 모습을 그래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골격은 절대 곱상하지만은 않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187cm까지 훌쩍 자란 키. 그리고 야리야리한 이목구비에 단단해 보이는 얼굴선까지 더해져 이안은 소년과 남자, 그 경계에 있는 것처럼 묘하고 아슬아슬한 매력을 뿜고 있었다.

게다가 도 회장에 의해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자라 온 이안은 성격 또한 어릴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눈물 많고 감수성 풍부하며 부끄러움이 많았던 이안은 차가운 얼음 왕자로 성장했다. 겉으론 젠틀하지만, 항상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 법이 없었고, 사람을 바닥까지 꿰뚫어 보는 관찰력은 약한 것은 솎아낼 수 있는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군대를 다녀온 이안은 단단하게 자리 잡은 골격에 잘 다듬어진 근육까지 더해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고, 사교계에서 이안을 마주친 내로라하는 집안의 규수들은 이안을 향한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재벌과 정치인들 사이를 오가는 중매쟁이들에게이안은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던 중 별안간 이안이 유학을 가겠노라 선언을 한 것이다. 이안은 한참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참이었다. 이쯤에서 잘나가는 정치인이나 한미그룹에 괜찮은 끄나풀이 될 만한 집안과 연을 맺어 슬슬 그룹을 키워나갈 요량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도 회장이었다.

하지만 한미그룹을 키워나갈 리더가 되기 위해선 더 큰 곳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손자의 의견도 일리는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 이안은 미국 콜롬비아 경영 대학원에 합격증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아쉬운 도 회장은 이안에게 괜찮은 짝을 찾아 결혼한 뒤 함께 나가라 제안했지만 이안은 이를 거절했다. 오로지 지금은 경영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 이안의 의견이었다.

결국 도 회장은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가장 비싼 값이 나왔던 제일 그룹의 딸과 약혼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이안을 보내주었다.

***

이안이 도 회장에게 더 큰 곳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배워오겠다고 한 말은 모두 개소리였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안은 강해지라는 도회장의 훈육에 매일 숨 막혀왔다. 아버지 대신으로 자신을 키우는 도회장의 집착을,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한편으론 그 모습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절함처럼 보여 어린 이안은 묵묵히 할아버지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안이 강한 육식동물의 가면을 쓴다 한들 타고난 그의 성정은 어쩔 수 없었다.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이안의 거북함은 강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완벽주의자 콤플렉스를 지니게 된 이안은 자신의 공간에 티끌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더더욱 조여 오는 것만 같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매일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내오던 이안은 잠시 군대에 간 사이에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제대하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조금이나마 더 자유를 느끼고 싶던 이안은 해외를 나가기로 했다. 도 회장이 유학을 가는 조건으로 뭔가를 걸었던 거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안에겐 당장 눈앞에 있는 자유가 더 간절했으니.

하지만 MBA 과정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안은 회사로 돌아와 경영학 수업을 받아야 했다. 이젠 집뿐만이 아니라 회사 안에서도 도 회장의 사정거리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에 이안은 마지막 카드인 독립을 던졌고, 강해진 데다 더욱 영리해져서 돌아온 이안을 백 퍼센트 신뢰하게 된 도 회장은 흔쾌히 그 카드를 받아들였다.

***

겉보기엔 냉철해 보이지만 이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아직도 여리디 여린 소년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신이 가장 믿는 집사를 딸려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내준 집사마저도 본가의 사람이라 도 회장의 cctv처럼 느껴진 이안이었다. 결국 이안은 자신이 집안에 없을 때만 집사를 들이기는 조건으로 어머니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내일이 첫 출근인데 잘할 수 있겠느냐?”

이안은 도 회장의 물음에도 아랑곳없이 꿩을 겨누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어느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숨을 참은 이안은 신중하지만 과감하게 방아쇠를 당겼고, 다시 한번 탕- 마른하늘에 울리는 총성과 함께 꿩 한 마리가 맥없이 곤두박질쳤다.

이안은 겨누던 총을 내리곤 도 회장을 보았다.

“제가 언제 실망시킨 적 있나요?”

덤덤한 표정으로 내뱉은 자신만만한 이안의 대답에 도 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내뱉기까지 이안이 참고 버텨온 시간의 무게들을, 아마 그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