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합류

1925년. 경성

기차가 경성역에 도착했을 때, 경미는 무릎 위에 둔 손가방을 짐짓 초조한 기색으로 다시 살폈다. 어깨에 겨우 닿는 단발머리가 어색했다. 몇 년 전부터 스스로 신여성이라고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여인들이 지금 경미와 같은 양장에 단발머리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그러한 추세에 그녀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만 내릴까요, 부인?”

손끝이 차갑게 식은 것을 느끼고, 까만 장갑 아래 손가락을 주무르던 경미의 눈앞에 커다란 손 하나가 내밀어졌다. 경미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 써 날카로운 눈매를 가린 정환이 그녀를 이끌었다.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경성 역에 내려섰을 때, 경미는 몇 해 만에 조선 땅을 밟으며 새삼스러운 감회를 느꼈다.

“긴장하지 말아요.”

개찰구 앞에서 승객들의 신분을 일일이 검사하는 일본 순사를 앞두고, 정환이 경미의 손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경미가 손가방에서 여권을 찾아 꺼내들었다. 괜스레 식은땀이 고이는 등을 애써 곧게 펴 보이며 줄의 앞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귀국 목적은?”

“모친의 병환 때문이오.”

“……통과. 다음!”

검은 제복 앞에서 바위처럼 얼어붙은 경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정환이 두 사람의 여권을 돌려받고 짐을 챙겼다.

“호화롭네요.”

개찰구를 지나 1층의 넓은 홀로 빠져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경미가 마침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완공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역의 내부는 혀를 내두를 지경으로 호사스러웠다.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찬 거대한 홀과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2층. 오가는 이들의 복색은 저마다 가지각색이었고, 그들의 용무 또한 제각각인 것처럼 보였다.

경성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조선인 날품팔이꾼들과 입구 앞에 줄지어 대어놓은 인력거들, 그 위를 귀족 같은 자태로 오르는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들이 한데 뒤섞여 혼란스런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러한 광경을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스치듯 그 옆을 지나치며 인력거에 몸을 싣고 나서야, 경미는 그녀가 무사히 조선 땅에 들어왔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어디로 모십니까?”

“회현동으로 가주시오.”

총독부 폭탄 투척 거사 직후 도망치듯 떠난 경성이었다. 비록 거사는 성공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친구를 잃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도착한 타향은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빼앗긴 내 나라 안에서도 모진 핍박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하물며 내 나라도 아닌 남의 땅에서야 오죽했으랴.

몇 해가 지나도록 몸에 익지 않은 혹독한 추위와 더불어 마음에도 한기가 잔뜩 들었다. 뼛속까지 시린 그런 날엔 낯선 타국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성에서 잃어버린 이를 그리워하고는 했다.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가 비단 서준뿐인 것만은 아니었다. 무수한 청춘들이 독립을 위해 살과 뼈를 갈아 넣었다. 그럼에도 서준이 잊히지 않고 두 사람 가슴에 내내 아프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이 무사히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좁은 인력거에 몸을 숨기자마자 경미는 무릎을 바깥쪽으로 틀어 앉았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을 거두어들인 정환이 모자의 챙을 조금 들어 올려 그들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가지의 모습을 살폈다.

몇 년 새 경성의 모습이 많이도 변했다. 피를 빨리는 것처럼 조선인은 말라가고, 일본인은 살이 찌고 있었다. 땅을 잃은 소작농들이 일을 찾아 경성으로 오면서 빈민과 걸인이 크게 늘어났다. 제대로 된 옷도 주워 입지 못한 아이들의 팔다리가 뼈만 남아 앙상했다. 서양식 건물과 그 앞을 지나는 형형색색 투피스, 쓰리 피스 차림의 인파. 그에 반해 좁고 더러운 골목 안에 그림자처럼 고여 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무엇을 그리 봅니까?”

정환이 밖을 향해 고정된 경미의 눈을 좇으며 물었다. 한참이나 답이 없던 경미가 고개를 돌려 정환을 마주했다.

“함정일 수도 있겠지요?”

경성에 도착할 때까지도 꿋꿋하게 세워놓았던 다짐이 무너진 것처럼 불안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경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정환은 그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대답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분명……!”

실은 정환에게서 무언가 안심이 될 만한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란 걸 알면서도, 정환은 그들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무언가 반박하려던 경미도 아내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입을 다물었다.

보름 전, 경성의 비밀 연락책에게서 상해의 거처로 전보 한 통이 도착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일상적인 안부와 인사. 다소 잡다한 신변 이야기들.

얼핏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문장 속에 국내 정세와 접촉하고 있는 대상, 자금을 모으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 등이 암호로 감춰져 있었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암호를 해독한 조직원 하나가 추신처럼 달린 글을 보여주었다.

<경성에 전직 간호원과 배달 청년을 찾는 이가 있음.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언.>

그 전보를 전해 받고 겨우 일주일 만에 경성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고 짐을 꾸렸다. 그들이 애초에 어떠한 경위로 그곳을 떠나야 했는지, 또 어떠한 위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를 감수하고서라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환과 경미를 알고, 또 찾을 유일한 한 사람이 경성에 무사히 살아있다고.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시기였다.

소위 민족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던 이들 중 다수가 변절자로 돌아섰다. 아직까지는 일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상해 조차지에 임정을 세웠으나 이제 겨우 구실을 하는 수준이었고, 그마저 무너뜨리기 위해 동지들의 이름에 수배를 내리고, 끝없이 밀정을 밀어 넣고 있는 실정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유화정책을 펴면서, 물밑에서는 독립군들을 잡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한 번 그들의 눈 밖에 나면 국경을 건너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을 이동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렇게 빨리 경성에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 누군가의 악재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호재가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경성에 들어오기 위해 급선무가 바로 여권을 구하는 것이었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독부가 신뢰할 만한 인물의 보증이 필요했고, 당장 떠오르는 얼굴은 부친뿐이었다. 당연히 욕만 된통 얻어먹으리라고 예상했었는데, 뜻밖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손을 써보겠다는 연락이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부친의 첩이 낳은 두 살배기 아이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다는 소식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만약 그 아이가 살아있었더라면 부친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 정환에게 어떤 호의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부친의 손을 거쳐 간 수두룩한 여인들 중에서 또 누군가 아이를 밸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다시 거두어질 조건부 호의였으므로, 정환은 부친의 권세를 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쪽 골목으로 꺾어주시오.”

인력거 한 대가 겨우 지날 좁은 길로 들어섰다. 하얀 대리석으로 기둥을 올리고 벽면을 쌓은 양식 건물이 즐비한 황금정이나 명치정과는 달리 이곳은 일식 목조주택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저 멀리 익숙한 대문의 모양이 눈에 들어오자, 정환의 턱에 억세게 힘이 들어갔다.

“괜찮으실 거예요.”

경미가 경환의 무릎을 툭 두드리며 위로했다.

일제에 빌붙은 아비의 권세를 빌리는 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었어도, 급격하게 나빠진 어머니의 병환을 명분 삼아 돌아온 것은 죄스러웠다. 명목상 어머니의 간병인이었던 경미와 집안의 반대를 피해 외국으로 나갔다가 혼인을 하고 돌아온 것으로 되어있었다.

권세와 계집질에 눈이 팔려 집에는 일 년에 열흘도 돌아오지 않는 부친과 나라를 구명한답시고 어머니에 무정한 정환이 무엇이 그리 다르겠는가. 때문에 정환은 늘 이 집에 발을 들이는 일이 가슴 답답하기 느껴졌다.

“이미 몇 번이나 예상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끝일까. 이번에는 정말 눈 감으셨을까.

회현동에서 애타게 그를 찾으면, 정환은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어머니가 와병 생활을 한지 십 년이 넘었다. 정환에게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어머니와 죽음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친은 그전부터 이미 기생집이며 본토와 경성에 각각 차려준 첩들의 집을 다니느라 바빴다. 사람에게 옮기는 병이라는 말에 이쪽 방향으로는 발길조차 뚝 끊었다. 폐병을 잘 본다는 한의사 하나를 주치의로 붙여주고, 간병인을 쓰며 달마다 얼마간 돈을 부치는 것으로 어머니와 정환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아마 부친은 이제 병색으로 말라붙은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정환은 어머니가 폐병을 오래 앓았지만, 만약 돌아가신다면 어머니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고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얼굴의 입주 간병인이 나왔다.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인은 처음 보는 정환을 경계했다가, 이 집 아들이란 말에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서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소파에 겉옷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정환의 걸음이 안쪽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지원이 끊긴 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웃자란 앞뜰이 내다보이는 기다란 복도에는 정오가 지날 즈음이면 볕이 들지 않았다. 차가운 나무 바닥은 밟히는 대로 끼익끼익, 을씨년스런 소리를 냈다.

점차 어두워지는 조도와 함께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경미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말았다.

노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간병인이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린 틈새로 새어나오는 묘한 냄새.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냄새였다. 다행히 둘 중 누구도 그것에 주춤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 죽음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으므로.

그래도 아들로서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는 일은 힘에 부치는지, 어쩔 수 없이 힘이 꽉 들어간 정환의 주먹을 경미가 두 손으로 감쌌다. 그보다 차가운 손이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

갈라진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듣지 못한 것처럼 미동도 없던 어머니가 곧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정환이 침대 가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불 속에 손을 집어넣어 어머니의 얇은 팔목을 더듬었다. 겨우 엄지와 검지만으로 감쌀 만큼 야위어있었다.

한때는 이 손이 하늘보다 커다랬었다. 살뜰히 얼굴을 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어머니의 손. 이제는 그저 뼈에 얇고 마른 가죽이 붙어있다는 느낌이었다.

“……환아.”

내리뜬 눈자위가 뿌옇다. 저 눈으로 그의 얼굴을 볼 수나 있을까 싶었다. 힘없이 올라온 어머니의 손이 정환의 이목구비를 덧그리듯 매만졌다.

“어디 아픈 데는 없니……?”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한 목소리.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병을 앓고 난 뒤 정환을 보면 늘 묻던 말이었다.

어디 아프지는 않니, 몸은 괜찮니, 건강하니,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힘없이 뻗어지는 손을 매섭게 쳐낸 적도 있었다. 맥없이 흘러나오는 그런 말 대신, 직접 챙김 받고, 그 손으로 만든 끼니를 먹고 싶었다.

떨리던 손이 차마 그에게 닿지 못하고 거두어졌던 것이 이제야 기억이 난다. 아프지 않냐고 묻는 말 속에 어머니 본인이 아들을 상하게 할까 몹시도 겁을 내는 마음이 깃들었던 것도.

아아, 어머니…….

정환이 두 손바닥에 젖은 얼굴을 묻었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부친인 류 사장의 인맥이 조선 천지에 뻗어 있었어도, 소박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본처의 장례식을 물어물어 찾아올 이는 없었다. 심지어는 남편이라는 작자마저 외면했으니.

일본에 가 있는 부친에게 전신을 보내놓고도 정말 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조선 땅에서 사는 일본인들이 그렇듯, 부친도 일본에 현지처를 만들고 거기서 지낸다는 얘기는 들었다. 역시나 정환의 예상대로 부친은 다음 날 아침 인편에 얼마간의 돈을 부쳐주었을 뿐, 그 이상 전하는 말은 없었다.

부아는 치밀었어도 실망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부친에게 그만큼의 기대도 없기 때문이리라.

간병인이 하루 동안 자리를 지켜주었다. 정환은 급여에 웃돈을 더해 건넸다. 딱히 어머니와 말동무를 한 것은 아니었어도 몇 해가 넘게 곁을 봐주던 사람이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돌아서는 눈이 붉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