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버지와 아들

정환이 경미를 데려간 곳은 회현동에 위치한 일본식 목조 주택이었다. 돈 많은 부호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대다수가 일본인, 아니면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으로 거듭난 친일파들이었다.

“정환 씨, 어째서 이런 곳에…….”

“나무는 숲에 숨는 것이 안전하니까요. 들어가죠.”

하지만, 하고 붙잡으려던 경미의 손은 정환에게 닿지 못했다. 정작 정환이 그녀보다 더 경직된 얼굴로 문간을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누구세…… 아이고, 정환 도련님!”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정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후다닥 뛰어나왔다.

“대체 이게 얼마만이에요, 응? 연락도 한번 없어서 사모님이 얼마나 걱정했다구.”

정환이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얼른 들어가서 사모님께 말씀 전해야지. 들어와요, 들어와.”

아주머니가 비켜서면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대문을 넘어 조경이 정돈된 마당을 지났다. 겉에서 봤을 때보다 들어왔을 때 더욱 규모가 큰 집이라 놀라웠다. 경미는 갈수록 표정이 차게 식는 정환을 걱정스럽게 힐끔거렸다.

외관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호화스러웠다. 아니, 정확히는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웬만해선 티내지 않으려 했음에도 휘둥그레진 시선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경미가 작게 입을 벌린 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여닫이문이 열려있는 다다미방이었다. 커다란 침대에 반쯤 파묻히듯 기대어 나이 든 여자가 앉아있었다. 파리한 안색에 비쩍 마른 몸 때문에 얼핏 노인처럼 보였다.

정환이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덩달아 경미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환이니?”

짧은 물음을 뱉어내는데 그보다 곱절은 긴 기침 소리가 앞섰다. 몰아쉬는 여자의 호흡에서 쉬익, 쉬익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경미는 단번에 그 소리를 알아챘다. 폐병이었다.

“어디, 얼굴 좀…… 보자.”

속을 긁어내는 듯한 기침이 오래 계속되었다. 끝내 몸을 앞으로 숙이며 흰 수건에 피 섞인 가래침을 뱉어낸 여자가 앙상한 두 팔을 뻗었다.

경미가 순간적으로 흠칫 물러섰다. 정환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등을 아주 잠깐 받쳐주었다가 거두어졌다. 그가 경미를 등 뒤에 두고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

나직하게 흘러나온 말에 지켜보던 경미의 눈이 커졌다. 물론 아주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다만 이 호화스런 집과 주류상의 배달원으로 일한 정환과의 접점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웠을 뿐.

모친과의 짧은 해후를 마치고 두 사람은 곧 별채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 내내 어딘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던 정환이 마른세수를 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아셨겠지만, 이곳은 제 어머니의 집입니다.”

경미가 줄곧 궁금해하던 사연을 정환이 먼저 털어놓았다.

“내 아비란 자는 나라의 패망에 누구보다 앞장선 매국노로, 일본의 군수 물품을 납품하며 부를 쌓았습니다.”

정환이 찬 미소로 자조했다.

“그런 작자라도 오늘 같은 때는 도움이 돼 다행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이곳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겁니다.”

사업차 한동안 일본에 머물고 있는 집주인은 사실상 이곳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곳곳에 첩을 두고서 번갈아 다니기에도 바쁠 것이다.

“정환 씨는 어떻게 조직에 가담하게 된 건가요?”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거부의 자제. 일제 치하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이 집에서 나고 자란 정환이 어떤 연유로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만약 존경할 만한 아버지였더라면, 저 역시 친일에 앞장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환이 한숨처럼 대답했다.

“아들인 제가 기억하는 아비는 늘 어머니와 가정에 불성실했고,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부덕했고, 행하는 모든 일이 부정했으며, 나라에 불충했습니다.”

부친을 평하는 말들은 가차 없었다. 짙은 경멸이 그 말들 곳곳에 배어있어, 부자간의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냈다.

“조직에서 저를 경성에 심어둔 것도 어느 정도는 이 집안을 염두 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잘못돼서 잡혀 들어가더라도 가진 권세로 목숨 부지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만큼 정환 씨를 믿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글쎄요.”

비스듬히 머리를 기울인 정환은 회의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요. 친일하는 아비를 둔 제가 독립운동을 한다니, 무작정 믿는 쪽이 오히려 말이 되지 않을 겁니다. 때문인지 가끔은…… 경성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환 씨, 그건…….”

“지금은 이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임무라는 것을 압니다. 설령 조직에 신뢰받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있는 것뿐일지라도, 맡은 자리에서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이르는 정환에게 결국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어머니의 먼 친척인 것으로 해두었으니,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 됩니다.”

“잠깐만요. 저만 여기서 지내라고요?”

“그간 남의 집에서 불편했을 텐데 마음 놓고 푹 쉬어요.”

그렇게 치자면 이곳 역시 경미에게는 남의 집이었다. 제 집에 들여놓고, 이곳을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환 역시 마찬가지였고.

경미가 묘하게 올려다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 평소와는 달리 장난기 어린 행동이었다. 그 별 것 아닌 손길에 휘청거리면서도 경미가 고집스레 정환을 응시했다. 끝내 정환이 쓰게 어린 미소를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게는 이 집이 무덤이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정환은 미련 없이 집을 떠났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경미는 그가 이 집을 무덤이라 표현한 것을 곱씹어 보았다.

무덤은 죽은 것들을 가두는 집이었다. 정환 역시 이 집에 사는 동안 무수히 많은 것들을 죽여 온 것은 아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죽어가는 그의 어머니였다. 정환의 모친은 어두운 실내에 웅크린 채 숨 가쁜 기침으로 시시각각 생을 깎아내고 있었다.

아마 한, 두 해 앓은 병이 아닐 것이다. 호흡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숨을 뱉고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짜부라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경미도 느껴본 적이 있다. 그러한 고통마저 느낄 수 없을 때, 죽음은 안식처럼 찾아들 것이다.

정환이 그 다음으로 이 집 안에 매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대, 가족에 대한 일치감, 안온함 같은 것들이 이 크고 차가운 집에서 조금씩 새어나갔을 것이다. 아버지가 저지르는 잘못들이 정환에게서 긍지와 의협심마저 앗아가려 했을 때, 정환은 이 무덤 같은 집을 떨치고 나왔으리라.

경미는 부모님의 죽음을 개죽음이라 말하던 언니 경순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런 시대였다. 집을 집이라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시대. 부모님의 원통한 죽음이 개죽음밖에는 되지 않는, 그런 시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채비를 마친 경미가 방을 나왔다.

“어디 나가시려고요?”

“네. 저녁 즈음해서 돌아올 거예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괜찮으니, 제 몫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정환이 언질해둔 것이 있는지, 그의 집에서 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친근한 태도로 경미를 챙겼다.

집을 나서면서 정환에게 전언을 남겨두어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리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살뜰한 배웅을 받으며 대문을 나섰다.

회현동에서 전차를 타고 이화동으로 향했다. 일전에, 서준이 정성 들인 글씨로 지방을 쓰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밤 두 남자의 발밑에서 무참하게 짓이겨진 조기를 떠올리고는, 가는 길에 그것을 대신할 제수용 생선 한 마리를 샀다.

서준의 집 대문은 닫혀있었어도 잠겨있지는 않았다. 이따금 그의 집에 들러 놀다 가는 어린 제자들을 위해 문단속은 하지 않았다.

경미가 지내는 동안에도 한 번 순애와 도라는 아이가 함께 찾아왔었다. 서준이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데리고 나가준 덕분에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서준을 무척 따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만세시위 때 만난 꾀죄죄하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을 직접 표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애석하게 느껴졌다.

인기척이 없는 빈집에 스스럼없이 발을 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엌을 돌아보았지만 역시나. 그나마 탕국 거리로 소고기를 조금 사다 둔 모양이었다.

“하긴, 사내들이 뭘 알겠어.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절이나 할 줄 알지.”

속으로 타박하며, 다시 장으로 갈 채비를 했다. 소소하게나마 나물도 무쳐야 했고, 상에 올릴 과일도 사와야 했다.

서준이 오기 전까지 준비를 마치려면 제법 품이 들겠지만, 그간 신세 진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대수로운 일도 아닐 것이다.

슬며시 대문을 닫아놓고, 걸음을 재촉했다.

***

경미가 떠난 다음 날 밤이었다. 자식이라고는 서준 하나뿐이라 단출하게 제상을 차려 차례를 지내고, 느지막이 잠들 무렵이었다. 서준의 집에 생각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깊은 밤 쿵쿵, 대문을 두드리며 애타게 서준을 부르기에 혹 경미가 되돌아온 걸까 싶었다. 그러나 대문 밖에서 울고 있던 이는 다름 아닌 도, 그의 어린 제자였다.

“도야. 네가 이 시간에 대체 어쩐 일이냐?”

걸쇠의 빗장을 풀자 열리는 문틈 새로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서준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서준의 허리에 덥석 매달리기부터 하는 아이의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명치께에 올라온 아이의 정수리를 가만 쓸어주며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서준의 앞섶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울어 젖힌 도가 딸꾹질을 하며 겨우 눈물을 그쳤을 때, 서준은 부엌에서 식은 보리차를 떠다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홀짝이며 목을 축인 도가 손등으로 불긋한 눈가를 비비며 서준을 따라 방으로 올라왔다.

“집에 말씀은 드렸고? 어머니도 네가 여기 있는 걸 아시는 게냐?”

의기소침하게 어깨를 웅크린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하시겠구나. 그렇지?”

“어머니는 지금 집에 안 계세요.”

머리를 푹 수그린 도가 조금은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평생을 외지로 떠돌며 가정을 등한시하는 부친으로 인해 가난하게 살아온 모자는 서로를 애틋해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가 유기점 사환으로 들어간 것도 모두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리려는 기특한 효심 때문이었다.

학당에 다닐 적엔 짓궂은 행동으로 계집아이들의 울음보를 곧잘 터뜨리긴 했어도, 어머니 속 썩히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던 도인데. 오늘따라 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스레 버티는 아이의 낌새가 어쩐지 심상치가 않았다.

“아, 아버지가 도, 돌아오셨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더듬더듬 털어놓는 말에 서준은 소리 없는 탄식을 흘렸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우환 하나 품지 않은 집이 어디 있을까. 도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비라고는 하나, 가정을 건사하고 돌보는 인사가 아니었다. 전국 방방곡곡 노름판을 따라다니다 돈이 떨어졌을 즈음에야 돌아와 집안의 동전 한 잎까지 박박 긁어가고는 했다.

그렇게 다시 훌쩍 떠나버리고 나면, 한동안은 모자가 끼니 때울 여력도 없어 시장 바닥에 내다 버린 채소 줄기까지 주워 허기를 채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