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두 번째 부탁

밤이 되니 정신이 점점 말짱해지기 시작했다.

낮 동안 몸과 맘을 괴롭혔던 몽롱함이 가시며 집중력이 한껏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아, 망할 시차….”

메이슨은 뻑뻑한 눈 주위를 꾹꾹 누르며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Thank you.]

첫 번째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낸 메이슨은 라이언으로부터 온 땡큐 문자를 받고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그는 자신의 깔끔한 업무 처리 능력에 스스로에게 대견해하며 핸드폰을 뒤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라이언은 잘 만났습니다.”

- 그게 다인가요? 만나서… 그리고 그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재촉하지 마시죠. 저에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 그래서 라이언 그 자식은 여길 뜨겠다는 겁니까? 말겠다는 겁니까? 도대체 언제 어떻게 뭘 하려는 거죠?

“이봐요 성태 씨. 나를 도와준 건 고마운데, 라이언에 대한 험한 말은 좀 삼가 주시죠.”

- 아….

성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무리 라이언을 잡으러 왔다고는 하나, 그는 기본적으로 옥슨가 쪽에 기반을 둔 사람이었다. 메이슨의 모든 행동은 라이언과 그 집안에 대한 보호 본능과 충성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간과했다.

- 그래서, 확실히 이곳을 떠나는 건 맞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단지 몇 가지 정리할 게 남았을 뿐.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이곳을 떠날 겁니다.”

-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 말에 성태는 저도 모르게 확신에 찬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거의 다 됐어.’

몇 가지 정리할 게 남았다는 그 말. 성태는 그 정리 목록에 다래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눈을 뜨기가 싫었다.

라이언의 넓고 따뜻한 품속이 좋았고, 그에게서 풍겨 오는 장미 향이 좋았다. 이대로 딱 48시간만 더 잠들어 있고 싶었다. 그러나….

꼬르르륵, 여지없이 낭만을 파괴하는 눈치 없는 위장. 다래의 살가죽을 뚫고 나오는 그 적나라한 소음에 라이언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으음… 굿모닝 선샤인.”

아직 졸음이 덜 가신 목소리와 함께 본능적으로 그의 손이 다래의 턱을 당겨 그녀의 입술에 굿모닝 키스를 전했다. 아무래도 저 손끝에는 무슨 센서가 달려 있는 것 같았다.

“굿모닝 라이언.”

다래는 수줍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옆으로 누운 그의 섹시한 쇄골과 달콤한 모닝 키스에 아침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

방 안으로 은은한 햇볕이 새어 들어오는 걸 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뜬듯한데, 다래는 오늘이 토요일임에 깊이 감사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라이언이 갑자기 다래의 어깨를 탁 잡아 그녀를 다시 자리에 눕혔다.

“라이언….”

“10분만. 10분만 더 누워 있어.”

그는 다래의 허리를 당겨 꼬옥 끌어안았다. 라이언의 턱이 그녀의 머리 위로 놓이며, 그의 날렵한 쇄골이 뺨에 와 닿았다. 다래의 좁은 침대 위에 바짝 밀착되어 있는 그들의 몸. 우습게도 오늘따라 이 작은 침대 사이즈가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래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Love you. 라이언.”

“Same here. I love you with all my heart.” (나도.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해.)

라이언은 그녀의 턱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를 전해 주었다.

뇌와 심장을 마비시키는 뜨거운 울림이 느껴졌다.

“라이언….”

“Baby, 아직 옷을 입지 마. 내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난 아직 밤이야.”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입술이 어젯밤의 그 아찔한 야간 산책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햇살이 다래의 활처럼 휘어진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눈부신 햇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다.

​

메이슨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패며, 핸드폰을 움켜쥔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지금 그의 눈이 다른 한 손에 들린 작은 명함 한 장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연식이 조금 되어 보이는 투박한 디자인의 명함에는 ‘국제 변호사 이정한’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무실 주소와 연락처가 한글과 영문 버전으로 각각 양면에 찍혀 있었다.

메이슨은 사실을 재확인하려는 듯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재차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야?”

- 네. 현재까지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거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게 됐군.”

- 베이먼트가에 연락해 보시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시 베이먼트가 내에서 사건을 처리했던 사람이 해밀턴이라는 고문 변호사라고 하는군요.

“흠… 해밀턴이라….”

메이슨이 그를 모를 리 없다.

베이먼트가의 오래된 붙박이장 같은 사람. 그의 충성심과 크고 작은 업적들을 빼놓고서는 베이먼트가를 논할 수가 없다.

“일단은 알겠어. 내가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지.”

-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메이슨은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지난번 라이언과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

메이슨은 라이언이 건넨 명함 한 장을 앞뒤로 뒤집어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십수 년 전에 다래의 아버지가 선박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런데? 그게 이 명함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내 촉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다래 아버지와 뭔가 연관성을 갖고 있는 듯해.”

“그래서… 나보고 사고 원인이라도 조사해 보라는 거야?”

“음. 다래 말로는 아버지의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는데, 정말 그런 거였다면 왜 굳이 변호사가 개입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어.”

“흠… 그건 그렇지. 단순 사고사였다면, 그냥 경찰 조사로 마무리되었을 텐데….”

“그 이정한이라는 변호사가 수임했던 사건들 중에 박민철 혹은 민철 팍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건이 있었는지 좀 알아봐 줘.”

“오케이.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

라이언이 부탁한 두 번째 심부름.

그때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고 경위를 알아봐 달라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규모와 예상치 못했던 베이먼트가와의 기막힌 연관성에 메이슨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 무섭군. 옥슨가의 그 대단한 촉이란….’

믿을만한 인력과 정보통을 총동원해 알아낸 믿기 힘든 내용들. 메이슨은 다시 천천히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십수 년전 박다래의 아버지 박민철이 갑작스러운 선박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성능 테스트를 위한 처녀 항해였기에 동승했던 다른 선원은 없었고,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은 선장인 박민철 씨 한 명뿐이었다. 하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박민철 씨 외에 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세한 사고 경위와 당시의 사건을 증명해 줄 증인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배의 일부 부속품과 잔재들이 해안으로 떠밀려 왔지만, 심각한 폭발과 화재로 반쯤 녹아 버린 배의 잔재는 깊은 바다 밑으로 수장되어 결국 인양되지 못했다. 이미 구조 타이밍을 놓쳐 버린 박민철의 시체 역시 수습되지 못하였다. 다만, 조류를 타고 망망대해 어딘가로 흘러가 진작에 물고기의 밥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사고 선박을 제조 유통한 것이 바로 베이먼트 라인스 컴퍼니라는 것이었다.

‘베이먼트가에서 언제 어업용 상선을 제작한 거지?’

메이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실 하나는, 사고 후 배의 결함을 의심한 박민철의 가족이 경찰에 자세한 사고 재수사를 의뢰함과 동시에 변호사를 선임해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돌연 그 소송이 취하되었고, 박민철의 조작 미숙 인정으로 급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그 사건은 조용히 정리되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메이슨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를 직접 만나 봄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 같았다.

​

이정한 변호사의 사무실은 오래된 건물 내에 위치해 있었다.

사무실을 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지, 아직도 벽 한편에는 채 풀지 못한 서류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워낙 급한 일이라 재촉하셔서 급히 나오긴 했지만, 원래 주말엔 사무실 운영을 안 합니다.”

이정한 변호사는 자신의 낡은 책상 맞은편에 놓인 의자로 고객을 안내했다.

메이슨은 의자에 앉으며 반백의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넘긴 오래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나이 든 이정한 변호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정한은 시리도록 파란 눈의 외국인 메이슨에게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마실 거냐며 물었다. 그러나 메이슨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어 거절한 뒤, 불필요한 인사치레는 접어 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뉘앙스를 내보였다.

“일단,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드리고 싶군요. 제가 급히 당신을 만나 보려 한 이유는 바로, 박민철의 사망 사건에 관해 긴히 여쭤볼 게 있어서입니다.”

“네? 누구요?”

“박민철. 당신께 사건을 의뢰했던 사람은 김옥순. 그의 부인이었지요.”

“아… 그 사람….”

말끝을 흐리는 이정한 변호사, 그는 오래된 기억의 저 끝자락에서 그때의 사건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정한 변호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 사건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파란 눈의 외국인 메이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과 무슨 연관성이 있어서 그 사건을 물으시는 겁니까? 아시겠지만, 사건을 의뢰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사건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는….”

“제가 그 사건을 맡을 겁니다.”

“네?”

“사고 피해자 박민철 씨의 따님, 그러니까 박다래 양으로부터 사건 재조사에 대한 의뢰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오면 자세한 사건 경위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저 혼자 왔지만, 다음번에는 같이 오도록 하겠습니다.”

주머니에서 이정한 변호사의 명함을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역시나 임기응변에 강한 메이슨은 즉시 그럴싸한 핑계를 둘러대며 의심을 걷어냈다.

그가 건넨 자신의 명함과 메이슨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이정한 변호사의 얼굴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날… 그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던 그때, 박민철의 어린 딸은 겨우 일곱 살이었다.

어두운 표정의 엄마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하얀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바로 그 여자아이.

그 어린아이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온통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새로 산 분홍색 가방에 쏠려 있었기에.

그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니….

이정한 변호사는 아무리 봐도 깨끗하기만 한 안경을 벗어 그 투명한 렌즈를 닦고 또 닦았다. 그 불필요한 행동은 그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해 주고 있었다.

“참… 안타까운 사건이었지요….”

​

어느 날, 국제 변호사 이정한의 사무실에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가 찾아왔다. 슬픔 가득한 그 얼굴을 보니, 아직 사별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받아 힘들게 찾아온 듯한데, 아무리 봐도 여자의 초라한 행색은 사건 수임료를 제대로 내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가 들려준 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승률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 무의미한 싸움이 될 게 뻔해 보였다.

“음… 여사님, 일단 자세한 내용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제가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먹은 짬밥을 생각한다면… 이건 승소할 확률이 매우 낮아요.”

“그래도 진행해 주세요. 수임료는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여자의 얼굴에 고집스러움이 보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듯한 그 흔들림 없는 눈빛에 이정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 두세요. 이건 굉장히 지리멸렬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미 각오하고 왔어요.”

“이거 자칫하면 적당히 걸고넘어져 지저분하게 위로금이나 잔뜩 뜯어내려고 그러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한가요?”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사회의 편견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정말 소중한 걸 잃어버렸을 때 다가올 현실이 얼마나 고단하고 무서운 것인지….

이정한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녀의 사건을 접수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그녀의 손에는 살던 집을 처분하여 힘겹게 마련한 돈 뭉치가 들려 있었다.

이정한은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준비된 고소장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여사님, 이런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지금 우리가 상대하려는 베이먼트 컴퍼니는 거물급 회사입니다. 작은 민물새우가 어찌 큰 대양의 고래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큰 물에서 놀아 본 적이 없는 그 작은 새우는 바다에 당도하기도 전에 해안가 짠물에 죽고 말 겁니다.”

“…….”

“바로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불가능이란 단어를 쓰는 거지요.”

여자는 말이 없었다. 이정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남편이 남기곤 간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쌓여 있는 빚과 미납된 대금들. 그리고 얼마가 걸릴지 모를 지루한 법정 싸움. 무엇보다 여자가 두려웠던 건,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 홀로 지켜내야 할 어린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친 현실은 결코 홀로 남은 젊은 엄마와 어린 딸아이에게 녹록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진심 어린 제안이 계속되었다.

“차라리 딸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 이쯤에서 생각을 바꾸시지요. 적어도 뭔가를 시도했다는 성의는 보였으니, 돌아가신 남편께서도 그리 서운해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린 딸은 엄마가 우는 이유를 몰라 가만히 엄마의 얼굴을 바라다보기만 했다.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테이블 위에 준비한 돈 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몇 주 뒤, 변호사의 급한 연락을 받고 그의 사무실을 찾은 여자는 전혀 의외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거… 잘하면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베이먼트 컴퍼니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자체적으로 내부적인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희 측에서 항해 데이터 기록 장치(VDR)라는 걸 확보했습니다.”

“그게 뭔가요?”

“이게 선박 사고의 원인 식별하는 장치인데, 이 캡슐에 최소 48시간에 해당하는 사건 당시 조타실 및 엔진, 쓰러스터 등의 입력 및 반응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요. 거기에 우리한테 유리한 자료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한 변호사는 그녀의 앞에 관련 자료 및 베이먼트 컴퍼니에서 온 회신 문서들을 늘어놓았다.

이정한이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로 번역해 놓은 문서들. 베이먼트 라인스 컴퍼니 내 어업용 상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자가 누구였으며, 현재는 전면 폐기된 프로젝트로 내부적으로도 유통 과정 파악 및 사태 수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 가던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여자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 이 사람.”

그녀는 되뇌듯 문서에 명기된 사고 선박과 관련된 총괄 책임자의 이름을 여러 번 읽었다.

“맥스 베이먼트… 맥스… 베이먼트.”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변호사님….”

“네.”

“이 사건… 접어 주세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고소를 취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