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가족들의 입에서 일제히 터진 비명과도 같은 짧은 물음.'“뭐?” '“임신…… 했다고요.”'뒷목 잡고 뒤로 넘어가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넘어가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엄마. 그리고,'“아하하하.”'미친년처럼 웃어젖히는 우리의 마돈나.'“누나…….”'진가는 닭똥 같은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것처럼 애처로운 눈길로 배를 잡고 웃는 누나를 쳐다보았다.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연기처럼 사라져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지만 돈나는 그런 동생의 부탁을 더 큰 웃음으로 집어삼켰다.'“임신 4개월…… 푸하하하하.”'배가 뒤틀리고 코가 시큰거렸다. 기함하는 부모님을 버려두고 돈나는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코미디를 보는 리액션 좋은 시청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닐 기세였다.'“결혼시켜야겠네, 결혼. 이 자식 아주 제대로 큰 거 한 방 터트리네, 아하하하.”'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입이 찢어지게 웃는데 왜 눈이 따끔거릴까? 허리가 휘어지게 몸을 비틀었는데 왜 자존심에 금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아주 제대로 미쳐서 돌아가고 있다.'“아우, 너무 웃었더니 졸리다. 나 깨우지 마요.”'쾅! '그날, 문을 닫고 들어간 돈나는 거실에서 전쟁이 터지는 것도 모르고 내장이 달라붙게 잠을 잤다. 잠에 취했는지 자도자도 개운치가 않아, 돈나는 초저녁에 잠이 들어 새벽 3시가 넘어 부스스 일어났다. 밖은 조용했다.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바람 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뭐지, 이 불길한 고요함은?”'돈나는 싸리 빗자루처럼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벅벅 긁으면서 거실 쪽으로 귀를 바짝 추켜세웠다. 전쟁이 고작 몇 시간 만에 끝났을 리가 만무했다. 조용하다는 건 다들 진이 빠져 잠시 휴전 중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밖에 나갔다가 재수 없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는 상황에 돈나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며 몸을 사렸다. 눈치 없이 옆에서 거들다가 무슨 험한 소리를 들을지 모를 일이다. 이럴 땐 그저 투명인간처럼 발소리 죽여 가며 살살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었다. 어쩌다 타이밍을 놓쳐서 마주치더라도 싱긋 웃기보단 지그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시선을 피해야만 한다. 29년 동안 이 집에서 목숨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다 산고의 고통과도 버금가는 피나는 눈칫밥 덕분이었다.'“진짜 끝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