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동공이 큰 두 눈에 앙증맞은 코. 붉은 입술에 하얀 얼굴을 가진 봉다미가 어쩐 일로 제 입술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었다.

관자놀이 부근엔 땀방울이 규칙 없이 맺혀 있었고 급격한 복통 때문인지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끄응.”

땀이 가득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제 배를 매만지자 장운동이 활발하게 시작된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스키(술기) 실습 후 동기들과 먹었던 음식이 단단히 잘못된 모양이었다.

다미가 공기를 가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문고리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지만, 안에 봉세율이 있는지 굳게 잠겨 있었다.

“오빠, 나 화… 화장실 좀.”

“응, 기다려.”

하, 저 인간.

한 번 들어가면 기본이 30분인데, 내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두 미간은 당장이라도 붙을 듯 좁아졌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구부러졌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나 설사라고….”

그녀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 겨우 말했다.

“…….”

하지만 늘 그렇듯 봉세율은 대답이 없었다.

점점 괄약근에 힘이 들어갔고 항문 근처에 변들이 다다랐다는 신호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식은땀 역시 단전에서부터 올라왔고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공중에서 무언가 반짝이며 별도 보였다.

“오… 오빠, 좀 나오라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한 음절씩 가까스로 내뱉었다. 물론 봉세율은 그저 쿡 하고 웃을 뿐이었다.

“하하.”

하, 동생은 다 쓰러져 가는데 웃음이 나와?

어떻게 신은 저 인간을 오빠로 주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전생에 큰 잘못을 저지른 건가, 아니면 부부… 였나?

이내 그녀의 몸은 꽈배기처럼 점점 꼬여 갔고 문고리를 잡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다미가 문고리 잡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는지 봉세율이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큭. 공수찬 방에 있는 화장실을 가든가, 아니면 밑으로 내려가든가.”

하, 당장 쏟아질 것 같은데 어딜 가라는 건지….

“터지면 책임질 거야?”

“하하하하, 표현 한번 리얼하시네.”

“하.”

다미의 얼굴이 점점 벌게졌다. 두 눈은 이미 감긴지 오래였고, 심장도 정수리 끝까지 쿵쾅거리며 뛰어댔다.

더 이상 뭉개는 건 불가능했다.

괄약근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똥파티가 벌어질 게 뻔했으니까.

결국 다미는 공수찬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대장 가득 쌓여 있던 배설물은 항문 밖으로 토해졌다.

마치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와 같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속이 다 후련한 다미였다.

어라.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한 번에 끝날 설사가 아니었다.

다미는 힘이 잔뜩 들어간 손으로 바르르 떨며 겨우 화장실 문을 10cm 정도 열었다. 그리고 쥐어짜듯 안간힘을 쓰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봉… 세율! 나 로… 로페린 좀. 아니면 진경제라도….”

그렇지만 봉세율 역시, 제 코도 석 자인지라 대답이 없었다.

이내 그녀의 몸은 잘게 떨렸고, 굳게 쥐어진 다미의 주먹에선 이미 땀이 한가득 쌓이고 있었다.

그것도 쥐어짜면 뚝뚝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덧 다미의 목소리는 성대를 울리며 가늘고 길게 나와 애달프게 울렸다. 이내 눈에선 눈물도 찔끔 나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봉세… 제발… 로페란이랑 진경제 좀….”

*로페린-지사제

*진경제-장경련완화제

봉세율이 볼일을 다 마친 모양인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다미를 향해 외쳤다.

“싸! 다 싸! 무슨 약을 먹어! 싸면 자동으로 다 낫는 법이야.”

하, 무려 오빠라는 사람 입에서 인정사정, 오만 정 없는 말이라니.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봉세율의 말이 맞았다. 지사제는 먹더라도 죄다 뱉어내고 먹는 법. 이게 바로 이 바닥의 룰이라면 룰이었다. 원인 물질을 제거해야 장의 과도한 움직임도 멈출 테고 그럼 굳이 약이 아니더라도 설사에서 자동 해방될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룰 따윈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죽더라도 약 먹고 죽을란다.

그래서 다미가 다시 외쳐댔다.

“으…. 약 좀 주시라고요….”

하지만 다미의 애절한 읍소에도 불구하고 대답도, 약도 전혀 없었다.

이내 가냘픈 목소리와 함께 또다시 배설 활동이 시작됐다.

“으…. 이런 강… 아지 같… 으니라고.”

그렇게 입 밖으로 더한 아름다운 욕들이 튀어나오려 할 찰나. 작게 벌어진 문틈 앞으로 하얀 약통 하나와 생수 한 병이 턱 놓였다.

“아… 봉세 오빠… 완전 고마… 워.”

곧바로 땀이 가득한 손으로 힘겹게 약통 뚜껑을 열어 지사제 한 알을 꺼냈다.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니 1초 만에 곧바로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플라시보겠지만.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다미의 배가 전란을 멈추고 가라앉았다.

후, 하고 길게 숨을 뱉은 그녀가 물을 내리고 손까지 야무지게 닦았다. 왠지 공수찬이 쓰는 수건에 물기를 닦자니 영 께름직해, 제 추리닝에 쓱쓱 닦으며 나온 다미였다.

그런데 다미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학’ 하는 표정까지 그려졌다.

그건 바로, 제 앞에 공수찬이 있었으니까.

그는 무려, 이 방 화장실의 주인이자 집주인이었다.

공수찬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다미가 나오는 양을 죄다 훑어보고 있었다. 눈가엔 작은 웃음이 걸려 있었고, 심지어 반쪽짜리 보조개도 얼핏 들어가 있었다.

다미는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남들은 저 보조개가 보이면 죄다 멋있다며 뒤로 넘어갔지만 다미는 그게 그렇게 별로였으니까.

저 삐딱한 미소만큼 비웃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나저나 저 공수찬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감상했나 보다. 가스 분출 소리도 제법 컸을 텐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영화 보듯 감상한 모양이다.

오면 왔다고 인기척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설마 이 약도 공수찬이 준 건 아니겠… 지?

이 생각까지 미치자 다미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맞아.”

“네?”

“맞다고.”

“…….”

“네가 생각한 거, 맞다고.”

그러자 다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공수찬 특기에 독심술은 없던 것 같은데. 못 보던 사이에 새롭게 개척한 재능도 아니고.

하지만 공스 하우스의 서열은, 지위와 돈, 그리고 권력에 따라 정해지는 법. 봉다미는 꼴찌 중에 상꼴찌였다.

그래서 비굴하게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쿡, 하고 웃으며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였다.

“뭐가 감사한데?”

“……?”

“난 내 방 허락한 적 없는데,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그래.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었다. 봉세율랑 하등 다를 게 없는 인간.

하지만 말 없는 봉세, 좀 더 잘생긴 봉세, 돈 많은 봉세, 금수저 봉세, 키도 큰 봉세. 아무튼 좀 더 우월한, 아니 재수 없는 봉세였다!

이내 꾸역꾸역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공수찬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곤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약도 감사하고, 방구 소리도 차분히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냄새도 참아 주셔서 감사해요,”

순간 그의 눈썹 하나가 잘게 떨리는가 싶더니, 기어이 ‘하하하하’하고 웃으며 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시에 얄미운 보조개가 더욱 깊게 패기 시작했다.

“봉다미, 소리가 장관이더라?”

“……?”

‘하, 장관? 지금 장관이라고 그랬나? 아주 이번 기회에 하늘에서 역대 장관님들 좀 만나게 해 드려?’

“하하하. 자, 얼른 나갈까? 아, 창문은 닫고.”

곧바로 다미의 얼굴이 창피함에 붉게 변했고 코에선 김마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참자, 참자. 당장 대학도 때려치울 마당에 떠돌이 멍뭉이가 될 수도 없으니.

이내 다미는 머리에 열린 뚜껑을 꾹꾹 눌러 닫으며 입을 열었다.

“넵. 분부대로 하옵지요, 오라버님.”

그녀는 깍듯한 자세와 반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건넨 후 손잡이를 정갈하게 잡아 창문을 닫았다. 이내 허리까지 야무지게 구부려 인사를 건넸다.

“이만 나가 볼게요!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문 닫고 가.”

“넵!”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그의 방문 역시 조신하게 닫았다. 그리고 나가자마자 주먹 하나를 높게 치켜세웠다.

“이거나 먹어라, 공수찬! 더럽고 치사해서 내년에 독립하고 만다. 반드시 하고 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분명 공수찬이 여자를 만나러 나간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예쁜 연인을 두고 일찍 들어오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 그녀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봉세율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혹시 수찬 오빠 또 깨진 거야?”

“하하하하. 봉다미, 귀신이구나.”

“하…. 왜 맨날 깨지지? 도대체 뭐가 문제지?”

“잘 생각해 봐. 뭐가 문제겠어?”

그러자 다미의 머릿속으로 바로 답이 떴다.

4가지가 없었다, 공수찬은.

그래. 모든 걸 다 갖고 태어났지만 신은 공평하게도 4가지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후, 생각하고 보니 불쌍했다.

“그래도 한 달은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죄다 한 달이야.”

“내버려 둬, 평생 혼자 살게. 그래야 오랫동안 나도 여기 오래 살지.”

“하, 주식이나 그만두셔. 감히 동생 보증금을 주식으로 날리다니. 다시 한 번만 했다간 봐. 아주 그냥 봉주르한테 다 일러 버릴 거라고!”

그러자 삐죽 올라갔던 봉세의 눈이 곧바로 순하게 변했다. 씨익, 하고 웃는 모양새가 퍽이나 웃겼다.

다미는 봉주르가 이런 봉세를 모르는 게 애석하고 안타까웠다.

“배는 괜찮냐, 동생?”

질문 한 번 참 빨랐다. 나의 처절한 외침도 깡그리 무시했으면서.

이내 다미의 귀여운 눈이 제법 매섭게 쳐다보았지만 봉세율은 이런 다미의 표정마저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을 뿐이었다.

“눈 풀어, 다미야. 원래 설사는 굶으면 나아. 안 죽는다고.”

“후, 그래. 죽지야 않겠지.”

죽진 않고, 죽을 만큼 아프긴 하겠지.

“쿡쿡. 그나저나 아버진 빚 많이 갚으신 모양이더라.”“얼마 남았는데?”

“음… 67억?”

“후….”

“하하하하. 그러니까 웬만하면 수찬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봉세율 말대로 이 마당에 쫓겨나면 답도 없었다.

아버지는 98억 빚에 저당 잡혀 휴일도 없이 일하는 신경외과 전문의였고, 나는 대출 없는 신용등급 5등급의 거지였으니까.

의사? 의사도 의사 나름이지. 다미네 같은 동수저는 죽을 때까지 은행에 충성하며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럼 이 오빠는 이만 가봐야겠다. 그동안 공수찬이랑 사이좋게 잘 놀고 있어.”

봉세율은 다미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흐트러트리며 차 키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운동화 한 켤레를 끌어와 욱여 신었다.

“세율 오빠, 비 와! 우산 들고 가라고, 봉세! 머리 빠진다고!”

“하하하하. 좀 빠져도 안 죽어. 괜찮다고!”

그러더니, 다미의 얼굴을 쓰윽 쓸어버렸다.

“하.”

다미네 집은 늘 이랬다.

아빠한테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괜찮아, 코피 난다고 말해도 괜찮아, 오늘따라 두통이 심하다고 말해도 괜찮아,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다고 해도 괜찮아. 늘 안 죽어, 괜찮아 이 소리만 튀어나왔다.

물론 다미의 몸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녀의 아빠 말대로, 오빠 말대로 정말 괜찮았다. 지극히 정상이었고, 완벽히 건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