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상처받은 자들''''“우움……. 아이고, 머리야.”'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던 현인이 이마를 짚으며 신음을 흘렸다. 누가 옆에서 머리를 있는 힘껏 쇠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체질상 술을 못 마시는 그녀였던지라 한 번도 숙취 같은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막걸리 두 잔에도 쭉 뻗는 현인을 두고 친구들이 얼마나 비웃었는지 몰랐다.'“으으, 내가 다시는 술을 마시나 봐라.”'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투덜대던 현인은 갑자기 눈을 반짝 떴다.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술이라고?”'그러고 보니 어제 샨이 마레꽃 축전을 구경시켜준다고 좋아서 줄레줄레 따라가지 않았는가. 엠마에게 말을 하고 하얀 엘라를 입은 것이 기억났다. 꽃의 여왕 후보들이 탄 화려한 마차행렬과 눈처럼 흩뿌려지던 마레꽃송이, 그리고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뚱뚱한 아저씨가 건네준 달콤한 음료수도 떠올랐다.'“음료수?”'갑자기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현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눈앞이 노래지면서 현기증이 몰려왔다. 휘청거리다가 다시 베개에 머리를 털썩 누인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다시금 생각에 몰입했다. 그녀가 가장 불안해하는 이유. 그것은 그 달콤새콤한 음료수를 먹은 뒤의 기억이 안개에 휩싸인 듯 흐릿하다는 것이었다.'맛있다고 마칼주를 홀짝이는 그녀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자꾸 술을 권하던 뚱뚱한 아저씨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술이라고 말해줬음 좋았을 텐데. 그냥 맛있는 과일음료인 줄 알고 넙죽넙죽 받아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서, 설마……. 나 또 무슨 사고 친 건 아니겠지?”'현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더구나 샨이 뭘 사러 간다고 자리를 비운 새에 일어난 일이라서 곱빼기로 불어난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괘,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봐, 이렇게 멀쩡히 여관에 돌아와 누워있는 거 보면 몰라? 그치?”'스스로를 위안하며 현인은 낯익은 방을 휘이 돌아보았다. 어쩌면 샨이 금방 돌아와 술에 취한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도 몰랐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몇 잔이나 들이켜고 취해버린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보였을까.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를 놀려먹지 못해 안달인 샨인데 또 사고를 쳤으니. 벼룩도 낯짝이 있지 그의 얼굴을 어떻게 볼지 막막하기만 하다.'“미쳤어, 미쳤어! 아무리 모르고 마셨다지만 남이 주는 걸 그대로 덥석 받아마시다니.”'아무래도 축전이라는 것이 경계심을 모두 가져가버린 것 같았다. 소심하고 낯선 것을 겁내하는 그녀가 분위기에 취해서 아무 의심 없이 마칼주를 받아 마신 것을 보면 말이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하얀 천장 위로 흐릿한 기억의 조각이 띄엄띄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마칼주의 향긋함과 더불어 아직도 코끝에 진하게 남아있는 묘한 향기. 따뜻한 무언가에 폭 감싸였던 느낌과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던 이상한 감각만이 그녀가 기억하는 것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쉽다. 뭐가 아쉬운지 몰랐지만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왜 이렇게 서운한지 알 수 없었다.'“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