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동물원의 산신님 1권


#Prologue

그 괴상하고 이상한 생명체와 만난 것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동물원 오픈을 위해서 마지막 현장 점검을 나선 지수는 시설들을 살피고 있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차를 타고 초식동물들이 있는 동물원 입구부터 맹수들이 있는 안쪽 부분까지 꼼꼼히 체크하면서 특히 지수는 고객들이 차를 탔을 때 동물들이 제대로 보이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호랑이 서식지 쪽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좀 많이 아쉽단 말이지…….”

지수는 서류철 속 기린 서식지 란에 ‘문제없음’이라고 체크하며, 호랑이 서식지 입구에 만들어 둔 커다란 바위를 떠올렸다.

사자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가장 신경 써서 만든 곳이었음에도 지수는 그곳을 볼 때마다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지수는 서류철을 조수석 쪽으로 던져 버리고는 호랑이 서식지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입구 즈음에 도착했을 때, 지수는 커다란 바위 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마치 아기 사자를 들어 올리던 원숭이처럼 낯선 사람이 바위 위에 서 있었다.

“누구지, 사육산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지수는 사람이 서 있는 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지수는 그 사람이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얗고 긴 머리에 햇볕에 그을린 듯한 연한 구릿빛 피부. 흔하게 볼 수 없는 깊고 짙은 색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동물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도포 자락처럼 생긴 하얀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마치 책 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것처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바위에 그린 사람의 모습이라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육사들이 입게 되어 있는 규정 유니폼을 입지 않은 것도 그렇거니와 이렇게 특이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직원으로 있었다면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지수는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다. 다행히 주변에 호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수는 안도하며 급하게 창문을 내렸다.

“저기요,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죠? 아니 그게 아니지. 위험해요! 지금 당장 나가요, 빨리!”

다급하게 외치는 지수의 목소리에도 그는 슬로모션이 걸린 사람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안 들려요? 지금 당장 나가라구요!”

계속되는 독촉에도 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수를 보고 평온하게 웃는 것이었다. 답답해진 마음에 그를 차 안으로 끌어당기려는 순간, 하얀빛이 그를 감쌌다.

하얗게 부서지는 빛과 함께 서서히 남자의 모습은 변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긴 머리는 노란색 바탕의 털로 그리고 검은색 무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호…… 호랑이?”

그렇게 사람도 호랑이도 아닌 이상한 존재와의 만남은 지수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1.

“절대 안 돼, 동물원이라니!”

“전 해요. 하고 싶어요.”

불호령이 떨어지리라는 것은 이미 각오했던 지수였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역정 내면서 반대하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수는 자신의 판단 착오에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그녀가 발을 구른다는 것을 아버지인 최 회장이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돼!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업 중에 동물원을 하겠다는 게야! 대체 지수 너는 언제쯤 철이 들 참이냐. 남들 자식들은 번듯하게 사업을 성공시킨다든가 그런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데려온다던데, 너는 지금…….”

“그런 건 오빠 하나로 충분하지 않으세요? 전 그 아버지가 아는 남들 자식이 아니니까, 반대하셔도 할 거예요. 어차피 저한테 주신 돈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돈을 어떻게 쓸지는 제가 결정할래요.”

“저, 저……!”

지수는 더 큰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회장실의 무거운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순간 지수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지수의 한숨 때문인지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비서들이 책상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서로 급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모두 커다란 문 너머의 아버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지수는 그런 비서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만 까딱인 후, 빠르게 답답한 공간을 빠져나갔다.

“또 대형 폭탄 하나 떨어트렸다며?”

오늘은 아무래도 지수에게는 끔찍할 정도의 불운만 가득한 날인 듯했다. 아버지와 회사에 관한 스크랩 기사들이 늘어져 있는 복도에 서 있는 것도 모자라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긋지긋한 오빠까지 등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녀의 오빠 최지석은 R 그룹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와 판박이라 불릴 만큼 쏙 빼닮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그리고 약간 각진 얼굴형에 짙은 눈썹. 어린 시절 악당같이 생긴 아빠라고 투덜거렸던 그 모습이 커가면서 점점 오빠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아버지와의 한판으로 지쳐 있던 지수는 오빠를 마주하게 만든 자신의 불운에 손뼉이라도 치고 싶었다. 오빠를 여기서 마주쳤다는 것은 분명 자신의 일 때문임이 틀림없을 터였다.

“내가 하는 일에 오빠가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줄 미처 몰랐네?”

“관심이 없을 수가 없지. R 그룹의 트러블 메이커 최지수 양의 일인데. 그게 내 관심사 중 하나라서 말이야.”

“관심 좀 꺼줄래? 진짜 노땡큐거든?”

지수는 지석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저으면서 열린 엘리베이터에 그대로 몸을 실었다. 지석은 팔짱을 낀 채로 문이 닫히기만 기다리고 있는 지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남들처럼 화장품이나 패션같이 평범한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어때? 그럼 아버지께서 적어도 반대는…….”

“짜이찌엔.”

잔소리처럼 길어질 것 같은 지석의 말을 끊으며 지수는 빠르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잊지 않고 지석을 향해 손 키스를 날려 주었다. 그런 지수의 행동에 지석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지수는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잘난 척은 하여간 더럽게 해. 재수 없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지수는 머릿속으로 꿈꾸던 동물원에 대한 구상을 끝마쳤다. 아무리 반대하신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반드시 동물원을 오픈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그녀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

아버지와의 1차전이 끝난 뒤,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호출을 받아 집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와 불청객인 지석도 함께였다. 오빠의 모습에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지수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표정을 바꾸며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도대체 동물원은 어디다 만들겠다는 게야.”

“올해 오픈 예정인 R 호텔이요. 그 앞쪽에 있는 부지에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너, 거기엔 쇼핑센터를…….”

예상치 못한 장소였는지 눈에 불을 켜며 반대하려는 지석에게 아버지가 단호하게 손을 들었다. 지석은 아버지의 모습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더는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다. 그 모습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된 지수는 미리 정리해 두었던 계획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고대 이집트라던가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한국사를 보면 신라에서도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구요. 그러니까 호텔의 뒤쪽 정원과 붙여서 호텔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면…….”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 R 그룹이 얻는 이득이 뭐냐.”

“이미지요.”

그녀의 대답에 미묘하게 아버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이번에도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동물원을 오픈하는 것은 꿈에서 끝나 버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동물원을 오픈한다고 기업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네 발상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도대체 어떤 식으로 동물원을 운영할 셈이냐.”

“동물 학대가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동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동물원이라는 테마를 모토로 할 생각이에요. 망해 가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동물원의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폐사되지 못하게 하고, 밀렵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죽어 가고 있는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회복시키고 재활시켜 방생할 수 있는 시설도 함께 구축할 예정이에요. 도심 한가운데서 동물들도 편안하게 살 수 있고, 학대받는 동물들을 구출하는 동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의 이미지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요.”

“그건 동물원이 아니라 재활 센터나 동물 보호소에 가까운 게 아니냐.”

날카로운 질문이었지만, 지수는 예상했던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냥 동물들을 편안하게 해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기본 건강한 동물들은 사파리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할 예정이에요. 동물원 대지를 크게 대륙으로 구분하고, 동물들이 본래 살았던 환경과 가장 비슷하게 꾸미는 거죠. 거기에 예약제를 통해 통제된 인원만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특수 차량을 통해서 사람들이 가까이에 다가가도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나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 충분히 동물원과 동물 보호라는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갈 수 있죠.”

“그럼 매출은? 예약제로 진행한다면, 결국 이득은 크게 얻을 수 없지 않겠느냐.”

“광고와 제휴 등을 통해서 매출은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동물원에 물론 스토리적 요소를 활용해서 굿즈 제작 등도 진행할 거구요.”

막힘없이 대답하는 지수의 모습에 아버지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셨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지수는 태연한 척 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그 몇 분이 마치 며칠처럼 느리게 흐르다 아버지가 움직이는 기척에 맞춰 다시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