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태자의 고양이(1)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난리가 벌어진 것이 바로 어제였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궁궐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자주색 용포를 걸친 태자가 문을 열었다. 내려다보이는 동궁전 앞뜰은 언제나처럼 정갈했고 태양은 눈이 부실 지경으로 찬란했다. 태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

평소와 같은 풍경이었다. 태자의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오늘이 평소와 같을 수 있지?’

날씨마저 쾌청한 것이 태자의 속을 긁었다. 거칠게 신을 신은 태자가 계단을 힘주어 밟아 내려갔다. 아침 강론에 나서는 어린 태자의 뒤를 내관과 궁녀들이 조용히 따랐다.

동궁전부터 아침 강론이 열리는 건물까지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궁녀들은 그늘 아래서도 태자의 머리 위로 양산을 받쳐야 했다. 요 며칠을 빼고는 매일 걸었던 길이었다. 오늘은 무슨 말로 스승을 골릴까, 어떤 엉뚱한 장난으로 강론 시간을 축낼까, 그런 생각이나 하며 걷던 길이었는데. 환한 햇빛 아래에서도 어린 태자의 얼굴엔 그늘만이 가득했다.

고양이가 죽었다. 화친을 맺은 기념으로 2년 전에 양나라의 사신이 가져온 것이었다. 이 땅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눈은 새파란 보석처럼 빛났고 눈부시게 새하얀 털이 솜처럼 부드러웠다. 태자는 첫눈에 사로잡혔다. 그 모습이 달빛과 같다 하여 소월素月이라 이름 붙이고 무척 사랑하였다.

“야옹.”

태자가 ‘소월아,’ 하고 부르면 곧 달려오곤 해, 마치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 듯하였다. 하지만 다른 내관이나 궁녀가 부르는 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아 모두 소월을 영특하게 여겼다.

“어린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타면 일찍 죽을 수도 있어요.”

황후가 걱정하여 나무랄 정도였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어마마마.”

말만 그렇게 할 뿐, 태자는 소월을 애지중지하여 한시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오직 소월만이 가까이서 태자를 모시고 식사하였고, 태자의 따뜻한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태자가 따뜻한 물에 소월을 손수 씻겨 주고 때때로 꽃의 기름을 발라 주며 보살펴 주어서 소월의 몸에선 늘 은은한 향기가 났다. 소월의 윤기 나는 털을 빗으로 천천히 빗은 후에는 금색 실로 봉황을 수놓은 화려한 붉은 띠로 머리를 둘러주었다. 소월의 목에는 색색깔 이국의 보석을 엮은 목걸이가 걸렸다. 가끔 태자가 내킬 때면 황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방울을 목에 걸 때도 있었는데, 소월이 움직일 때마다 맑고 경쾌한 방울 소리가 울렸다.

아직 열 살, 만으로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태자에게 소월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였다. 소월은 태자가 가는 곳 어디든 곁에 있었고 언제든 태자의 눈이 닿는 곳에 있었다.

그런 소월이 어제 차갑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태자는 종일 식사를 거르고 내내 울기만 했다. 내관과 궁녀들은 아무 말 없이 태자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시선을 바닥에 두고 걷던 태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둔 곳은 황후의 정원이었다. 멀리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곱 살,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들이 꽃밭 사이로 뛰어놀고 있었다. 맑은 물빛의 얇은 옷감을 걸치고 이리저리 뛰어노는 모습이 마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개양귀비꽃들 같다. 황후의 화동들이었다.

황후는 마치 토끼를 풀어 놓듯이 자신의 넓은 정원에 10여 명의 아이들을 뛰어놀게 하고 화동이라 불렀다. 주로 귀족이나 고위 관료의 자녀들이라고 했다. 화동들이 하나둘 늘어나던 작년 어느 날, 화동들을 바라보던 태자에게 황후가 말했다.

“전하께선 어려서부터 늘 바쁘셨잖아요. 앞으로도 이 어미는 전하의 얼굴조차 보기가 무척이나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화동들을 불러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답니다.”

거슬렸다. 곱게 차려입고 햇살 아래 빛나는 얼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무척 거슬렸다. 태자의 무거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태자의 시선이 한 여자아이의 주근깨에 머물렀다. 아이는 하얀 패랭이꽃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동무와 어린 새처럼 조잘대고 있었다.

‘어마마마께선 정녕 저따위 아이들을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즐기신다는 말인가?’

당장에 발을 놀려 화동들 사이로 뛰어 들어간 태자가 여자아이의 머리끄덩이를 냅다 잡아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개를 뒤로 잡아당겨진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힘으로 아이의 얼굴을 끌어당긴 태자가 손톱을 세워 아이의 주근깨를 긁었다. 아이의 뺨 위로 손톱자국이 붉은 실처럼 부풀어 올랐다. 아이는 울면서 팔을 버둥거렸지만, 머리채가 붙잡힌 채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가 태자의 손을 붙잡자 곧바로 태자의 손바닥이 아이의 뺨으로 날아왔다. 태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찰싹.

“왜,”

찰싹.

“안 떨어져.”

찰싹.

말 한마디에 뺨 한 대씩이었다. 내 고양이보다 예쁘지도 않은 주제에 어째서 행복한 것이냐. 태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이가 보고 싶었다. 그것만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아이의 저항이 멈추었지만, 태자는 멈추지 않았다. 태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보다 손찌검 소리가 더 컸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아이의 비명이 처절하게 정원을 울렸다.

“그러게 왜 거슬리고 그래.”

행동하고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태자의 몸가짐과 말투에는 열 살 나이답지 않은 위엄이 서렸다. 어린 태자의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에 광기가 비쳤다. 경악과 고통에 찬 울음소리는 계속되는 매질에 작아지기 시작했다. 내관과 궁녀들은 서로 눈치만 주고받을 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태자보다 조금 작은 키의 아이가 튀어나와 두 팔을 벌리고 태자의 앞을 막아섰다. 잠시 태자의 손아귀 힘이 풀린 틈을 타 여자아이의 손목을 잡고 제 등 뒤에 숨긴다. 감히 태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허?”

이건 또 뭐야? 태자가 비뚤게 입술을 말아 올리며 아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하얀 얼굴에 짙은 갈색 눈. 물빛 옷을 입고 있는 다른 화동들과는 달리 장미색, 다홍색 얇은 옷감으로 덧대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의 넓은 소매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날개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계집애도 아니고. 거슬렸다.

“넌 뭐야?”

“백가家의 우宇라고 합니다.”

서슬 퍼런 태자의 목소리에도 백우는 여전히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태자가 기억하는 한 궁 안의 누구도 자신을 그런 식으로 본 적 없었다. 저게 너무 놀라서 겁먹는 것도 잊었나 싶었는데 백가라는 말에 콧방귀가 나왔다.

“백가라면 백제에서 도망해 온 배신자가 아니냐? 네까짓 게 어찌하여 궁에 있는 것이야?”

태자를 노려보는 눈매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가 백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제 아비가 누명을 썼기에 어쩔 수 없이 도망 온 것입니다. 저의 부친은 뛰어난 의원입니다. 황제 폐하의 병환을 치료하는 어의들이 부친의 지혜를 빌리고 있다 들었습니다.”

“뭐? 누가 누구의 지혜를 빌려? 아바마마께서 더러운 남쪽 종자의 지혜를 빌리신다고?”

태자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제 아버지를 더럽히는 말에 태자를 쏘아보는 백우의 눈초리가 제법 매섭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꼭….

“하.”

고개를 꼿꼿이 들고 태자의 눈을 마주 보는 백우의 눈빛에 태자는 기가 찬 듯 비웃음을 흘렸다. 여전히 예를 갖추지 않는 백우에게 내관과 궁녀가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태자가 한쪽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라. 우리나라는 배신자들을 모두 처단한다. 한 번 배신한 자는 두 번 배신하게 마련이니. 항복해 온 자든 망명해 온 자든 배신하여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처단한다. 하나 네놈의 아비가 보잘것없는 재주로 목숨을 부지하였나 보구나.”

태자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백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네놈은 아무 재주도 없지 않으냐? 아바마마께서 너를 죽이지는 않으셨다만 너를 인간으로 대우해 줄 이유도 하등 없다는 것이다.”

태자가 백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명령했다. 저 눈. 백우의 눈 때문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꼭 고양이 같은 저 눈이.

“저놈의 옷을 벗겨라.”

주변의 화동들이 주춤주춤 백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굼뜬 모습이 답답했던지 태자가 달려들어 백우의 옷을 찢듯이 잡아당겼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백우의 윗옷이 한쪽으로 쓸려 내려가 어깨가 드러났고 어깻죽지는 반쯤 찢어져 버렸다. 백우가 당황한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만족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난 태자가 아까의 주근깨 여자아이에게 명령했다.

“저놈의 뺨을 때려라.”

아이가 주춤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엔 태자와 화동들, 내관과 궁녀뿐이었다. 누구도 감히 태자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망설이며 몸을 움츠린 아이에게 백우가 슬쩍 눈짓했다.

‘괜찮아.’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아이가 숨을 참으며 천천히 손을 올렸다. 차마 힘을 주지 못한 아이의 손이 백우의 뺨을 빗나가듯 스치자, 태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명령했다.

“다시.”

아이가 조금 더 세게 뺨을 쳐냈다.

“다시.”

아이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백우가 태자를 노려보았다.

“다시.”

아이가 백우의 뺨을 철썩 소리 나게 때렸다. 백우는 눈을 감지 않고 버텼다.

“다시.”

아프지 않다. 지금 나를 때리고 있는 여자아이에 비하면 하나도 아프지 않은 거라고 백우는 생각했다. 다시 고개를 꼿꼿이 들고 태자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다시.”

마침내 불쌍한 여자아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백우가 부릅뜬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태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자아이를 밀쳐내고 곁에 있던 다른 아이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다시.”

백우의 뺨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부릅뜨고 버티던 백우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열 살의 백우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주색 용포를 걸친 또래 남자아이였다. 이 궁에서 자주색 용포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태자 전하 한 사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