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밖에 모르던 사람이 축구를 그만두면 그 삶이 얼마나 힘들까. 하루하루 술에 의지하며 살다 끝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현우는 다시 한 번 단호한 음성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동민은 씩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수비수가 바로 오현우 네 아버지야. 백넘버 15번 오경식 선수.”'현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오현우, 내 말이 거짓말 같지? 인터넷이라도 뒤져 봐. 이거 기분이 좀 더러운데. 진실을 말하고 한 대 맞게 될 줄이야. 오현우, 결승까지 꼭 올라와. 내가 너의 잘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 그리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내게 말해주면 안 돼요?”'현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앞만 보았다. 어떻게 그녀에게 말을 한단 말인가. '‘서유진,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될까 난 두려워!’'여전히 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그런 행동에 유진은 화가 치밀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닥친 일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진 자신에게만은 그가 말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유진은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왜 말을 안 해요? 저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오빠에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였어요?”'불만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도 현우는 침묵을 지켰다. 유진은 기분이 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말을 하지 않고 숨기는 걸까. 지금까지 그를 알고 난 이후로 그의 이런 태도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기분이 상한 것도 처음이었다. 마치 대화를 단절한 사람처럼 현우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렇게 긴 침묵이 한참 동안 이어진 후에야 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유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날 사랑할 수 있어?”'유진은 정면을 향한 채로 입술을 움직이는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유진은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를 사랑할 거예요.”'“그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도 그럴 수 있어?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일이라도 말이야?”''''“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무슨 말이죠?”'“우리 관계.”'“우리 관계. 다시 생각해 보죠.”'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돌아서는 유진의 등 뒤로 현우는 소리쳤다. '“서유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랑한다고 했잖아.”'등 뒤에서 가슴을 괴롭히는 그의 말에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대답했다. '“이런 일인 줄은 몰랐어요.”'그와 멀어지는 첫 걸음을 떼어내려던 순간, 유진은 자신의 허리를 껴안는 그의 손길을 느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러면 서로 더 힘들어져요.’'그녀의 허리를 안으며 현우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해줘. 부탁이야!”'유진은 그의 손을 살며시 풀었다. 아침에 계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와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는 똑같은 감정으로.'“그만해요. 이럴수록 서로 더 힘들어져요.”'그녀의 목소리는 약하고 여렸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 허리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떨림처럼 그녀의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녀린 목소리 속에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정말 서로가 더 힘들게 되는 걸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현우는 그녀의 허리에 감은 팔을 천천히 풀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씁쓸한 기운이 온몸을 슬프게 휘감았다. 이렇게 가버리는 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 그리고 닫힌 문, 그녀가 남기고 간 암울하고 씁쓸한 공기. 현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로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반짝하고 빛이 났다. 물끄러미 반지를 응시하던 현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허공에 대고 길고 긴 연기를 내뿜었다. '‘서유진, 이렇게 끝나는 건가?’'현우의 한숨 섞인 담배 연기가 우울한 잿빛을 띠며 허공을 떠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