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금융 사채업을 하는 청룡캐피탈 건물 앞에 8살짜리 소녀가 손에 흰 봉투를 들고 15층도 넘는 건물을 위부터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소녀는 으리으리한 건물답게 경비 업체 직원들이 무서운 얼굴로 소녀를 잡아 세우자 인상 때문에라도 겁먹을 법한데 이 녀석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경비 업체 직원을 째려보고 있었다.'“꼬맹아, 여긴 너같이 어린아이들이 오는 데가 아니거든?”'“아저씨, 경비에요?”'“뭐?”'“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 만나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그건 왜?”'“아저씨들은 알 것 없어요. 제일 꼭대기로 가면 되는 건가……?”'소녀의 당당함이 하늘을 찌르자 경비 업체 직원이 기가 막힌 듯 피식 웃고 있을 때 그 틈을 노리고 소녀는 elevator 앞으로 걸어가려하자 경비 업체 직원이 소녀를 잡아 세웠다.'“꼬맹아!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혹시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그런 거 없어요!”'“그럼 돌아가 좋은 말로 타이를 때!”'“나 여기 손님으로 온 거거든요? 그러니 아저씨들이 나 잡을 권리 없어요!”'“뭐, 손님? 거참 이 녀석 뭐라고 하는 거야!”'경비 업체 직원은 소녀의 말이 기막힌 듯 목덜미를 손으로 잡아채 밖으로 끌어내려하자 소녀가 소리 지르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아악! 이거 놔요! 나 꼭 여기 높은 사람 만나야 된단 말이에요! 이거 놓으라고요!”'“네가 높은 사람 만나서 뭐하게!”'“볼일이 있다니까요. 놔! 이거 놓으라고요!”'“자네들 지금 뭐하는 건가!”'경비 업체 직원들 뒤로 뭔가 근엄하면서도 날카롭고 매서운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녀를 잡고 있던 직원이 놀라 뒤돌아섰다.'“회, 회장님…….”'“지금 뭐하냐 이 말이야!”'“아, 네 그게 이 꼬맹이가 소란을 피워서요.”'회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경비 업체 직원에게 뒷덜미가 잡혀서 꼼짝을 못하는 꼬마 여자아이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소녀는 우윳빛 피부에 쌍꺼풀이 없는 눈 속에 매력적인 짙은 갈색 눈동자와 긴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땋아 내리고 조금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미국의 작가 올컷이 지은 장편 소설 ‘작은아씨들’에 나오는 막내딸 어린 에이미 마치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흠!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꼬맹이들이 여기를 드나들게 만드나!”'“죄, 죄송합니다. 회장님.”'“흠!”'회장이라고 불리는 이 남자의 이름은 이정우이며 청룡 캐피탈을 운영하는 회장이었다. 청룡캐피탈이란 제3금융권에 속하며 제1금융권은 은행을 말하고 제2금융권은 보험회사나 상호 저축은행, 투자신탁 등을 말한다. 제3 금융권이란 합법적인 것 같으면서도 불법적인 거래가 조금씩 이루어지며 깍두기 형님들이 손수 회수하는 제도가 있어서 조금 위험한 금융기관이기도 하였다. 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경비 업체 직원을 노려보더니 비서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걸어 나가려 하자 소녀가 바동거리며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아, 아저씨! 아저씨가 제일 높은 사람이에요?”'정우는 소녀가 소리치 듯 자신에게 물어오자 잠시 발길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무시하고는 걸음을 떼었고, 소녀는 다급한 마음에 소리 지르며 그를 계속 불러댔다. 경비 업체 직원 손에 잡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녀 때문에 정우는 신경 쓰이는지 무서운 맹수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뒤돌아서서 경비 업체 직원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려 하자 뒤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정우의 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darling, 모해? 기다리다 눈 빠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