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하늘과 이어지다, 연천(連天)

월문(月門).

말 그대로 달의 문, 기둥과 벽을 둘러싼 견석(堅石)에다 높은 천장이 둥그렇게 뚫려있고 편백나무가 자연스레 묻혀 있어 꽃보다 진한 향을 피우고 있었다.

지안은 떨리는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월문에 자리한 황제가 있다.

맨몸을 드러낸 채 유유자적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진은 보다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차분하지 못한 제 가슴을 다독이는 지안은 어떻게든 속내를 가라앉혀야 했다.

“오랜만이구나.”

물기 어린 눈빛으로 반긴다. 지안은 다시금 뛰는 가슴을 억눌러야 했다.

“……오랜만은 무슨.”

그것이 반대로 불퉁한 어조로 튀어나갔다.

“월문에 든 지가 오랜만이란 의미인데.”

지안을 놀리듯 수면의 물을 장난스럽게 튕기자 더 없이 붉어진 그녀는 고개를 틀어야 했다.

“왜, 나를 안 보려고?”

다시금 웃음기 실린 어조가 들리자 지안은 틀었던 고개를 바짝 되돌렸다.

“자꾸 놀리시기만…….”

그러다 말고 지안은 눈부셔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앞서가는 설렘에 한 발짝 다가서니 진은 그녀를 손짓했다.

“놀린 거 아니야. 그러니 이리와, 지안아.”

보다 다정한 눈길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진의 모습은 황제라는 존재감은 없었다. 있다면 분명한 사내, 그의 눈빛에서부터 전신이 그리 이르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양 팔을 등받이에 걸친 채 팔 벌린 모양새, 드러난 상체는 탄탄하기 그지없었고 울퉁불퉁하지 않는 미세한 잔 근육은 조각처럼 아름답기까지 했다. 지안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의 가슴 부근을 지나 아래로, 더 아래로…….

순간 확 붉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았을 때,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조차 떨릴 정도로 눈부셨다.

“그만 보고 이리오라니까.”

괜히 민망했다. 그러나 더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순 없음이니 겨우 진정시킨 속내를 저 만치 떨 군 채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황제의 옆에서 몸을 쭈그려 앉았다.

“지금 이거.”

“이거라니?”

지안은 감히 그의 상반신을 노골적으로 눈짓했다. 대놓은 시선이 싫지 않은 듯 진은 빙긋 웃었다. 그에 반해 지안은 보다 진지하게 물었다.

“시방……유혹하는 건가요?”

일순, 그가 숨을 멈춘 듯했다. 그리곤 소리도 크게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요란하게 웃는지 물속에 잠긴 그의 복근이 꿀렁대며 물길에 파문이 일 정도였다. 겨우 웃음을 멈춘 진은 발갛게 물든 지안을 한없는 눈길로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 보이느냐?”

“……아니면 뭔데요.”

“지안아.”

“왜 자꾸 부르셔요.”

“맞다. 유혹하는 거. 그러니 내 유혹을 받아다오.”

지안이 대놓고 이른 것보다 더하게 그녀를 칭칭 동여맸다. 도통 대거리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자 머리는 시키지 않았건만 육신은 이미 반응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손끝이 닿았다. 진은 다섯 손가락 모두를 단단히 얽으니 이내 맞닿은 모양 그대로 지안은 이끌리듯 물속에 잠겨야 했다.

풍덩.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면이 둥그렇게 자리한 돌무더기를 넘어 한없이 물결쳤다.

“지안아.”

깊고도 뜨거운 부름이었다. 그대로 녹아내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지안아…….”

또 들렸다. 분명 제 이름이건만 이곳 월문에서는 홀리게 들렸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옥죄어 왔다. 진은 지안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내 너를 홀릴 것이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곳마다 열기가 어렸다. 달구어질 필요도 없었다. 이미 순식간에 산화되어 버렸음으로. 그의 눈빛이 닿는 곳곳마다 온통 불덩이 그 자체였다.

어느새 지안이 걸친 흑색 정복이 하나둘 제거되기 시작했다. 황제의 손길에 의해, 허리끈이 풀리고 그녀의 팔을 들게 한 후 웃옷을 벗겨냈다. 질척한 옷자락은 물 밖으로 던지듯 내놓았다. 걸친 바지도 마찬가지로 황제의 손길에 의해 벗겨졌다.

투명한 물길 아래 미끈한 두 다리가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허리 정도까지 내려오는 소순(素純무늬가 없는 흰색속옷) 뿐이었다.

떨림은 한계를 넘었다. 명확한 상황을 인지한 지안은 보다 차분하게 황제인 그를 보았다. 진은 단단한 손을 내밀었다. 지안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윽고 맞잡은 서로의 손. 이번엔 양손의 열 손가락이 맞물리니 지안은 따뜻한 물길에 서서히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지안아.”

“예.”

“혹여 나와…맨몸이 닿는 것이 싫다면……. 말해라.”

진의 음성은 눈빛만큼이나 깊게 잠겨 있었다. 지안은 그의 배려 아닌 배려에 떨리는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대신 기대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온전한 애정에 기인된 맞닿음, 입맞춤, 그를 소유하게 될 자신에 대한.

지안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분명 그도 떨고 있음이었다. 자신보다 더 무던히도 겁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위로가 되어 용기를 주었다.

“싫으신지요.”

“무엇이?”

“나와 이리 닿는 것이, 내가 감히 폐하를 만지는 것이 싫으신가요.”

반격하듯 도발했다. 지안은 잡힌 한 손을 풀었다. 그 손으로 그토록 만지고 싶었던 그의 몸을 쓸었다. 드러난 치골부터 가슴으로 부드럽게 올라갔다. 상상보다 더 매끄럽고 탄탄했다. 단번에 그의 호흡이 달라졌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네가…이리 행하면…….”

진의 거친 호흡은 당장이라도 물길을 끓게 할 지경이었다. 지안은 다시 한 번 황제에게 다가갔다. 이번엔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그의 호흡이 멈추는 것을 또렷이 인지했다. 그렇게 도발한 후 지안이 물러났을 때, 당장 그에게 잡혀 버렸다.

“네가 원한 것이다. 절대 물리지 못해.”

물론 바라던 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즉시 그의 얼굴이 다가오는가 싶더니만 서로의 입술은 뜨겁게 겹쳐졌다. 잔잔하던 수면이 다시금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제는 거침이 없었다. 영악하게도 스스로를 내보이며 유혹할 줄 안 지안 덕분이었다. 그녀의 도발이 기쁘면서도 인고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견고한 이성은 그녀 앞에 무릎 꿇으며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서로의 고개는 미친 듯 움직였다. 기쁨의 탄성은 덤이었다. 월문 천정 한가운데로 붉은 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떠오른 달. 두 사람의 열화를 축복하듯 더 없이 찬란한 빛줄기임이 분명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떨어질 줄 모른 두 입술, 서로는 한 치의 공기도 통하지 않게 끌어안고 있었다. 물소리 찰방이며 거친 호흡만이 전부였다.

“진…….”

입맞춤으로 부어오른 붉은 입술, 또렷한 눈망울이 한없이 일렁이며 그를 열망한다. 도저히 안아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사랑스러움이었다.

“내 너를 어이할까. 지안아.”

극한의 자제를 하고 있는 황제는 지안을 가슴부근까지 안아 들었다. 쏴아 하는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지안이 그를 내려다보는 형국이었다. 지안은 황제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따뜻한 물기와 함께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더는 아니 되나요.”

“지안아…….”

“안 되나요?”

더한 것을 원하고 있는 지안. 울듯했다. 진은 뜨겁게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원할 수 있었다. 하나 됨이 문제될 리 만무, 황제의 의지만은 보다 명확하고 절대적이었다. 또 한 번 지안의 입술을 머금었다.

그리고 다시 떨어졌을 때, 지안은 그에게 단단히 안긴 채 물 밖을 나서고 있었다. 한편에 자리한 반월문을 지나자 돌 벽에 싸인 회랑이 나왔다. 그곳을 오른편으로 돌아 반월문에 들어섰다.

한쪽에 자리한 간이 침상은 보송한 천들이 널브러지듯 깔려 있었다. 심지어 꽃잎마저 뿌려진 상태, 그윽한 향이 한껏 어우러져 있었다. 황제는 그 위로 지안을 눕혔다. 그리고 뜨거운 육신이 겹쳐졌다. 진은 지안을 이마부터 손끝으로 쓸었다.

“나를 원하느냐.”

“절실히요.”

지안의 순진한 진심은 행복의 주문이었다. 그 ‘절실’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며 견고해지고 단단해졌는지 지안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진은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견딜 수 있겠느냐.”

“얼마든지요.”

끝까지 자신을 배려함에 지안은 미소와 함께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지안의 움직임에 진은 움질거렸다. 그의 굳건한 몸이 불타고 있었다. 참고 또 참았던 만큼 일시에 폭발할 것은 자명하니 보다 상대를 위해 이를 악무는 심정이었다.

“무섭도록 내달릴 것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 지요.”

끝까지 도발에 도발. 지안은 약 올리듯 황제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댔다. 한계였다.

진은 지안을 부드럽게 쓸면서 그녀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그 입술을 귓가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손을 뻗었다.

그것이 지안을 따뜻하게 달궜다. 다정한 그의 배려, 스스로 몸이 열리고 그를 원하고 있었다. 지안은 황제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진은 그 손을 감싸 돌렸다. 그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웠다. 그 작은 몸짓은 서로에게 행복의 시작이었다.

지안은 진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저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