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자, 건배!”'소현과 그녀의 일행은 곧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앞두고 대학을 졸업한 기념으로 이곳 라스베가스의 어느 호텔 클럽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고급 클럽이라 요란한 음악이나 조명은 없었지만 질 좋은 서비스에 특이한 안주로 인기가 많은 곳인지라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이 붐벼 여기저기서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는 이들이 꽤 여럿이 있었다. 짙은 에메랄드 색 가죽소파 위로 사람들이 저마다 왁자지껄하며 잔을 부딪쳤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크리스탈 잔에서 쨍하는 소리가 났다. 그 안에 든 색색의 음료가 출렁이다가 이내, 제 주인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대형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신세대취향의 힙합음악에 이어서 새롭게 리메이크된 30년대 풍의 재즈음악이 날카로운 전자 바이올린의 리드로 연주되면서 흥겨움을 더해갔고 무대 위로 춤을 추는 남녀 커플들이 점점 늘어갔다. '소현의 일행도 모두 흥에 겨워 샴페인과 그 밖의 안주를 한입 가득히 먹고는 저마다 자기 일을 얘기하느라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보는 친구들이었지만 이 클럽의 흥겨운 분위기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즐겁고 거칠 것이 없었다. '“소피, 넌 오랜만에 집에 가는 거라 반갑겠다?”'그 말에 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는 쉴라를 보고 소현이 웃었다. 소피는 소현의 영어 이름이었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온 그 이름에 저절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원해서 갖게 된 생활이 아닌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쥐어진 생활의 상징……그래서 소현의 입 꼬리가 삐딱하게 사선을 그으며 올라갔다. '“뭐, 조금은 그렇겠지?”'“무슨 반응이 그래?”'쉴라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소현을 흘겨보고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연민과 동정의 눈빛이 피어올랐다. '“이곳에 온지 벌써 5년이 다 되 가잖아? 너 그동안 한 번도 한국에 가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그 말에 소현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더니 무관심하게 한 마디 했다.'“내가 공부하러 여기 온 것도 아니고……다들 알면서 뭘 그래? 내가 가면 반가워 할 사람 아무도 없구먼.”'소현은 기분 전환하듯이 말을 딴 데로 돌렸다.'“그나저나, 쉴라. 너도 드디어 결혼하게 됐다? 독일로 돌아가면 약혼자하고 바로 할 거라면서?”'그 말에 쉴라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다시 행복에 겨운 빛이 가득 찼다.'“응. 그거야, 뭐. 단테가 서두르자고 그래서……너도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행여나. 소현은 속으로 코웃음 치며 아버지, 정환을 떠올렸다. 엄격하디 엄격한데다가 호랑이처럼 무섭기까지 한 아버지가 자기를 독일까지 보내 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마, 그녀가 귀국을 하게 되면 아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다른 형제와 다르게 언제나 집안의 골칫덩어리로 여겨진 그녀에 대한 대우는 꼭 그런 식이었다. 그녀가 이곳 미국에서 갑작스런 유학생활을 보내게 된 것도 다 아버지 명을 거역해서 생겨난 일이었다.'“그런데, 네 한국명이 뭐라고 그랬지?”'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사이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이코가 뜬금없이 물었다. 세이코는 일본인으로 미국으로 유학 온 학생이었는데 소현은 그녀더러 사이코(psycho)라는 짓궂은 별명을 갖다 붙이며 놀려대고는 했다. 세이코와 사이코의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갖다 붙인 별명이었다. 그러나 정신병자를 뜻하는 영어 사이코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같은 발음으로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사이코(さいこう최고)가 있다는 걸 소현은 몰랐다. 그래서 세이코는 그녀의 놀림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