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에서 내린 것이 실수였다. 아니, 애초에 대관료도 엄청나게 비싼 R호텔에서 제작보고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끝까지 뜯어 말리지 못한 게 실수였다.'“윤…… 건하.”'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1층에 내려 정 비서를 만나 곧장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을 것이다. R호텔 3층에 위치한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영화 의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던 해리는 얼떨결에 1층이 아닌 2층에서 내렸고, 발길이 멈춘 곳은 어이없게도 낯익은 남자의 이름과 오늘부로 그의 아내가 될 한 여자의 이름이 적힌 안내판 앞이었다.'[신랑 윤건하 ― 신부 신아영. 메모리즈 홀 14시 30분]'그저 같은 이름일 뿐일 거라 가볍게 넘기고 걸음을 돌려세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해리는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그 윤건하가 맞는 건지……. 이런 경우, 확률상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윤건하가 아닐 확률이 훨씬 더 높으니 이런 자리에서 마주할 가능성은 아주아주 희박한 거라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말이다.'고품격 웨딩 서비스로 유명한 R호텔답게 2층에 위치한 세 개의 홀 모두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그중 가장 작은 사이즈의 웨딩홀 앞에 놓인 웨딩사진에 다가선 해리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나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쉽게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혹시나 잘못 보지 않았을까 싶어 1층 로비에서부터 연결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주욱 늘어선 웨딩사진들을 다시 차근차근 보았지만, 모든 사진 속 주인공은 해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윤건하였다. 발끝까지 힘이 들어가 안 그래도 핏기 없는 하얀 발등 위에 시퍼런 핏줄이 도드라졌다.'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서 있던 해리는 저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결혼식이 진행 중인 웨딩홀 입구 근처로 걸었다. 그곳에서 신랑 측 부모님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해리는 짧게 코웃음을 뱉고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고여 있던 작은 물웅덩이에 짱돌이 날아든 것이다.'결혼식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서로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며 옅게 웃고 있었다. 신부의 곁에 서서 환히 웃고 있는 남자, 윤건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신부를 바라보는 훤칠한 남자의 입가에선 미소가 걷힐 줄을 몰랐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미소가 낯설고 어색해서 해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오른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때도 지금처럼 참 잘 웃던 남자였다. 미소만큼이나 따스하고 다정했던 그 남자.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허허 웃으며 넓은 품으로 안아 주던 그 남자. 해리는 그 사람의 여자가 되고 싶었고, 오래 걸리지 않아 그 꿈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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