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머꼬!”'수화기를 내려놓은 수란이 잡지책을 뒤적이는 주란에게 따지듯 물었다. 여행이랍시고 오랜만에 부산으로 내려온 동생은 반갑지만, 하루에도 열 댓 번씩 걸려오는 전화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언니 목청 진짜 좋다?”'“하이고마, 지겨버서 코드를 빼놓던가 해야지. 맨날 이기 머꼬! 언니도 글치, 머한다꼬 울집 전화번호는 갈키 줘 가꼬.”'“그러게 큰 언니가 잘못한 거라니까.”'수란이 저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잡지를 뒤적이는 주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았다.'“니 사장, 이리 온다카더라.”'“오거나 말거나.”'“도대체 먼일이고?”'“아무 일 아니라니까. 지겨워서 그만 두겠다고 한 건데, 괜히들 저러는 거야.”'“하이고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솔직히 불어봐라, 뭔 일이고? 거, 차 머시긴가 하는 머스마는 또 누고? 내 아주 그 놈아 전화 오면 열불이 확확 치민다 아이가. 먼 사내놈이 그리 고분고분 하노?”'“열 받을 일도 많네.”'“니, 그 머스마랑 연애했나?”'“아니.”'집요한 수란의 질문에 빙그레 미소를 띤 주란이 양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답답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언니를 보며, 주란은 누런 때가 앉은 깁스의 모서리를 손으로 떼어냈다.'“마,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은제 불꺼고?”'“불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쉬고 싶어서 사표 낸 것뿐이야.”'“말이 되는 소리를 씨부리야지. 사표를 냈는데 와 사장이 이까지 온다 카노? 그리고 그 머스마는 또 머꼬, 지가 먼데 왜 이까지 온다 카노?”'“일이 없나 보지.”'“니 지금 내를 물로 보나? 니 사고치고 도망 온 거제, 맞제?”'“하하하.” '말도 안 되는 수란의 상상에 주란이 유쾌한 웃음소리를 흘렸다.'두 번 생각하기 싫은 난리를 치른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사표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사장이 집으로 찾아왔었다. '‘황 차장, 이러면 안 돼요. 우리가 황 차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이러시면 안 되죠. 봉익이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녀석이 제 딴엔 어머니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그런 모양인데, 어쨌든 사과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사표를 낸다는 말만큼은 거둬주세요.’'하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봉익을 매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주란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그 순간 주란은 알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일상 속에서 차 봉익이란 남자의 인격을 믿었다는 사실을. 그런 자신의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