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계절이 바뀌고 다시 찾아 온 겨울의 끝자락. 이제 막 시작된 2월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터라, 매서운 추위에 온 몸이 다 시렸다. 저 멀리 보이는 산세와 함께 펼쳐진 논 밭.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죄다 낡은 기왓장을 지붕으로 덮고 있었다. 좁은 논두렁 길. 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면 딱 맞을 그 길을 검정색 고급 세단이 제법 익숙한 듯 날렵하게 속력을 내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에 가끔 차체가 덜컹 거렸지만, 세단 뒷좌석에 타고 있는 무열의 얼굴엔 작은 표정변화 조차 없었다. 좁은 논두렁길을 벗어나자, 이내 보이는 마을 입구에서 무열이 운전을 하고 있는 자신의 비서 철호에게 잠시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철호가 백미러로 그의 손짓을 확인하고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웠다. 무열이 차에서 내려 잠시 차체위로 몸을 기대고 섰다. 그리고 슈트 안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 담배를 빼 물었다. 마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듯, 철호가 그가 문 담배 끝으로 라이터 불을 대주었다. 금세 코끝 가득 채워지는 알싸한 담배 맛에 무열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후우…….”'지금 이 담배 한 대를 끝으로 몇 시간은 피지 못할 참이었다. 꼬마 아가씨 앞에서 담배를 태울 수 없는 노릇이니까. '청량한 구름을 벗 삼아 밝은 햇빛이 비쳤지만, 외투를 걸치지 않은 그의 슈트 사이로 칼날 같은 바람이 파고들었다. 확실히 시골 촌구석이라 바람의 세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키 185센티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늘씬한 슈트 차림에 무열. 또 그와 어울리는 검정색 세단은 허허벌판 허름한 시골 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무열이 멀찌감치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며 나지막이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