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연은 아직 잠이 다 가시지 않은 눈으로 천천히 돌아누웠다.'몸을 꼼지락거리며 희미하게 눈을 뜬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흐트러진 긴 앞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해연은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런 장면은 아무리 되풀이되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언제부터인가 눈을 뜨면 이 남자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깊이도 잠들어 있다. 오늘은 그나마 넥타이는 풀어 놓은 채였지만, 나머지는 왔을 때의 차림 그대로 풀썩 엎어져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마치 자기 집인 양 편하게 자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피곤에 절어서 잠들었을 남자의 얼굴이 이렇게나 맑고 아름답다는 게 지금은 훨씬 더 놀라우니 김해연, 정신을 좀 더 차려야 할 것 같다.'‘이 남자의 첫인상이 어땠더라…….’'일단 화려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도 얼굴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주위까지 환하게 밝혀 줄 정도로 화사한 미소 때문에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살아오면서 보아온 어떤 사람보다도 밝았다.'갈색기가 도는 결 좋은 머리카락과 개방적인 미소, 훤칠한 키 등 전신의 모든 요소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이 눈에 띄는 남자였다. 하지만 고요히 앉아 은은하게 미소 지을 때는, 일순간 설렐 정도로 분위기가 짙기도 했다. 화려함과 은은함의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지닌 남자.'마치 태양에서 온 달빛 같았다.'“0919.”'해연은 낮게 중얼거렸다.'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준 게 사단이었을까. 아니,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자신은 이 잘생긴 청년(?)이 오는 게 사실은 기뻤다. 어쩌면 내내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이렇게 잠들었을 때에야 제대로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있는데도.'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잘생기고 매력 있는 연하의 남자에게는.'이 집이 마치 휴식처라도 된다는 듯, 혹은 밤샘 운전으로 지친 운전자가 휴게소에 찾아들 듯 단지 수면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자신의 옆에서 그가 잠들어 있는 풍경이 싫지 않다. 반갑다.'얼마나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을까. 잠이 깬 건지 우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결 좋은 갈색 머리카락이 형광등 빛을 받아 금사(金絲)처럼 반짝였다. 여자보다 더 긴 속눈썹이 올라가면서 깨끗한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시선을 피하지 못한 해연의 눈동자와 우진의 시선이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