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계절은 청개구리가 울고 씀바귀가 제 맛을 내며 초목이 성장하여 무성해진다는 맹하(孟夏, 초여름)다. 그러나 화룡사 경내는 밤새 내린 는개로 촉촉이 젖어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대기는 미처 마르지 못한 비의 잔흔으로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산사 주변은 검은 덤불만 잔뜩 웅크린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간시(艮時, 03시30분)를 넘어 인시(寅時, 04시30분)로 접어든 시각.'어둠에 잠겨 있는 화룡사 경내를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가 지객당 근처에 이르러 모습을 감추자 동시에 지객당 문이 열리며 아기를 보듬어 안은 여인이 나왔다. 그녀는 주의 깊게 주위의 동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여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제백, 저 여인의 태도를 보아하니 쫓기는 여인인 것 같군.”'“소신의 생각도 그렇습니다.”'“그렇다면 저 여인의 품속에 있는 아기 또한 쫓기는 신세라는 말일 테고.”'“물론입니다.”'“우리의 목적은 달성했군. 가세.”'“네, 전하.”'묵직하게 퍼져 있는 안개 속으로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아기를 안은 아연은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화룡사 경내를 벗어나 새카만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뒷산 입구로 들어섰다. 안개까지 끼여 있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섬뜩한 무서움이 몰려와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아기를 더욱 세차게 보듬어 안으며 중얼거렸다.'“아가야, 죄 많은 어미지만 우리 아가만은 꼭 지켜줄게.”'그 말과 함께 아연은 검은 덤불만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산속으로 한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안개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산 속에서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툭 튀어나와 그녀를 확 잡아챌 것만 같았다. 목덜미가 쭈뼛해지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갔다. 당장이라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만 싶었다.'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기를 보며 다시금 용기를 낸 아연은 두려움을 참으려 이를 악물고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뭇가지에 긁혀 생채기가 생겨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여도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짙은 어둠 속을 정신없이 달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녀는 별안간 딱딱한 물체에 부딪히고 말았다. 가뜩이나 무저갱 속에 갇혀 버린 것처럼 공포에 휩싸여 있던 터라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렀다. '“악!”'“크크, 여기까지 달려오시느라 수고했소. 부인.”'음침한 사내의 목소리가 바로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자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내뺐다.'툭! 이번에는 등이 딱딱한 물체에 부딪히고 말았다. 앞뒤로 막혀 버린 것이다.'“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