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모자람은 재앙이다 … 굴욕'''' “미스 지! 여기 복사 잘못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공우 기업 홍보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새파랗고, 새파란 최은영은 말끝마다 미스 지, 미스 지 하며 말을 반 토막으로 자르고는 은수를 함부로 부렸다. 최은영은 끽해야 이제 스물 세 살이어서 스물아홉 살로 올해 서른에서 한 살 모자란 은수에게는 새까맣게 어린 동생뻘인데.' “어디가 잘못 되었나요?”' 은수는 책상 위를 열심히 닦다가, 자신을 닦달하며 부르는 은영에게 다가갔다.' “눈 크게 뜨고 잘 좀 보라고요, 여기 흐릿하게 나왔잖아요!”' 은영이 빈정거리며 손가락으로 다소 흐릿한 글씨를 툭툭 가리켰다. 그러나 괜한 트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보는 데 하등 문제가 없어 보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 은영의 시퍼런 서슬에 은수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내가 괜한 트집이라는 거예요? 이거 턱하니 보고서로 올려 봐요. 그러면 누가 욕을 먹겠어요? 계약직인 미스 지가 잘못 해줬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미스 지한테 책임 가는 거 아니라, 이런 보고서 올린 내가 바로 지적 받게 되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정말 조류 머리를 가지지 않고, 사람머리를 가진 이상,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여기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거 맞는지, 의심스럽군요.”' 대 놓고 네 아이큐가 조류와 등급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비아냥거리는 표정과 말투는 충분히 모욕을 주고 있었지만, 지난 9년간 대책 없이 시비를 거는 상대는 그저 내색하지 않고 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한 은수는 묵묵히 받아 들였다. ' “다시 해 와요.”' “네.”' 별 반응 없는 것에 샐쭉해진 은영은 수 십장의 복사물을 아까운 줄 모르고 쓰레기통에 집어넣고는 다시 한 번 화살을 던졌다.' “다음번엔 계약직을 아예 없애버리라고 건의해야겠어.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데 답답해서 어떻게?”' 그렇다. 이제 입사한지, 갓 3개월도 안 되는 애송이 최은영에게 입사 9년 차인 은수가 모진 소리를 들어도 참아야하는 이유가. 최은영은 정 직원이지만 은수는 계약직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홍보이사 아버지를 둔덕에, 기여입학제도를 통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명문대에 덥석 들어가, 낙하산으로 홍보팀에 합류한 은영과 달리,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머니와 두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대학은 꿈도 못 꾸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모자람 많은 은수는 별천지차이이다.' 계약직이란 게 언제 해제될지 모르는 불안한 자리인지라 9년간 은수는 묵묵히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청소와 사소한 소일을 도우며 그녀는 다른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주어진 일만 해야 했다. 그 세월이 벌써 9년이었다. 이제 서른이 곧 임박한 그녀는 더 이상 20대의 파릇파릇한 느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