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가득 느껴지던 뜨겁고 강렬한 열기가 마치 꿈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서연은 왠지 허전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떴다. 낯선 방, 낯선 공기에 잠시 누운 채 의아한 얼굴로 눈을 굴리던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는 현성의 모습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너무 놀라 한동안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멍하니 누워있었다.'“뭐, 뭐야? 너?”'서연이 급하게 이불을 끌어당기며 소리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현성이 따스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깼어?”'“대체 여긴 어디야?”'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있던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서연은 그런 자신의 목소리에 부끄러워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내 집.”'그 모습에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이불을 목 밑까지 덮고 있던 서연이 한껏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뭐?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데?”'“기억 안 나? 내가 데리고 왔잖아. 같이 살자고.”'“뭐?”'그의 대답에 한순간 서연의 머릿속이 새하얘져 갔다.'‘지금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서연이 시선을 흔들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현성이 그녀의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조용히 속삭였다.'“잊었나보네? 너도 어젯밤 내 품에 안겨 이미 동의까지 했는데 말이지.”'서연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이불속에 감춰진 자신의 모습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많이 흐트러져 있다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서있는 현성은 입다가 만 것인지 와이셔츠의 단추가 반쯤 풀어져 있었고, 보아하니 침대도 널찍한데다 베개도 사이좋게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으니……! 그래. 회식자리에서 저 녀석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술을 들이부었던 것까지는 기억났다. 그런데 그 이후론 전혀 기억이 나질 않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 녀석이랑 여기에 있는지, 왜 이곳으로 온 건지, 또 이 녀석이 떠들어대고 있는 저 말의 의미조차 전혀 기억나질 않고 있었다. 당황한 듯 시선을 돌리는 서연의 모습에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걸고 상체를 숙여 그녀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목소리에, 야릇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던 그 말 때문에 서연의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어쩌지? 난 술을 안 마신 덕분에 지난밤 우리사이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는데. 내 품에 안겨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던 너의 간절한 목소리, 너의 달콤한 숨결, 그리고 너의 뜨거운 입술까지 전부 다 기억나는데.”'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침대로 기어 올라오는 현성의 모습에 서연이 기겁해 창백해진 얼굴로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시, 싫어! 저리 안 가?”'하지만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아예 침대위로 기어 올라온 그의 모습에, 서연은 발로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뻥 차버렸다. 그녀의 발길질에 현성이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끄응, 하룻밤을 함께 보낸 사이에 너무 매정한 거 아냐?”'몸을 일으키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현성의 모습에, 서연이 급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앉아 벽 쪽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채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덮으며 소리쳤다.'“이, 이건 모함이야. 아니, 납치야. 내가 언제 너랑 살자고 했어? 내가 언제 너랑 밤을 보내? 아무리 기억에 없대도 내가 그런 막나가는 짓을 했을 리가 없어.”'“그래? 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네 몸은 기억할걸?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젯밤처럼 내가 널 한 번 더 안아 줄 수도 있어.”'또다시 침대 위로 올라오며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살살 끌어당기는 그의 행동에 서연의 심장이 마치 말이 달리듯 덜그럭거리며 뛰어올랐다.'‘으아! 지금 이 미친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대체?’'“저, 저리가. 저리 가란 말야!”'서연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던 베개를 들어 그를 퍽퍽 때리자. 그는 마치 죄인처럼 말없이 앉아 그녀의 베개를 맞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서연의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설마……! 진짜로?’'그를 쳐대던 베개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서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꼼짝 않고 숨만 몰아쉬며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쓸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기억 안 나?”'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현성의 모습에 서연의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내도 모르겠다. 그에게 안겼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건 없고, 남자랑 그래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알 수도 없는데다가 어젯밤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조차 전혀 나질 않다보니 자기랑 밤을 보냈다는 이 녀석 말에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서연은 난처한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술을 그렇게 마셔댄 거냐고. 이서연. 미치겠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