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네가 무슨 CIA 요원이라도 되는 줄 아냐?”'충북지검 고경수 검사는 어린 시절 이웃에서 자라 친동생처럼 지내는 은수의 계획을 다 듣고 기가 차다는 듯 대꾸했다. 물론 스물일곱 하은수가 제천 경찰서 강력반에서 꽤 쓸모 있는 여형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저번 달에 매춘 조직을 검거할 때는 집나온 여고생으로 위장 잠입해서 핵심적인 정보를 빼내오기도 했다. 가뜩이나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인데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외할머니 죽음에 얽힌 일이니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병원에 누워 있는 여동생으로 위장해서 범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겠다니!'갸름하고 작은 얼굴에 어깨를 덮은 생머리,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서 어려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눈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눈동자가 맑고 선명해서 약간 고양이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인상을 부드럽고 선하게 바꿔준다.'“그래, 그래, 네 직감이 맞다 치자. MJ유통 회장이 너희 할머니하고 재혼하려는 거 알고 그 집 아들인지 손자인지 누가 재산 분할이 두려워서 일을 벌인 거라고 쳐.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데로 여자 혼자 몸으로 들어가겠다고?”'“그럼 어떡해. 뺑소니 사건이 사실은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증거를 찾을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데.”'은수의 눈빛이 반짝 빛이 난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눈을 빛낼 때마다 무슨 일을 저지르곤 했기 때문에 경수는 덜컥 겁부터 났다. 약간 감정이 격해졌는지 유일하게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오빠, 내 말 들어 봐.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재혼을 막을 정도면 유언장은 안 건드리겠어? 이 할아버지는 안전할 수 있겠느냐고.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은수는 김만재 회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사진 속 남자는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재계 거물이다. 강인한 인상처럼 인정사정없는 경영자로 악명 아닌 악명이 높은 사람이다. '“아니면! 아니면 어떡할 건데?”'경수는 늘어지게 한숨을 쉬고 한풀 꺾인 어조로 물었다.'“아니면? 아니면 뭐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