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에 주혁은 잠을 깼다. '-주혁아, 빨리 들어와야겠다. 사장님이 위독하시다.'그가 이렇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지금의 아버지시다. 그가 미국으로 떠날 당시만 해도 아버지는 건강하셨다. 물론 어머니를 갑작스레 떠나보내시고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원래 건강하던 분이라 당연히 잘 계시는 줄 알았다. 지난주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 하나 있긴 하지만 괜찮다고 하셨다. 애비 걱정 말고 스필버그 같은 영화감독 되려면 열심히 공부하라시던 아버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14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혹시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 그는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스튜어디스의 눈에도 그의 상태가 불안하게 보였던지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물었다.'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맞닥트린 현실은 그의 우려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버지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시고 계셨다.'“아저씨,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버지가 왜 쓰러지셨어요?”'그의 물음에 정만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아저씨, 어서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건강이 이렇게 나빠지셨을 리가 없어요. 지난주만 해도 걱정할 거 없다며 영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꼭 훌륭한 영화감독이 돼서 아버지의 영화관에서 시사회를 하자고. 그런데 왜 아버지가 이렇게 누워 계시는 거예요?”'“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나도 알 길이 없구나. 그렇지만 확실한 건 영화관이 어렵게 됐다.”'“왜요? 경기가 어려워서요? 그거야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아버지의 영화관은 사실 이제는 낙후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 것이다. 이미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영화관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대기업의 영화 산업 진출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대기업의 자본력 앞에 소규모 영화관들이 속속들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영화관은 위치가 좋지 못했다. 서울역 근처에 있지만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위치였다. 주변 상권이 모두 죽어 영화를 보기 위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 적자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화를 사랑하셨다. 아버지의 땀과 손때 묻은 곳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 주혁 역시 변화하는 세태 속에 아버지 한 분쯤은 추억을 일깨워주는 영화관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알뜰하셨던 터라 부채 없이 영화관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다른 영화관들이 대기업의 힘에 밀려 속속 무너질 때도 굳건히 버티실 수 있었다.'그가 미국 유학에 오르는 걸 망설였던 것도 사실 영화관이 예전보다 어려워져서였다. 그런 그의 등을 밀어주신 분이 아버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