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이 가!”

설렘이 엿보이는 3월의 캠퍼스.

햇빛은 따사롭게 캠퍼스를 비추고 있었고, 춥지 않은 바람은 봄이라는 계절에 알맞을 정도로 선선하게 불었다.

학생들 몇몇은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다.

“우니우니. 성여우니.”

“아! 사희야.”

그리고 이들 사이에 여운이 있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아담한 체구와 흰 피부. 엄청 예쁜 절세미인까진 아니었지만, 누구나 보면 귀엽다고 할 만큼 호감이었다.

그런 여운의 어깨를 ‘팍’ 잡은 사람은 같은 과 친구 ‘김사희’였다.

짧은 쇼트커트와 큰 키에서 보이시한 매력이 철철 뿜어져 나오는 그녀는, 면접 때 한쪽에 쭈그리처럼 앉아 있던 여운을 꼬셨다.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두 여자. 별 얘기를 하지 않고 있어도 엄청 즐거워 보였고, 성여운의 스무 살, 새내기의 시작은 순조로울 줄 알았다.

“자기!”

이 남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직 말 못 한 거야? 내가 말해 줘?”

“아, 아니야. 내가 말해야 하는데… 타이밍을 못 잡겠어.”

“헐, 여기로 온다.”

“어떡하지…?”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떡 지고 뻗친 더벅머리. 엄청 두꺼운 렌즈를 지닌 검은색 뿔테안경, 여드름 왕창 난 피부에 깡마른 몸매. 10년은 역행하는 듯한 고집스러운 패션.

모든 여자가 기피하고 싶은 이 사람, ‘이동신’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여운의 남친?

그와 얽히면서 새내기의 환상적인 캠퍼스 라이프가 날아가 버렸다.

*

“성여운! 나랑 사귀자!”

“네?”

모두가 강의실 앞 그녀와 동신을 쳐다보았다.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고, 여운 옆에 서 있던 사희는 극혐하는 표정으로 동신을 쳐다보았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인 거 알아! 사, 사귀자!”

동신이 어디서 사 왔는지 모를 꽃을 여운에게 내밀었다.

새터(새내기 배움터)에서부터 여운에게 문자를 하고, 혼자서 끊임없이 들이대더니 결국 이런 사단을 만들어냈다.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는 놈이 하필이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공개 고백을 하다니.

“헐, 대박.”

“와! 사귀어라!”

“받아 줘!”

“아….”

첫 강의 첫 오티가 끝난 후였다. 이건 진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난감해하는 그녀의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된 듯, 고백을 받아 줄 것을 부추겼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절할 깡도 없는 그녀는 마지 못해 그 꽃을 받아 들었다.

덕분에 그녀의 과가 속해 있는 ‘상대’ 건물에서 그날 이후 그녀는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다.

남자라곤 1도 몰랐던 그녀의 첫 연애 상대가 반강제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진, 평소엔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라니!

그날로부터 여운의 캠퍼스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

꼬박 이틀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딱 마주치다니.

“미친, 겁나 빠르네.”

사희와 속닥거리는 사이에 여운의 눈앞에 도착한 그는 다짜고짜 여운의 손을 잡았고, 여운은 놀라서 손을 빼버렸다.

“우리 자기 너무 바쁜 거 아니니?”

“저, 선배… 어디 카페라도 가는 거 어때요?”

“선배 아니고 오빠라고 해볼래?”

능글맞게 웃는 모습도 질색할 만큼 참 별로였다.

“얼른 가자, 여운아!”

“응. 가볼게요.”

사희가 여운을 살렸다.

여운이 사희에게 꼭 붙어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했고, 그 뒤로 동신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모두 여운을 쳐다보았다.

“울 애기, 오늘 데이트 잊지 마,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준다는!”

*

“아씨, 소름. 자기 딴엔 재밌어 보이려고 하는 말투 맞지, 지금?”

“나 어쩌지, 진짜. 아….”

“아이고 답답아. 뭘 어째. 그냥 헤어지자고 해!”

“근데 혹시 나중에 나한테 불이익 올까 봐….”

소심한 여운의 태도에 사희가 가슴을 퍽퍽 쳐댔다.

동신과 같은 과가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까. 하필 같은 과 선배라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가 더 어려웠다.

물론 여운 한정인 것 같았지만.

“꼬추가 X토스 같아서 싫다고 해.”

“야아!”

필터 없이 나온 말에 여운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사희의 입을 막았다.

고백받은 날 저녁, 헤어지자고 말하기 위해 동신을 만났던 그날이었다.

그날도 동신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다짜고짜 손을 ‘턱!’ 잡더니 무작정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저, 선배… 어디 카페라도 가는 거 어때요?”

“난 걷는 게 좋은데? 카페 커피 대신 더 좋은 게 있지.”

그가 편의점에서 2+1 하는 커피를 사 들고 나오더니, 여운에게 두 개를 건네며 생색을 냈다.

“내가 3천 원이나 썼지만, 특별히 너한테 두 개 주는 거야. 마시면서 걸을까?”

“아… 감사합니다….”

성여운! 하고 싶었던 말은 하지도 못하고 뭐? ‘감사합니다?’

당장이라도 놓고 싶은 손을 놓지도 못하고 계속 걷는 데이트(?)를 하다가 여운의 집 앞에 도착했다.

괜찮다는 데도 굳이, 굳우우우이 여운이 사는 원룸 건물 앞까지 데려다준 동신이 음흉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여운이 자취하고 잘 취하니?”

“네, 네?”

“농담!”

“그럼 가세요….”

여운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동신이 ‘와락’하고 여운을 끌어안았다.

이건 박력도 뭣도 아닌 분명한 추행이었다.

단계도 없이, 호감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인 스킨십이라니.

하지만 그 순간!

여운을 더 놀라게 했던 건 포옹이 아닌, 동신이 자신을 안은 순간 느껴진 단단하고 뾰족한 느낌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연필에 찔린 줄 알고 눈을 밑으로 내린 그때, 여운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하하하하하하! 미친. 연필인 줄 알았대엑!”

그 더러웠던 순간을 사희에게 말했더니, 사희가 박장대소를 해댔다. 본인은 심각한데 사희는 극혐하면서도 그 표현을 듣곤 미친 듯이 웃었다.

“그만 좀 웃어….”

“아, 미안미안. 와, 근데 진짜 더럽다. 너는 원하지도 않는데 지 혼자? 아 소름.”

“하… 진짜 어떡하지.”

“뭘 어떡해. 오늘은 진짜 헤어지자고 해야지!”

그게 어려우니까 이렇게 고민하는 거 아니냐고….

“설마 키스라도 한 거 아니지!”

“미쳤어!”

“하긴, 그랬으면 너 벌써 드러누웠겠다.”

“하….”

여운이 맥이 빠진 얼굴로 책상에 몸을 숙여 기댔다.

“오늘은 꼭 헤어지자고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