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너무나 사랑해서

창살을 타고 들어오는 햇볕이었다.

꿈에 깨고 나선,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미주였다.

무릎 당겨 턱을 기댄 미주의 눈빛은 초점이 사라지고 없었다.

점점 하늘이 밝아지면서, 창살을 타고 들어오는 빛도 푸르렀다.

미주는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퀭한 눈 밑으로 비비크림을 발라 봤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비비크림은 속수무책이었다.

노란 스웨터에, 스키니 진, 블랙 가보시 힐을 착용한 미주의 어깨 위로 긴 브라운 계열의 코트가 가지런히 자리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시내 길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예쁘게 차려입은 미주의 발걸음은 또 다른 나의 미주가 안착되어 있는 봉안당이었다.

12월 12일, 미주의 열 번째 기일이었다.

벽에 기댄 채 하염없이 미주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속 미주는 그녀를 위로라도 하는 듯했다.

갑자기 펑펑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흐흑….’

“왜 울고 있어, 죽은 사람 더 슬퍼하게.”

태리 언니였다.

해마다 봉안당에 걸음을 하는 사람은 그녀 말고 또 있었다.

태리는 미주를 따듯하게 안아 주었다.

“우리 덜렁이가 남자 때문에 울 줄도 알고…. 다 컸네.”

미주는 태리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적셨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참고로 내 스웨터 100만 원 넘는다. 세탁비 꽤 나갈 거야.”

울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 어떤 사랑의 눈물로도 100만 원짜리 스웨터에 화장품이 묻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우는 방법을 택했다.

“으아앙!”

“그건 절규잖아. 뭉크도 아니고. 그렇다고 넘어가 주지 않을 거고.”

미주와 태리는 봉안당에 나와 넓은 바닷가 언덕을 함께 걸었고, 파도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우리 어릴 때 처음 만난 거 기억나니?”

“그걸 어떻게 잊어.”

“선수 생활 한창일 때, 미주가 네 자랑 엄청 했었는데.”

“귀에 딱지 붙도록 욕했다고 이미 들었거든.”

“그 어릴 때 미주도 펑펑 우는 게 첫 모습이었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미주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주가 울었어?”

정색하는 태리였다.

“아 그 미주가 아니구나.”

‘나구나…….’

“그러니까 왜 개명을 하고 지랄이야. 지어 준 이름으로 잘 살 것이지.”

“내 맘이거든.”

태리는 미주를 빤히 바라봤다.

“그 펑펑 울던 고 3이 이렇게 커버렸네.”

“그 멋있던 언니가 아줌마가 돼버렸네.”

태리의 말을 따라 하는 미주였다.

태리의 표정이 굳어진 채, 미주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짝, 미주는 강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아, 쫌!”

미주의 몸은 오징어처럼 몸을 비비 꼬아댔다.

“어떻게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 구슬프게 울던지.”

“말투가 이제 완전 아줌마라고!”

“이것이, 봐도 봐도 아름답다 못해 치명적인 내게 말하는 꼬라지가.”

“이젠 좀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구슬프게가 뭐야, 구슬프게가!”

“한 대 더 맞을래?”

“안 그래도 십이지장이 위장에 붙어 있는 느낌이라고 언니 때문에!”

“미주랑 하는 짓이 똑같니, 어떻게.”

“원래 끼리끼리 노는 거라고.”

“미주는 너랑 다르거든. 걔는 어린 게 가슴도, 엉덩이도 빵빵했다고.”

‘그래서 교복 단추를 못 잠군 거냐고!’

태리는 미주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었다.

“이 아줌마가 진짜 결혼하고 나서 완전 변태 아줌마가 됐어!”

미주는 자신의 몸을 두 손으로 가렸다.

“네가 같다고 하길래, 근데, 보니까 앞뒤가 똑같아서, 나는 날개뼈인 줄 알았잖아. 그래서 순간 생각했지, 이년이 염치를 통째로 삶아 먹었나.”

“딸기 우유를 덜 먹어서 그런다, 왜!”

“딸기 우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는 딸기 우유 입에도 댄 적 없는데?”

그 순간도 잠시, 미주는 태리의 몸매를 훑었다.

“내가 스파이크를 날릴 때 점프력이 10CM가 줄어든 게 내 가슴이 커서 그랬는데, 니 가슴이였으면, 나 한 3M는 뛰었을걸?”

미주는 태리의 몸을 보면 자괴감이 들 뿐이었다.

“내 자신감 결여는, 다 언니랑, 이미주 때문이야. 좀 서로 공평하게 나눠 갖고 태어나면 좀 좋아? 왜 한 사람한테만 일방적으로 다 주는데. 줄 거면 적당히 좀 줄 것이지, 아주 디지게도 줬네.”

이젠 눈앞에 있는 미주가, 딸처럼 느껴지는 듯싶었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하니?”

잠깐이나마 모든 순간을 잊게 해준 태리였다.

울컥한 미주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 속에는 도진이 그려져 있음을 태리는 알 수 있었다.

*

집을 나오기 전이었다.

도진의 방을 열자, 텅 비어 있었다.

서재로 발걸음을 향하던 도중 테라스에 앉아 머리를 질끈 두 손으로 감싸던 도진의 모습이었다.

다가갈 순 없었지만, 이별의 흔적과 같아 보였다.

과거의 이별을 했을 그녀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핏줄이라고 이별의 모습도 같을 필요가 있나 싶다….’

적잖은 미소를 짓던 태리였다.

미소 뒤엔 쓰디쓴 눈물이 도진의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침, 도진의 핸드폰으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붉어진 눈시울을 따라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었다.

계기판에는 시속이 220KM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도진이 도착한 곳은 천우 그룹 회사 전무실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김 비서는 파일을 내밀었다.

도진은 파일을 펼쳐 보자 과거 이력이 담긴 이사라의 모습이었다.

“이미주 씨의 경우, 본래 친구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다고 합니다. 본명은 이사라구요.”

‘이사라, 이사라, 이사라….’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분명 10년 전, 로넨고 교장실과 미술관에서 봤던 그 아이였다.

“화백 이주연 선생님의 따님이었던 미주 양의 절친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영호 씨는 현재 로넨의 이사진으로 부임하고 있으며 과거엔.”

“알겠습니다.”

“예?”

“김태리 씨 어딨습니까.”

“12일이지 않습니까, 부회장님 매년 같은 날에 쉬시던.”

“감사합니다, 모르시는 게 없으셔서.”

“전무 비서로 일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급히 달려 도착한 곳은 봉안당 앞 주차장이었다.

차량에서 내려, 봉안당을 들어가던 도진이었다.

눈엔, 화백 이주연 선생님과 유가족들이 함께였다.

“도진이 왔니.”

“안녕하십니까.”

“막 가려던 참이었다… 들어오너라.”

“예.”

홀로 봉안당 앞에 선 도진이었다.

눈앞으로는 어릴 적 미주의 모습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누군가의 모습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숨을 깊게 내쉬던 도진은 눈을 감았다 떴다.

마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였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걷던 도진이었다.

점점 노랫소리와 가까워질 무렵, LEWIS CAPALDI의 SOMEONE YOU LOVED였다.

우리의 상황을 가사가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노랫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다.

점점 다가가자 한 여인이 벤치 의자에 앉아 멀리 놓인 바다에 위로받고 있었다.

노래와 함께 말이다.

펑펑, 우는 울음소리는 음악의 베이스 음처럼 줄을 흔들었다.

그녀가 하염없이 울고 있다.

슬픔을 가져가 줄 가로등 한 점 없는 이 넓은 바다에서 자신의 울음소리는 그저 우주의 진공 소리와 같을 뿐이었다.

노래 가사가 흘러, 그의 뒤에 서서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랫말이었다.

노래가 꺼지자, 미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 집으로 향하려던 도중, 그녀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 흐릿하게 보이던 도진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그려졌다.

벤치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바라보던 사이, 먹먹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