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웅장한 대전. 그곳은 수백 명이 있다 해도 위압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그 대전에 승상이 홀로 서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불려온 승상은 지금 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황태자가 급하게 호출한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폐하 듭시오! 황태자전하 듭시오!”

승상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황제의 충신이었다.

대전의 높은 단상 위의 황좌에 황제가 앉았다. 율은 승상과 마주 섰다.

“승상, 네가 역모를 꿈꾸느냐!”

놀란 승상의 머리가 확 들어졌다. 청천벽력이었다. 승상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는 단정한 자세로 앉아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 소신 오로지 일심으로 폐하를 모셨나이다. 소신의 충심을 의심하십니까. 그 또한 소신의 잘못입니다. 그 죄를 받을 것입니다.”

“네 손녀가 황궁에 독약을 들였다! 그 독약을 들여보낸 자가 네 자부(子婦)다!”

승상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결국 참담함에 눈을 감았다. 승상이 쿵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폐하,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일가를 다스리지 못한 죄를 목숨으로 갚겠나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승상이 읍소했다. 허나 분노한 황제에게 닿지 않았다.

“네 일가를 모두 참형시킬 것이다! 황궁에 독을 들이다니! 네가 어찌 짐을 이리.”

황제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분노는 더 치솟았다. 승상은 그 독살사건의 참담함을 모두 본 자였다.

“태자는 들어라! 역모의 죄를 물어 승상의 일가를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황제가 박차고 일어나 대전을 나갔다. 차가운 돌바닥에 승상의 눈물이 쌓였다. 진심으로 섬긴 황제다. 황제에게 제일 아픈 일이 그 독살사건임을 누구보다 그가 알았다.

“나는 승상의 충정을 믿습니다.”

율은 내내 승상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승상은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절대 나서지 마십시오. 승상이 다칩니다. 그러면 황제폐하의 곁을 누가 지키겠습니까.”

쿵! 승상이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읍소했다.

“전하,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안 됩니다. 폐하 곁에 승상이 꼭 계셔야 합니다.”

쿵! 또다시 승상이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읍소했다. 늙은 노신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전하,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더는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승상을 부른 건 죽이려고 부른 게 아닙니다.”

율이 승상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속삭였다.

“이것이 승상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계략일 수도 있습니다.”

놀란 승상이 허리를 세웠다. 형형한 율의 시선을 마주한 승상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그가 봐 온 황태자가 아니었다.

“집안 단속을 잘못한 죗값은 네가 살아남는 것으로 하겠다. 살아서 폐하를 지켜라. 어떠한 일이 생긴다 해도 폐하의 곁에 있어라.”

약관이 되기도 전에 급제하여 황궁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다. 이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승상의 눈빛이 변했다. 그것을 보고 율이 일어섰다.

“연좌제는 없을 겁니다. 맡은 바 책무를 다하세요.”

율이 대전을 나가자 승상이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황궁에 또다시 피바람이 불 것이다.

*

“오셨습니까, 나리.”

“나리 아니다. 그냥 신이라고 불러라. 몇 번을 말하냐.”

“예, 나리.”

“하아. 됐다, 됐다. 네 좋은 대로 불러라.”

유신이 송시후를 버리고 황실보관실로 왔다. 가장 안쪽 방에서 돌쇠가 살고 있었다. 황태자가 그날 곧장 내보내려고 했지만 유신이 말렸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이다. 멀쩡한 모습으로 가도 놀랄 텐데 엉망으로 망가진 채로 어찌 가겠는가. 솜씨 좋은 의원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더니 유신이 놀랄 만큼 멀쩡해졌다.

“이거 받아라.”

돌쇠가 작은 주머니를 받고 깜짝 놀라 유신을 보았다. 열어보지 않아도 돈이다. 무게가 상당했다.

“이게 뭡니까, 나리?”

“그거 주러 왔다. 너 이따 밤에 황궁 나가잖아. 그년한테 사기당해서 가면서 밥 사 먹을 돈도 없잖아. 하루 세끼 국밥 두 그릇씩 정도 먹을 돈은 될 거다. 든든하게 먹고 다녀라. 그리고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네 아들 당과라도 사가. 더 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그것밖에 없다.”

갑자기 돌쇠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유신이 흠칫 놀라 한 발 물러섰다.

“야, 적어서 그러냐?”

“엉엉. 감사합니다요 나리.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요 나리. 정말 감사합니다요 나리. 으어어엉.”

유신이 한숨을 쉬면서 돌쇠의 어깨를 토닥였다.

“감사도 됐고. 은혜도 됐어. 그냥 너는 시킨 일이나 잘해.”

“아닙니다요, 나리! 제가 꼭 나리께 은혜를 갚겠습니다요. 저도 살려주시고 우리 아부지도 살려주시고 마누라도 살려주시고 제 자식새끼도 살려주시고.”

“됐어, 됐어! 그만해, 그만!”

돌쇠가 펑펑 울었다. 생각지도 못한 격한 반응에 당황한 유신이 돌쇠가 다 울 때까지 어깨만 토닥여줬다. 울음을 멈춘 돌쇠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빨리 뛰댕겨 오겠습니다요, 나리!”

“야, 북한성이 뒷동네냐. 뛰어갔다 오게. 너 발목 아직 무리하면 안 돼, 인마. 진짜 병신 돼. 내 말 빌려줄게. 그게 종자가 좋아. 잘 달릴 거다. 다녀와.”

돌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태자를 암살하려다 잡힌 그를 어찌 믿고 이 많은 돈과 비싼 말까지 내어준단 말인가.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유신이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울지 마! 너, 내가 분명 말했어! 울지 말랬어!”

돌쇠가 얼른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이 계속 났다. 돌쇠가 소매로 여러 번 문질렀다.

“나리, 제가 목숨 바쳐서 나리를 모실 겁니다요! 꼭 이 일을 해내고 말겁니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아. 돌쇠야, 목숨 바쳐 일하지 마라.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네가 일을 그르치면 골치 아파져. 부탁이니까 몸 성히 다녀와라. 알았어?”

“예, 나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휑하니 다녀오겠습니다요!”

“하아. 너 조금 걱정되려고 한다.”

돌쇠를 볼수록 유신은 자꾸 불안해졌다. 열의가 높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율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황제에게 들렀다 오느라 꽤 지체됐다.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찬혁과 송시후가 심각한 얼굴로 일어섰다.

“어찌 됐나.”

“명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내궁의 숙소에서는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궁녀의 숙소에서 환약(마약)이 발견됐습니다. 그 궁녀는 승상 손녀의 수발을 들던 궁녀였습니다. 환약의 출처를 불지 않아 지금 취조하고 있습니다.”

“절대 자결하지 못하게 해라.”

“예, 전하.”

“전하, 내궁의 여인들이 같이 있기를 원합니다. 어린 여인들이 놀라 각자의 방에서 잠들지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곱게 자란 귀족 아가씨들이 험한 일을 봤으니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내궁 안에서만 다니게 하라.”

“예, 전하.”

최찬혁의 보고가 끝났다. 율은 심각한 얼굴의 송시후를 보았다.

“전하, 그 사내는 승상 댁의 머슴이 맞았습니다. 헌데, 승상의 자부는 전혀 이런 일은 모른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둘 다 취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군.”

“전하, 승상 손녀가 환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증상으로 보아 심하게 중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조해보니 본인은 환약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그 궁녀가 조금씩 환약을 먹인 것 같습니다.”

“일부러 먹였다는 것이냐.”

“제 생각은 그런 것 같습니다, 전하. 환약을 먹여 살인을 부추긴 것 같습니다.”

“살인을 부추기다니?”

“취조해보니 승상 손녀가 궁녀를 때려죽일 때는 항상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그날은 머리가 깨질 것처럼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궁녀를 매질하다 보면 그 화가 풀어졌다고 합니다.”

“화풀이를 하느라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냐.”

“전하, 승상 손녀가 처음 궁녀를 매질해서 죽인 날은 때리고 있는 게 베개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전혀 사람을 때린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궁녀가 깨워서 일어나보니 방에 죽은 궁녀가 있었답니다. 그 궁녀가 그랬답니다. 매질해서 죽였다고.”

“환각 상태였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에 궁녀를 죽인 게 작년 초겨울이라고 하니 15살이었습니다. 조사해보니 그때 죽은 궁녀의 나이가 29살이었습니다. 그 궁녀는 세답방과 생것방을 거쳐 소주방에 있다가 차출되었다고 합니다. 만일 어떤 제재가 없었다면 절대 맞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어릴 적부터 온갖 험한 일을 하며 커온 궁녀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15살 어린 여인에게 죽도록 맞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공범이 있군.”

“예, 지금 공범을 찾고 있습니다. 시체를 나르다 잡힌 궁녀 2명은 공범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궁녀의 친우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죽은 궁녀를 넘겨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독을 가지고 있는 궁녀는 그게 독인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머슴의 부탁으로 승상 손녀의 수발을 들고 있는 궁녀에게 연지를 전해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말을 맞춘 것은 아니냐.”

“입에 재갈을 물려 따로 격리해두어 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리 말을 맞춘다고 해도 자세한 것까지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말은 일치했습니다. 그 궁녀들은 이용당했습니다.”

“어이없군.”

“전하, 그 승상 손녀가 거처하는 방을 중심으로 좌우로 3칸씩 방이 비어있습니다. 좌우로 4번째 칸에 있는 아가씨들은 전혀 비명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내궁의 아가씨들 중 누구도 신음 소리조차 들은 자가 없습니다. 매질로 죽이려면 몇 시진은 때려야 했을 텐데. 아무리 입을 막는다고 해도 신음은 나옵니다.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 수상합니다.”

“승상 손녀는 뭐라던가.”

“승상 손녀는 제대로 기억을 못 합니다. 그저 때린 것만 기억합니다. 누구를 때렸는지도 모르고 왜 그 궁녀를 불러서 때렸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궁녀가 깨워서 일어나면 방에 죽은 궁녀가 있어서 알게 된다고 합니다.”

“제정신으로 버틴 것이 용하군.”

송시후는 몸속 깊은 곳에 막혀있던 숨을 내뱉었다.

승상 손녀는 그도 안면이 있었다. 어머니 생신 때면 봤었다. 그녀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배필로 어떠냐며 농을 걸기도 하셨다. 어머니가 혼담을 넣으려고 하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못 넣었다는 말도 들었었다. 반대 이유는 권력이 있는 집안과 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송시후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듣고 감동 받았었다. 황제를 위해 황태자를 위해 권력을 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전하, 이걸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찬혁이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생소한 표정에 율과 송시후가 놀라 쳐다보았다.

“말하라. 무엇이든 상관없다.”

“소신이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범인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그 머슴과 승상 손녀의 수발궁녀의 취조가 결정적일 것 같습니다.”

최찬혁이 잠시 말을 멈추고 고민했다. 하지만 황태자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에 말을 이었다.

“신이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합니다.”

“신이?”

황당한 송시후의 목소리가 꺾였다. 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최찬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감정도 없이 억양도 없이 돌쇠가 묶여있던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리던 유신이 생각났다.

“‘그자’의 입을 열게 하는 걸 제가 봤습니다. 고문관들과는 다릅니다.”

“불가능하다. 이 일은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격이 되지 않는 자를 엮을 수 없다.”

율은 단호했다. 이 일은 ‘역모’까지 갈 수 있다. 죽음으로 위장한 암살자와는 다르다. 일개 평민의 보초병에게 맡길 사항이 아니었다.

“전하, 옷만 바꿔 입히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죄인이 고문관에게 신분패 보자고 하겠습니까.”

송시후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분위기 좋은 방에서 좋은 옷 입혀서 한번 해보시죠. 제가 기록관으로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

청하원. 율은 방으로 들어서는 유신을 보자마자 웃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최찬혁에게 잡혀 온 유신의 얼굴에 화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둘 다 앉아라.”

“전하, 제 말 어딨습니까? 진짜 월화한테 다 줬습니까?”

“말?”

기억조차 못 하는 율의 저 얼굴을 유신은 진심으로 때려주고 싶었다.

“전하, 남문에서 잡아 올 때 말 두 마리 있던 것 말입니다.”

최찬혁이 율의 기억을 되살려줬다.

“아, 그거. 그 기생의 말이 아니냐. 그러니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유신이 율의 앞에 털썩 앉으며 목청을 높였다.

“두 마리 다 제겁니다!”

“둘 다 품종이 귀한 것들이었다. 네 처지에 그런 말을 어찌 갖고 있겠느냐.”

유신은 율의 모가지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것도 답답해 죽겠는데 쓸데없는 편견이 많은 율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전하, 제발 그 생각 좀 바꾸십시오! 한 마리는 월화가 저한테 준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원래 제 것입니다!”

“기생은 말을 선물로 받았다고 치자. 너는 어찌 그 귀한 말을 갖고 있느냐.”

“산골 촌놈은 말도 갖지 못한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제가 야생말을 잡아 키울 수도 있고. 전쟁 중에 도망친 말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전쟁 중에 도망친 말을 잡으면 성주에게 줬어야지. 그것은 군마로 써야 한다.”

“진짜 미치겠네.”

유신이 천장을 보며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율을 보며 말했다.

“월화한테 물어보십시오. 한 마리는 제가 도성까지 타고 온 제 말이 맞습니다.”

“알았다. 네 말이라 믿겠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말 타령이냐.”

율은 진심으로 의아해서 물었다.

“제가 왜! 내 말이 어딨냐고 물었는데 말 도둑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유신이 최찬혁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가 율을 보았다.

“월화한테 다녀오겠습니다. 돌쇠한테 빌려줘야 합니다.”

돌쇠 얘기는 들리지도 않았다. 월화에게 간다는 말만 들렸다. 율의 눈빛이 변했다. 기분이 나빴다. 그것도 많이.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절대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전하 참 치사합니다. 간땡이가 어찌 그리 쪼잔하십니까.”

“무엄하다!”

거침없는 유신의 말에 놀란 최찬혁이 소리쳤다.

“뭐라. 치사? 쪼잔?”

“좀 믿으십시오. 제가 계약서까지 썼는데 도망가겠습니까! 아니, 제가 그 말 타고 도망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빨리 일 끝내려고 돌쇠한테 빌려주겠다는 거잖아요. 제가 일을 빨리 끝내면 누가 좋겠습니까. 태자전하가 제일 좋잖아요!”

율의 눈에 날이 섰다.

“찬혁아, 그 돌쇠라는 자에게 말을 한 마리 내주어라.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않는 평범한 말이어야 한다.”

“예, 전하.”

최찬혁이 방을 나섰다.

“됐느냐.”

“아니죠. 제 말은요.”

“네 말은 잠시 후에 다시 말하자. 우선 네가 해줄 일이 있다.”

“싫습니다. 그게 뭐든 안 합니다. 저는 그 배후자인지 뭔지 그 새끼만 찾을 겁니다. 빨리 찾고 황궁을 나갈 겁니다.”

화가 난 유신이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율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풀렸다. 하는 짓이 귀여운 녀석이었다. 율의 표정과 말투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