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평성세(太平盛世)

온몸이 돌에 맞은 듯 욱신거렸다.

뼛속 깊은 곳까지 통증이 스며들어 숨이 막혀왔다.

콜록, 콜록. 기침이 터져 나올 때마다 몸이 흔들려 폐가 찢어질 듯, 고통이 밀려왔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누군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깊은 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숨이 막혀 발버둥 치다 그렇게 죽어가겠지.

그래도 뜨거운 것보다는 나아. 살이 타는 고통은 너무나 끔찍하거든.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해.

억지로 숨을 쉬지 않으려다, 터져 나온 기침 덕에 할 수 없이 코와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코끝으로 파고드는 명주바람의 향.

그렇게 따스하고 부드럽던 명주바람이 어느 순간, 못 견디게 차가워졌지. 언제부터였더라? 그래. 그날, 산채에서 모두 죽어 나가던 그날부터였다.

그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그날. 그날 살아남은 이는 모두 아파했다.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수없이 되뇌었지만, 그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기침 끝에 뱉어놓은 핏덩어리를 바라보다, 위찬은 멍하니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이 고통… 언제쯤 끝이 날까?

(옛 동국의 수도 천강성)

삼 일째 방 안에만 갇혀있던 위찬은,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환하게 미소지었다.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겠구나. 사흘만이다. 사흘 만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비단이니?”

반갑게 물었으나 아무런 답이 없다. 순간, 서늘한 느낌이 위찬을 휘감았다.

“누, 누구세요?”

“나다.”

코웃음과 함께 열린 문 속으로 나타난 이는 기다리던 비단이가 아니었다.

“마, 마님. 오셨습니까?”

번득이는 눈으로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는 인경의 서늘한 분위기에 위찬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날이 되었구나. 마음을 굳게 먹고 깊은숨을 들이마셔도 손발이 떨려 왔다.

인경의 하녀가 되고 삼 개월 만에, 위찬은 왕족 출신인 주인마님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평상시의 모습과 화가 나면 분이 풀릴 때까지 채찍과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여인.

사람들의 비난과 눈총과 괴롭힘을 피해 온 곳이 혹독한 매질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온몸이 찢어질 정도의 혹독한 매질은 얼굴과 손을 피해 교묘히 이루어졌다.

위찬의 행실이 음란하고 천박하여 내리는 징계라 했다.

징계의 주기는 점차 짧아졌다. 처음 서너 달에 한 번이던 것이 일 년이 지나자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 요즈음은 더 짧아졌다.

강도가 더해가는 징계에 위찬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답답하지 않으냐?”

“답답합니다.”

“풀어주랴?”

은근하게 물어오는 입가의 미소와 달리 두 눈은 위험스레 반짝이는 인경을 보며 위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행정관님께서 왜 너를 이곳에 가두셨느냐?”

인경의 물음에 위찬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겠지. 나도 모른단다. 위찬아! 나는 내 집안에서 나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 싫구나. 성심아! 준비한 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예. 마님.”

성심이 채찍과 물에 푹 젖은 몽둥이를 가지고 냉큼 들어섰다.

“얼굴은 피해서…. 상처가 나면 행정관님이 노하실 것이다.”

“예. 마님.”

비릿하게 웃은 성심이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또다시 시작이구나.

위찬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바탕 광풍이 지나갔다.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위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경이 물었다.

“억울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너를 당장이라도 기루나 사창가에 팔아넘기고 싶지만, 그래도 의남매라 정을 두시는 서방님을 생각하여 참는 것이다. 허니 주제넘게 서방님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네 정혼자나 잘 챙겨야 한다. 알겠느냐?”

“예. 잘 알… 콜록. 콜록.”

대답하려다 기침이 터진 위찬을 보며 인경이 코웃음을 쳤다.

“비단아! 비단이 게 있느냐?”

“예. 마님. 비단이 여기 있습니다.”

“위찬이 기침을 하는구나. 약을 가져다 먹여야겠다.”

“예. 마님.”

배가 잔뜩 부른 고양이처럼 만족한 인경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위찬의 턱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금세 표정을 바꾸어 혀를 찼다.

“쯧쯧. 내 그리 조심하라 일렀건만, 어찌하다 또 이리 다친 게야. 어디에 부딪혀 넘어진 것이구나? 네가 이리 다치면 서방님이 슬퍼할 것이 아니냐. 비단아! 우리 위찬이가 다쳤구나. 약을 먹인 뒤에, 상처에 바르는 약도 꼼꼼하게 발라주어라. 어디 한 군데라도 덧나면 네가 혼이 날 것이다.”

“예. 마님.”

공포에 질린 비단의 목소리를 들은 인경이 픽,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사뿐사뿐 걸음걸이가 가볍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가는 모습을 얼어붙은 사람처럼 보고 있던 비단이 눈물을 훔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언니. 괜찮으십니까?”

눈가가 젖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 약한 것이 위찬이 맞는 동안 혼자 훌쩍인 모양이다. 가엾은 것. 얼마나 놀랐을까? 위찬은 퉁퉁 부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나는 괜찮다. 그러니 울지 마라.”

“쯧쯧.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오늘은 정도가 더 심하구나.”

비단의 뒤를 따라 세수대야를 들고 들어서던 행수 어멈이 혀를 쯧쯧거렸다.

지난 이 년간, 위찬이 당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본 이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위찬의 몸을 닦아내고 조심스레 약을 발랐다.

“정말…, 마님은 이상하십니다. 우리 언니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시는지. 어떨 때 보면 꼭 정신이 나간 사람 같습니다.”

“쉿! 입조심 하거라.”

행수 어멈이 밖을 내다보며 주의를 주었다.

“심심하면 사람을 이리 잡으시니. 저라도 행정관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위찬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던 비단의 손이 다정하고 조심스럽다. 그런 비단의 마음을 잘 아는 위찬은 비단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지 마라. 행정관님이 알게 되셔도 난처할 거야. 마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시니.”

“위찬의 말이 맞다. 비단아. 괜히 일을 벌이지 말아라. 위찬아! 따뜻한 물에 몸이라도 좀 담그련?”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위찬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이 아프다. 폐를 다쳤는지, 기침이 자꾸 나온다.

이제 더는 치료할 능력이 없었으나, 의녀로서 지식은 잊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매를 맞다가는 언젠가는 죽어 나갈 것이다. 차라리 그때 죽는 것이 나았을까? 왜 살아남아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위찬은 온몸을 감싸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사흘 전이었다. 황제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날이 서 있는 기웅이 그녀를 가두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