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산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북으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그리고 귀찮은 이형산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편한 길 놔두고 불편을 감수하며 떠났던 결과치고는 나쁘다고 봐야 할까. 이유야 어쨌든 경원으로 다시 와 버렸으니 이형산과 반드시 한 번은 만날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런 확신이 들었다.'“수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어느 순간부터 뒤를 쫓아오는 자객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마을에서 이미 마주쳤으니 그네들만의 정보망을 통해 소문이 났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예상보다 그 수가 많았다.'“어젯밤보다 넷이 늘어 도합 열다섯이 넘었고 각 방향에서 여러 방법으로 빠르게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계속 이동 중인 일행의 위치는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자객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최권의 보고를 받은 모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냐, 라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상대가 덤비지 않는 한 괜한 힘 뺄 필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지만 처리하라는 하명도 없어 약간은 의아했다.'“어차피 급히 잡아야 할 것은 하나뿐. 그냥 두어라.”'의아해하는 마음을 읽은 모달이 조용히 넘어가 주어야 할 이유를 알려 주자 최권은 마음을 가뿐히 했다. 적들이 덤빈다면 서슴없이 베어 버리라는 전언은 이미 모두에게 하달한 터. 모달이 거리를 좁혀 오는 자객들보다 흑기조의 보법을 쓰는 자를 더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흑의인들은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듯 일심으로 자신들의 뒤를 쫓는 자객들의 목을 칠 순번까지 정해 놓고 그들의 출현을 기다렸다.'일행은 밤이 되자 넉넉한 크기의 객잔 앞에서 멈췄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좁은 가마에만 앉아 있던 공지가 다리가 아파 괴로워함을 알기 때문이었고 약을 챙겨 먹지 못한 은록을 위해서도 이래저래 제대로 된 숙식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흑기조의 보법을 알고 있던 자객의 움직임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이곳에서 쉰다.”'모달의 말에 두 명의 무사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주변을 수색하고 나머지 두 명의 무사는 객잔으로 들어가 묵을 방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나왔다. 안팎으로 안전한 것이 확인되자 공지가 탄 가마도 그제야 바닥에 내려졌다.'은록은 길을 떠나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줄창 모달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렸다. 무사들이 교군(轎軍) 노릇을 대신하는 터라 그녀까지 가마를 타고 움직이면 일손 넷이 더 추가되기 때문에 다시 가마에 오르는 것을 거절했다. 공지는 다리가 불편해 가마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지만 은록은 조금씩 체력이 회복되는 터라 마땅히 가마를 탈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허리를 동여매고 있던 무명천이 필요 없어졌을 때는 가마도 함께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