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날 흔들어 봐!

노래가 끝나자 그는 더욱 쑥스러워졌다. 듣는 이를 모두 사로잡을 만큼 감미롭다거나 풍부한 성량은 아니었지만, 음정 박자만큼은 틀리지 않았으니 못 들어줄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창피함을 버텨냈다. '요원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감동이 밀려와 울컥 눈물이 맺혔다.'“바보 같긴! 울라고 불러준 노래가 아니잖아.”'그녀의 눈물에 속상해진 노바가 벌떡 일어났다. 손가락과 손등을 이용해 눈물을 쓱쓱 닦아주는 그의 손길이 다정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울지 말라고, 속상하다며 달랬다.'“행복해서 우는 건 그냥 좀 냅둬. 행복하다는데 왜 그 행복 누리지도 못하게 해.”'“행복해도 울진 마.”'그는 엄한 눈빛으로 요원을 나무랐다.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을 봐야 하는 남자의 속상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일랜드 민요인 멜로디도 참 좋지만, 가사가 맘에 와 닿아. 예이츠 시잖아.”'“어.”'노바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였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였다. '늘 손에 닿지 않는 영감을 찾아 헤매는 저에게 네가 원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곳에 있지 않다며 격려를 마지않던 소녀. 그러나 그는 요원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늘 뜬구름 같은 영감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정작 요원을 잃고 나서야 제가 찾아 헤매던 궁극적 영감이 바로 그녀였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넌 내 영감의 근원이었어. 네가 있었기에 난 세상이 늘 새로웠던 거야.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지. 샐리 가든의 주인공처럼.”'“아…….”'처음 듣는 고백이었다. 저만은 노바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의기소침했었다. 그런데 영감의 근원이 저라니…….'“내가 네게서 영감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니었어. 넌 시작점이었어. 내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정체성 같은.”'“흑, 또 울리고 있어!”'요원은 와락 치밀어 오르는 감격에 또다시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결혼하자는 청혼보다 백배, 천배는 더 감동적인 말이었다. 이내 쓱쓱 눈물을 닦아낸 그녀는 울지 않으려는 듯 입을 앙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에잇, 인심 썼다. 네가 다시 영감을 느낄 수 있게 내가 평생 곁에 있어 줄게!”'“……어?”'노바는 충격적이었다. 씩씩한 웃음으로 환한 표정을 짓는 요원의 표정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조심스러웠다. '“뭘 그리 놀라? 평생 같이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싶어? 결혼까지는 생각 못 해 봤는데 두려워?”'놀리는 듯한 요원의 물음에 노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질문에 동의를 해서가 아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쿵쾅거려 심장이 뻑뻑했다. 그 심장에서 목소리를 끌어내려면 주먹으로 심장을 세차게 두드려야 할 것만 같았다.'“경고했지? 손잡으면 절대 안 놓아줄 거라고. 노바 잡는 스미스 요원을 뭐로 보고. 후훗, 잡았으니 절대 안 놓아줄 거야. 네가 싫다고 해도 이젠 안 물러 줘.”'“무르지 마, 절대…….”'노바가 겨우겨우 심장을 움직여 중얼거렸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서 목소리가 중간에 한 번 뚝 끊기듯 잠겼지만 제대로 의사를 전달했다. 놀란 눈빛을 거두지 못하는 노바를 지그시 응시하던 요원은 다시금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고갯짓이 여느 때보다 힘찼다.'“넌 피아노 연주만 해. 내 곁에서 잃어버린 영감도 되찾고, 그 영감 누리면서 주옥같은 곡 많이 작곡하고 연주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란 만큼 멋진 곡으로 네 이름, 사노바란 네 이름 피아니스트로 널리 떨쳐. 네 곁에서 내가 도울게.”'“……!”'요원은 노바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그의 손등에 난 상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보기 흉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심장이 아렸기 때문이었다.'“난 하루에 라면 한 끼라도 좋아. 네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하루에 라면 하나로 버텨도 행복할 것 같아. 네가 예전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만 있다면…….”'“너 정말…….”'노바는 목이 멨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심장을 휘감아 아무 말도, 아무런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듯했다.'“미안해서라면…….”'“그런 거 아냐. 미안하고 고맙지만 그런 마음으로 말하는 거 아냐. 나도 내 삶이 중요하거든? 미안함으로 남자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하진 않아.”'“……!”'청혼? 노바는 심장이 컥 막혔다. 그새 청혼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뀐 건 아니겠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말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 착각하는 건 아닌가, 그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다. '요원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노바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그는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매료되었다.'“널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사실을 알고, 오해였다는 거 알았잖아. 원망을 벗겨 놓고 보니 너에 대한 마음은…… 사랑밖에 남지 않아. 이십 년을 한 남자만 사랑했으면 된 거잖아. 더 기다릴 필요, 있어?”'“하아…… 청혼은 내가 하려고 했는데…….”'“기다릴게.”'요원이 싱긋 웃었다. 누가 먼저 청혼을 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노바의 청혼을 받아 보고 싶은 것도 여자의 마음이었다. '“아, 여기 덥지?”'요원은 내친 김에 막상 청혼까지 해 놓고 보니 쑥스러움과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청혼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럴 생각은 꿈에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고백을 듣고 있다 보니 청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감격이 솟구쳤던 것이다. 즉흥적이긴 했지만 말을 내뱉고 나서도 후회는 되지 않았다.'“이 방에도 에어컨을 달아야 할까 봐. 혼자일 때는 그다지 필요 없었는데…….”'요원은 괜스레 방을 훑어보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쑥스러웠다. 노바는 여전히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그녀를 응시하기만 했다. '“더우면…… 벗을래, 옷?”'무심한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내뱉고는 딴청을 부리는 요원이었다. '“난 좀 벗어야겠는데…….”'과감했던 말과는 달리 노바를 힐끔 쳐다본 요원은 애꿎은 양말을 스르륵 벗었다. '“샤워부터…… 할까, 더운데?”'요원은 대놓고 씻고 온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해서 더위 탓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채 한 발도 떼지 못하고 노바의 품에 갇히고 말았다. '“그 전에…….”'뒤에서 와락 요원을 끌어안은 그의 목소리가 정념으로 잠겨 허스키했다. '“너부터 내게 줘.”'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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