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개시켜줄게!

불안한 눈동자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쉬는 시간마다 문제집을 들여다본 것은. 새로운 교실에 적응해야 하는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민정은 오늘 전학 온 전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 웬 전학?”

“문제 일으키고 강제 전학한 거 아냐?”

“강제 전학?”

“왜? 그런 적 예전에도 있었잖아.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지방 학교로 전학 올 때는 대개 그런 이유더라고. 학교폭력, 왕따 뭐 그런 문제 있잖아.”

“아아…!”

저들만의 이야기일 테지만, 들으면 들으라는 식의 대화 내용이었다. 민정은 입술 안에서 살점을 잘근 씹었다. 최대한 무심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주구장창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다른 의견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내신 관리 때문일 수도 있지. 서울에서는 내신 등급이 잘 안 나오니까 여기 와서 등급 올리려는 꼼수일 수도 있지.”

그렇게 의견을 낸 이는 빨간 뿔테 안경 너머로 예리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 의견에 주변이 적잖이 술렁였다.

“어머, 그러고 보니 우리 말 다 듣고도 꼼짝 안 하는 것 좀 봐. 뭐야?‘니들이 뭐라 하든 난 상관 않는다.’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있잖아?”

“와, 진짜 재수 없다. 저런 왕재수에게 좋은 일 시켜주면 안 되는 거 아냐?”

다른 의견이 더 이상 대두되지 않는 가운데, 여학생들의 눈초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민정을 무수히 찔러댔다.

민정은 이번에는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억울했다. 정말로 성적 따위가 이유가 되어서 전학을 한 거라면 오히려 행복할 텐데…! 민정은 칼날 같은 시선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선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민정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 너 진짜 내신등급 때문에 전학 온 거야?”

앞을 가로막으며 다짜고짜 물어오는 이 때문에 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민정의 아래턱이 달달 떨렸다. 묻고 있는 이는 여학생이라고는 하나, 덩치가 산만 했다. 보수적인 가톨릭 재단의 학교여서 교복 치마가 거의 발목에 닿는 길이인데, 이 여학생은 그 길이를 엉덩이 아래로 바짝 올려놓고 있었다. 드러난 다리가 늘씬하기라도 하면 이해라도 할 텐데, 코끼리 다리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다리는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왜 대답을 못해?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말하면 될 것 아냐?”

온갖 인상을 써가며 윽박지르는 얼굴에다 대고 민정은 말하고 싶었다. 외치고 싶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러나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 얼굴 앞에서 민정의 입술은 굳은 채였다.

“하! 얘 좀 봐라! 끝까지 도도한 척 하는 꼴 좀 보라고! 야! 너 진짜 얼굴에 피멍 들어봐야 그 입 열 거야?”

여학생의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굵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실에 있는 모두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늘 공부고 뭐고 간에 사고 한번 쳐? 입을 찢어발겨? 와, 나 오랜만에 미친 짓 한번 해?”

동굴 같은 목소리가 왕왕거리며 민정에게 쏟아졌다. 민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맺혀있던 눈물이 속눈썹 밖으로 삐져나올 것 같았다. 두 눈을 감고 바르르 떨고 있는 동안 민정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아빠를 떠올렸다. 다 아빠 때문이야!

“에이, 우리 경서가 왜 또 열을 내실까? 누가 우리 경서 빵 뺏어 먹었니?”

교실 뒷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는 순간,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의아한 마음으로 눈을 뜬 민정은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민정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토록 무서운 얼굴로 윽박지르던 코끼리 다리가 세상 부드러운 얼굴로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 송두야, 왔어? 손은 괜찮아?”

코끼리 다리 경서뿐만 아니라, 빨간 뿔테 안경 선미를 비롯한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이제 막 교실에 들어선 그녀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고 있었다. 민정은 모두의 관심을 한순간에 끌고 간 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연속해서 깜빡였다.

큼지막한 두 눈, 그 사이에 오뚝 선 코, 그 아래에 붉은빛이 감도는 앵두 같은 입술, 발그레한 빛으로 생기가 넘실거리는 볼, 등 뒤로 풍성하게 늘어뜨린 윤기 어린 머리카락, 가만히 미소 짓는 와중에 언뜻언뜻 보이는 치아는 하얗고 가지런했다.

민정은 이번에도 속으로 외쳤다. 와… 예쁘다!

“별 거 아니더라고. 그냥 좀 삔 거래.”

송두가 붕대로 감긴 왼 손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여간 못 말려, 송두 넌!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거 좀 자제해야 해!”

빨간 안경을 밀어 올리며 선미가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경서가 짧은 치마를 애꿎게 아래로 끌어 내리며 머뭇거렸다.

“고마워. 너 아니었음 나 진짜 큰일 났을 거야.”

민정은 송두라는 아이 앞에서 얌전한 고양이가 된 경서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입술을 작게 오므리고 오물거리듯 말하는 쟤가 아까 지랄용천하던 걔 맞아?

“그러니까 다이어트 성공할 때까지는 자전거 타지 마. 치마도 이렇게 짧게 하고서 넌 왜 맨날 자전거를 타니? 꼭 누구 보여주려는 것처럼?”

“쟤 치마 저렇게 입고, 꼭 생수고등학교 앞으로 지나오잖아.”

선미의 놀리는 듯한 말에 경서가 그렇잖아도 작은 두 눈을 더 가늘게 떠 보였다.

“우리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킹카들이 그 학교에 많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선미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런 킹카들이 너를 신경이나 쓰겠니?”

한심해하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경서는 주먹 한 번 들어 보였을 뿐 그저 똑같이 웃어젖힐 뿐이었다. 민정은 도무지 이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는 저렇게 순한 양처럼 웃으면서, 자신에게는 어이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다니!

“아무튼 미안해. 자전거 넘어가는 순간, 송두 니가 안 잡아 줬으면 나 어떡할 뻔 했어잉!”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경서가 어깨를 흔들며 송두에게 이야기했다. 송두는 씽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거야?”

송두의 의아해하는 질문에 모여 있던 친구들이 양옆으로 쩍 하고 갈라섰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드러난 공간의 끄트머리에 새로운 얼굴이 서 있었다. 여전히 겁에 질린 채 우뚝 서 있는 민정을 보며 송두의 이맛살이 부드럽게 올라갔다. 전학생?

“안녕?”

송두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민정은 당황했다. 전학생에게 해야 할 첫 마디를 이제야 해 주는 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게 앞선 상황과 너무도 동떨어지는 거라 민정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했다.

“야! 너 인사 안 해? 초등학교 때 도덕 안 배웠어?”

어느새 사자처럼 으르렁대는 경서 때문에 민정의 작은 어깨는 더욱 외축됐다. 송두를 향하여서 한없이 다정했던 눈빛들이 민정을 향하여서는 다시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송두가 갈라진 길을 따라 민정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민정이 의아하게 바라본 곳에서 송두가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민정은 고인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

“생명고등학교에 온 걸 환영해!”

민정의 두 눈이 흔들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따스함이 온 가슴을 덮쳐왔다. 민정은 송두가 내민 손을 잡기 전에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딴청을 부리는 듯한 눈길들이 종전과 달리 완화된 느낌이었다. 어째서…? 이 아이 때문에?

민정은 여전히 손을 내민 채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송두를 바라보았다. 눈에 띄게 예쁜 얼굴과 균형 잡힌 몸매가 그녀의 다정함과 어우러져 민정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민정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아까 속으로만 해대던 말들이 마구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난….”

눈물을 삼키며 쥐어 짜낸 목소리에 모두의 눈에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내신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여기로 온 게 아니야. 부모님의 사정이… 썩 좋지 않아서 이사를 왔고, 그래서 전학을 하게 된 거야. 집안에 아픈 일이 있어서 벌어진 일이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어.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 난… 그냥… 여기 있는 거야.”

이상했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민정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민정은 스스로도 참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속마음을 잘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

“그래! 근데 넌 그냥 여기 있는 거 아닐 거야. 분명, 우리가 함께 이 교실에서 만나게 된 건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거야.”

민정은 송두의 진지한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진심을 담은 눈과 말… 이 아이는 하늘이 보내준 천사라도 되는 걸까? 어쩜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민정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