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얼한 뺨을 만지며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지용이 들어섰다. 당황한 얼굴로 다가온 지용은 막상 앞에 서자 뭔가 망설이듯 주저하다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들고 온 하얀 약 봉투에서 연고를 꺼내더니 흠칫거리며 시선을 맞췄다.'“약값은 카드 긁었어요. 불만 없죠? 사장님이……먼저 덤볐으니까.”'말은 그리 밉살맞게 하면서도 지용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처 위로 닿는 손길에 욱신거리는 고통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붙잡아 품에 넣고 싶은 충동을 이를 악물며 참았다. 대신에 그녀의 얼굴 여기저기를 바라보던 상엽은 다시 그녀의 눈에다 시선을 고정했다. 눈꺼풀이 깜빡이는 게 아쉬울 만큼 총명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가 좋다. 하지만 그 눈꺼풀이 싫은 건 아니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깜빡일 때마다 입술을 대고 싶은 기분을 꾹 참는 동안, 연고 뚜껑을 열던 그녀가 멈칫한다.'“저기……눈 좀 감으시면 안 됩니까? 민망해 죽겠는데…….”'“내 눈으로 보이는 걸 보는 데 뭐 잘못됐나?”'“……아 그러세요? 그럼 저기 거울 있으니까 직접 바르시던가.”'상엽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 '길게 내려앉은 그의 속눈썹을 보자 지용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슬며시 내려온 시선이 입술로 향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뒤따르다 흠칫 놀라며 방향을 틀었다. 꼭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박자를 잃고 뛰었다.'‘아 미쳤나. 대체 왜 이래.’'몰래 가슴을 꾹 누르는 동안 그가 눈을 뜨더니 피식 웃었다.'“벌써 두 번이나 내 입술을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아 씨, 그래서 약 발라 주고 있잖아요.”'“말투고 태도고, 엉망이니까 하는 말이잖아.”'“여기서 뭘 더 어쩌라고요!”'발끈한 그녀가 손가락으로 상처를 세게 누르자 따끔하게 아파왔다. '“이 녀석이 진짜.”'상엽은 지용의 팔을 잡아 휙 끌어당겼다. 놀란 얼굴이 가까이 오더니 사색이 된 채 고개를 돌렸다. 버둥거리는 모습이 묘하게 애가 탄다. 정말 변태라도 된 건가. 마른침을 삼키던 상엽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보상……받아야겠는데.”'“보, 보상이요?”'“키스 한번이면 돼.”'“으악!”'지용은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상엽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단단히 미쳤지! 게다가 그대로 버틴 채 물러나지도 않는 저 뻔뻔한 얼굴을 보니 기가 막혔다. 가뜩이나 그쪽 때문에 머리도 복잡한데! '“뭐야! 대체 뭐냐고! 당신 진짜 나한테 왜 이래?”'결국 풋 하는 소리와 함께 상엽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도리어 당황한 지용은 입술을 깨물며 그의 가슴팍을 내질렀다.'“젠장. 대체 뭔 생각하냐고요? 뭘……어, 어쩌자고…….”'목소리가 떨려나오는 바람에 지용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내려버렸다. 그러자 미묘하게 웃던 그가 손을 뻗더니 눈썹 사이를 누르며 말했다.'“인상 좀 펴. 그런 얼굴에 대고 말하긴 싫다고.”'“윽.”'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피하던 그녀는 잠시 후. 잘 익은 복숭아처럼 상기된 얼굴로 다시 시선을 마주쳐 왔다.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어올랐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자꾸 만지고 싶고, 더한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저절로 손이 향했다. 엄지손가락이 살며시 그녀의 뺨을 쓸었다.'“참……이상해. 처음엔 그냥 별 생각 없었어……그냥 네 반응도 재밌고, 네 삐딱한 태도가 거슬려서 확 꺾어버리고 싶었거든.”'“뭐 이런 사람이…….”'지용은 느닷없는 상엽의 말에 울컥했지만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보자 뒷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의 손가락이 스치는 곳마다 뜨겁다. 무섭도록 감각이 일어나 있어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해서 뺨을 쓸었다.'“근데 확실히 알았으니까, 이제.”'하지만 이 세상에 그녀 혼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그 역시 살아있음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죽어버린 줄 알았던 가슴 속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감정의 움직임들에는 하나하나 이름이 붙어갔다. 설렘, 질투, 갈망, 호기심, 두려움……. 작은 관심으로 넣어둔 씨앗이 언제 그만큼 많은 가지가 되어 뻗어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상도 못 할 만큼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뿌리는 결국 하나였다. 아마도 처음부터 결론은 딱 하나였을 것이다. 다만 그의 경험으로는 알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원하는 지금의 마음은 그 감정을 넘어선 본능이었다. 끊을 수 없는……마치 중독된 것처럼.'“네가 좋다.”'“…….”'“미칠 것 같아. 너 때문에.”'속삭이는 것처럼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던 지용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검은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