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5월의 봄이었다. 열어 놓은 주방 창문으로 뒷산 체육공원 어디쯤에 피어난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휘어 감으며 밀려들어오는 저녁이었다. 집 안까지 밀려오는 것이 있다가 운동 삼아 공원에 올라가면 그 향기가 진동하겠구나 싶어 빙그레 미소 짓던 준희는 방충망이 쳐진 창문을 다 닫지 않고 살며시 열어 놓았다.'막 설거지를 마친 참이라 손에 묻은 물기를 옷자락에 아무렇게나 닦으며 방으로 들어간 준희는 짜증기가 다분한 동생의 목소리를 들었다.'“아으, 진짜 이 오빠 말귀 못 알아듣네. 으이씨 왜 자꾸 전화질이냐고!”'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던 연희가 클렌징크림이 묻지 않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인상을 팍 찡그리며 짜증을 부렸다. 그럼에도 이 아이의 얼굴은 도통 못나 보이지 않았다. 얼굴 가득 번들번들한 클렌징크림을 발라 놓았음에도, 눈 밑으로 시커먼 마스카라 자국이 흉하게 번져 있어도 그 아이의 미모를 가리지는 못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준희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왜 또.”'왜 또. 시큰둥하니 그리 물을 만큼 연희는 시시때때로 남자들에게 전화가 왔고 그것을 보는 준희에겐 호들갑을 떨 만큼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전에 말했잖아. 한 달 전에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만난 오빠. 남친 있다는데도 계속 전화야.”'“으응.”'준희는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에세이집을 펼쳐 벽에 기대앉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물론 관심 따위야 없지만 속으로 얄미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런 걸 두고 빈익빈 부익부라고 하지.'“확실히 다시 말해. 남친 있다고. 그 남자 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냐?”'“맞아. 제법 쌈박하게 생기긴 했는데 말하는 게 좀 재수 없달까? 아무튼 별로 정 가는 타입이 아니야.”'아 그러시냐?'준희는 속으로 비꼬아 주고는 책에 집중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그때까지 드윽, 드윽 몸살을 하던 휴대전화 진동이 꺼졌다. 그리고 곧바로 문자메시지가 뜨자 연희는 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쳐다봤다.'소리 내 한숨을 푹 쉬던 연희가 준희를 쳐다봤다. 뭔가 부탁할 것이나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곧잘 짓는 밉지 않은 울상을 지으며 말이다. 남자라면 100퍼센트 넘어가는 표정이었지만 28년간 보아온 준희로서는 얄밉고도 지겨운 표정이었다.'책에다 눈을 박아 놓고는 있었지만 그런 기운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둔감하지 못한 준희였다. 하지만 모른 체하고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언니야아.”'시작이다. 나름대로 귀염을 떨며 말끝을 길게 늘이는 것이 그녀에게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는 것이다. 준희는 짐짓 모른 척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