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향기

“떴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았던 하루가 어느새 저녁이 되면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살피는 카페 직원들의 시선과 움직임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샷, 몇 개 더 내려와야 해요?”

“……3개 더 나오면 돼요, 자몽은 제가 내보냅니다.”

누가 보아도 많은 손님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해결사들이 되어있었다.

“우리 사장님 1년에 딱 한 번 병원 다녀오는 날이었는데, 엄청 바빴다.”

“그래도 신명 나게 일해서 괜찮았어.”

“역시, 저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사장한테 건의하는 거야, 아니면 오빠한테 잔소리하는 중이야?”

“둘 다?”

“자자, 사장님도 우리 이지은 씨도 퇴근 준비하시죠?” 

그들은 순식간에 모든 손님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고 나서야 본인들의 귀가를 서둘렀다.

“주어진 시간에는 그 일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까탈스러운 사장님이니까 뭐, 더 말해봐야 뭐 하겠냐마는.”

“나 신명 나게 일했다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가벼운 손놀림으로 앞치마를 벗은 남자는 동료들이 자신의 몸 상태 난조에 대해 지적을 해도 웃었다.

“하이고, 아주 신명이 나겠다? 제발 몸 좀 아껴봐. 그러니까 그렇게 젊은 나이에 지문이 없지!”

“이봐 툴툴 매니저 선생, 불평불만 좀 그만하고 마감 준비나 하시지? 커피 샷 뽑느라 지문 사라지는 게 대수냐? 밥 먹고 살게 해주는 일이잖아.”

“흐음.”

“그리고 나만 없어? 이 매장에서 지문인식 한 번에 통과하는 사람?”

“졌다. 졌어.”

에스프레소 추출을 위해 뜨거워지는 포터 필터에 수만 번 닿아 희미해진 지문도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오히려 오늘은 내가 바쁘게 일하는 상황이 더 좋은 거 몰라?” 

“아니,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우리가 같이 한솥밥 먹은 시간이 얼마인데, 자꾸 그럴 거야?”

“……아, 정말.”

“있잖아, 우리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가족이라는 걸 잊지는 않은 거지?”

“내가 잘못했다고.”

그 남자의 세상은 중요한 것이 딱 하나 뿐 이였다.

“둘이서 사이좋게 마감 잘하고, 우리 필기구 서랍장 맨 아래 칸 꼭 열어봐.”

성인이면 성인답게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고, 몸만 자란 어른이 되어버린 채 타인에게 염려와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500일 축하한다. 그리고 기념 데이트는 좋은 거지만 너무 늦지 않게 헤어지라는 뇌물이라고 생각해 줘.”

“……!”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별일 없는 오늘을 감사하며 카페를 벗어났다.

[우와, 눈이다!]

저 멀리 누군가의 목소리로  전해 들은 눈 소식에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흠, 그래도 좋긴 하네.’

지금 이 순간은 한참을 옅게 흩어지는 눈송이를 따라 걷는 것에 집중했다.

‘아아. 슬슬 돌아갈까?’

그때였다. 오랜만에 여유로움을 만끽하던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위험해, 도대체 저 여자 뭐지? 귀신인가?’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떨군 한 여자를 발견한 눈을 원망했다.

‘신경 쓰이네. 오늘 폐지 할머님도 겨우 도와드렸는데.’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다시 한숨을 쉬는 것까지 외면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생각은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이러지 말자,  그냥 네가 갈 길 가는 게 그리도 어렵냐?’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무기력하고 울게 만들어 버린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해진 상태이기 때문이였다.

“저기.”

“…….”

한동안 대답이 없는 그 여자의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흠흠,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어디가 아프시거나 한다든지 그러니까 여기에 계속 앉아있으셨던 것 같은데.”

언제까지 자신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무슨 이유로 이 밤에 혼자 정류장에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여기, 그러니까 여기가.”

“네?”

그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을 것이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에요?”

“네? 여기는 그러니까 섬 오동인데요. 1243번 버스 정류장이고요.”

“도대체 우리 집은 어떻게 가야 하는 거죠? 흔, 으앙!”

“……!”

또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 성장한 어른인 여자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보이며 도움을 청하는 그날…… 고립되어 있던 자신의 시간이 새롭게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