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 악습과 습관의 굴레

“아들, 언제까지 그렇게 굳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을 거야?”

“어머님들 두 분께서 이렇게 힘을 모아 너무나도 약혼 이야기를 하시니 인상을 펼 수가 없네요.”

“아니, 아들.”

“네, 어머니.”

혁진은 오늘의 이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말에 흙이라도 묻을까 해서 걱정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바로바로 내 이야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 받아치는 거야? 싸움닭처럼 너무 달렸다는 것 같아서 나 서운해지려고 해.”

그렇기에 그 상대가 어머니라고 해도 강하고 패기 넘치는 전사로 변신해 싸울 준비를 했다.

“제가 그렇게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도 저희의 의견은 무시하시고 이런 약속을 잡으셨으니.”

채연의 어머니인 경화의 생각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장단에 자신의 어머니가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지리라고는 결코 믿고 싶지가 않았다.

“흠흠, 일단은 채연 양과 학장님 부부가 도착할 시간이니 우리의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미룹시다.”

“아버지.”

“일단 참아.”

“하아.”

아마도 자신의 행동을 그나마 제어해주려고 하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이미 혁진은 길길이 날 뛰어다닐 지경이었다.

“여보 고마워요.”

“당신은 조금있다가 집에서 나 좀 자세히 보도록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이지만 가끔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무엇이든 과하게 어떠한 일들을 진행하는 행동은 감당이 어렵기만 했다.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그때 밖에서 채연의 가족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가 혁진의 어지러운 생각을 잠시나마 멈추게 했고 그제야 그가 이성적으로 자신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희가 조금 더 늦었나 봅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조금 전에 와서 앉은 지가 5분 정도입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형식적인 어른들의 인사가 오가는 중에도 혁진은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했다. 이 짧은 순간에도 가장 크고 높은 산을 잘 넘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

“어, 어?”

“…….”

“선생님!”

“……!”

“아, 데었네.”

“지금 손을 다친 사람이, 선생님이라고요,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는.”

“괜찮아, 나 처음에 일 배울 때 많이 그랬어.”

손등으로 뜨거움이 퍼진 것을 뒤늦게 감지한 시후는 학생들의 걱정이 담긴 잔소리에 애써 웃어 보였다.

“선생님은 그때의 초보가 아니거든요?”

“빨리 치료받으러 가요.”

“그냥 얼음물에 손 담그고 약만 바르면 된다니까.”

“자꾸 그러시면 가게로 전화해서 지은이 누나한테 다 말할 거에요!”

“야, 그러지 말아주라.”

차라리 약을 먹고 나아질 수 있는 감기 때문이라면 조금은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서 치료받으러 가자고요.”

“네, 네에.”

머신기 추출 필터의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낸 손을 치료하러 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손이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지금 이 순간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마저 처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치료를 다 마친 후 가게로 돌아가던 그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흐트러진 것만 같아서 답답했다.

‘뭐가 이렇게 힘든 거냐. 차라리 이 겨울에 복숭아를 먹고 싶어 하는 시도가 더 효율적인 것 같다고.’

마치 제철에 먹을 수 없는 과일이 먹고 싶어서 아쉬움을 토로하다가 그 대용품을 찾아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차라리 부러울 정도였다.

’젠장, 이시후야, 한심한 놈아.‘

이런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외면하고 꼭꼭 숨겨두고 싶었던 채연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혁진에게 들켜버린 자신이 한심했다.

‘의심을 만들어주면 어쩌냐.’

비가 내리는 한적한 길거리 위에서 한심한 놈이라는 단어의 무한 반복을 외칠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채연을 처음 만났던 버스정류장에 차를 정차하고 있었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시후.’

그 어느 때보다도 시린 바람이 불던 겨울의 끝에서 만났던 그녀가 앉아있던 곳에 저절로 시선이 머물렀다. 알 수가 없었다. 그날은 그저 곤경에 처한 타인에 대한 남다른 배려심이 유달리 남달랐던 것이라고 치부하려 했던 시작이 이토록 커다란 고민이 될 줄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감정인 줄 알았었다. 제법 길게 함께해온 시간에 대한 끝이 오면 그냥 웃으며 기억하고 마주하는 평범한 만남이겠거니 치부해 버렸던 자신이 바보 같다. 바람이 불던 그 날 시작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후회를 해도 어쩌면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잘 숨기지도 못하고 그걸 들키냐.’

채연을 밀어내려는 그만큼 노력이 커질수록 아픔도 두 배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한낮의 꿈과 같은 동화일 뿐이기에 사력을 다해 지워버리려고 했던 노력이 왠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 해줄 거야.’

그렇기에 곧 그녀는 그녀가 살아가던 세상으로 돌아가 그저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잊히기를 기대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다짐을 위한 자기 최면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수없이 호흡을 내뱉어 보았다. 그때 갑자기 불현듯 이미 자신의 심장에 피어오른 그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이시후, 마음을 다시 얼려버려.’

그녀로 인해 녹았던 자신의 마음이 다시 얼어붙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