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출처 그리고 불화살

비가 내린다.

겨울비라 그런지 보슬보슬 오는데도 춥기만 하다.

“…….”

담 너머로 의금부 군사들이 들고 다니는 횃불이 도깨비불 마냥 보인다.

‘쿨럭쿨럭.’

많이 추울 텐데.

량이는 제 처지를 뒤로 하고 저를 감시(사실 지키는 거지만)하는 그들을 걱정한다.

그때 ‘덜컹.’ 하고 방문이 열리며 분이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분이는 량이 앞에다 작은 소반을 내려놨다.

나물 무침하나에 배추김치 그리고 건더기가 보일까 말까 하는 된장국, 꽁보리밥이라 해도 무색할 만큼 흰쌀보다는 보리쌀이 많이 섞인 밥…… 일상이 되어버린 밥상이다.

놀이패로 전국 이곳저곳을 다닌 량이에게는 이 소박한 밥상도 진수성찬(珍羞盛饌)이었다.

늘 길 위에 있었던 시간이 많았기에 주먹밥이 다반사였고, 쌀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지천(至賤-매우 흔함.)에 깔린 나물을 뜯어 곡식가루와 멀겋게 쑤어 굶주린 배를 채웠다.

“웬 생선이야?”

량이는 다른 반찬과 동떨어져 보이는 잘 구워진 생선에 분이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사 주셨어요.”

분이는 오늘 궐을 나오고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왔다.

“이런…… 그래도 나 때문에 내의원에서 나오게 되셨는데…….”

분이 할아버지는 량이가 궐을 나옴과 동시에 내의원에서 나왔다.

“괜찮아요. 어차피 마마 때문에 들어가신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마마라 부르지 말래두……다음부턴 이러지 마시라 해.”

량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예…… 어서 드세요.”

“음.”

량이는 나무수저를 들어 된장국을 떠 한 입 먹었다.

“으음-, 오늘따라 된장국이 더 맛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지겨우시죠, 맨날 된장국이라…….”

“아니야, 된장도 못 담구는 집도 많은데…… 그런 소리 마.”

“얼른 드셔 보세요. 정말 잘 구워졌으니. 히.”

분이는 량이가 밥을 뜨자 얼른 뼈를 발라낸 생선살을 밥 위에 얹어주었다.

“…….”

량이는 저를 반히 보고 있는 분이에 마다하지 않고 생선살이 올려진 밥숟가락을 입안에 쑥, 넣었다가 뺐다.

입꼬리가 옆으로 늘어지며 ‘아, 맛있다.’ 한다.

분이는 만족한 표정으로 저도 밥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그럼, 안 되지.”

량이는 막 입안으로 들어가려는 밥숟가락을 붙잡는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크게 떼어 빨리 숟가락을 대라는 시늉을 했다.

“…….”

잠시 머뭇거리던 밥숟가락이 입에서 떨어져 젓가락 가까이 갔다.

량이는 재빨리 생선살을 밥 위에 올려주었다. 분이의 입꼬리가 좀 전 량이가 그랬던 것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헌데,

“……왜, 왜 울어? 분이야?”

늘어진 입꼬리가 점점 쭈글쭈글 거리다가 이내 얼굴 전체가 쭈글해지며 울상이 되어버린 분이다.

량이는 어리둥절하여 다가가려 몸을 움직였다. 허나 분이의 움직임이 떠 빨랐다.

그녀는 소반 옆으로 물러나 량이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머리가 아예 방바닥에 붙어버렸다.

“분, 분이야?”

“마마, 소녀가 꼭! 무사히 여기서 빠져 나가게 해드릴게요.”

“……훗, 고마워.”

‘난 또 뭐라고.’ 하는 표정으로 량이는 분이의 어깨를 잡아 몸을 바로 해주었다.

“놀랬잖아. 무슨 일인가 하고. 그래,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을 거야. 허나 지금은 배가 고프니 밥을 먹어야겠지?”

량이는 분이에게 수저를 쥐어주며 소반 앞으로 이끌었다.

“제가 꼭, 꼭…….”

“알았어. 울지 마.”

뚝, 그치고 밥 먹자는 듯이 량이는 생선살과 배추김치를 밥에 올려 주었다.

분이는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고 야무지게 밥을 떠 입안에 넣었다.

“…….”

이상하다. 우울해보이기는 했으나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자, 하는 소리를 한 적 없는 분이었다.

헌데 오늘 할아버지를 만나고 온 직후부터 자꾸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전의(戰意)를 불태운 것이다.

무슨 말이라도 들었나? 혹, 빨리 빠져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일까?

량이는 여전히 울상으로 밥을 꾸억꾸억 먹고 있는 분이를 보며 불안감을 떨쳐내려 미소를 그렸다.

일이 어찌 되었든 간에 저를 이리 생각해 주는 이를 만났다는 것이 눈물이 나고 소중했다.

“…….”

량이는 문창호지로 비치는 횃불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던 날보다 일찍 빠져 나가자는 마음으로 굳혔다.

**

“으, 추워. 여기 왜 이리 추운 것이야? 이보게. 여기 불 좀 더 피워 주게.”

군산부인은 낯선 곳에 와 있는데도 전혀 걱정이 안 되는지 추운 몸에 더 신경에 섰다.

“조용히 있으시오. 여기가 그네들의 안방인줄 아시오?”

판문 앞을 지키고 있는 군졸이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야박하기는. 여 좀 보게, 나무가 다 타 가지 않은가.”

화로에 담긴 나무가 숯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핫, 나 참…….”

‘덜컹.’

“가서 나무를 가져 더 가져 오너라.”

“부제학 영감.”

군산부인과 군졸 간에 신경전이 오가려는 순간, 판문이 열리며 어담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담후의 출현에 군산부인과 조 행수는 말똥히 그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대, 대제학 대감이 아니시네…….”

군산부인은 의금부로 압송되어 처음 심문을 받았던 서하도가 아닌 낯선 이가 나타나자 순간 불안해진다.

“…….”

어담후는 두 부부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아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오기 전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였는데도 저 아래에 있는 화가 자꾸만 올라오려한다. 특히나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해 볼까, 저에게 어색한 미소를 내비치고 있는 군산부인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마저 나온다.

“저희는 영상대감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저희 같은 아랫사람이 어찌 영상대감 같은 높은 분의 명을 어기고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부디 그 점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 불안감이 들었느냐 듯이 군산부인은 뚫린 입으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어담후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입을 놀리고 있는 군산부인을 반히 쳐다보았다.

“쇤네가 얼마나 딸아이를 아끼었는데요. 금이야 옥이야 알뜰히 키워놨더니 한순간에 양녀로 달라하시니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흐윽.”

군산부인은 옷고름으로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으며 모정(母情)을 읊었다.

그녀가 다른 건 몰라도 딸에 대한 사랑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하는 것이었다.

“…….”

“양녀가 되지 않았으면 중전마마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 했으면 이리 폐서인도 되지 않았을 터인데…… 흐흐윽.”

어담후가 제 말에 반응을 하지 않자 군산부인은 더욱더 울음소리를 섞어가며 말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