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다운 유언장이다. 긴 말을 싫어했던 생전처럼, 유언장도 간단했다. 한마디로 능력 있는 아들에게 회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유언장에 태민의 얼굴은 슬쩍 구겨졌고, 윤 여사의 얼굴에는 잠시 잠깐 미소가 스쳤다. 담담하게 유언장을 보던 태석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튀어 나올 법도 하겠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유언장이 공개 되었으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재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치인도 아니고 기업인에게 부인의 내조가 뭐 필요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정치인 못지않게 부인의 내조가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기업인들이다. 자선 행사에는 모두 기업인들의 부인들이 나서서 하는 부분들이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좀 더 기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도움 역할을 해 줘야 하는 것이 바로 그녀들이다. 가끔 언론에도 노출하며 남편을 청렴한 기업인으로 칭송하며 착한 기업 이미지 창출에 이바지하는 것 역시 부인들이다. 그것도 대놓고 노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해야 한다. 우리 사람들은 드러나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숨겨져 있는 것을 엿보는 걸 더 좋아하는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어쨌든 내조 역할이 톡톡히 필요한 아버지에게 새 어머니는 당연했다. 그리고 어머니 못지않게 새 어머니는 그 역할에 충실했다. 가끔은 요부 짓을 하고, 가끔은 눈치 없는 첩 행세를 한 통에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충실했다. 그건 외면하고 싶어도 명백히 증거로 내 밀수 있을 정도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두 번째 부인에게 아버지는 적절한 태도를 취했다. 본처보다 과하게 아끼거나 하지 않았다. 처음엔 돌아가신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아버지의 마음이 새어머니에게 딱 그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