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지금 선우는 너무도 두려운 만큼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기껏 스무 세 살의 나이에 결혼과 아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웠다. '선우는 윤정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학교 도서관 앞 의자에 무너진 듯 주저앉았다. 그 곁에 윤정은 두 뺨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윤정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알지만 선우는 선뜻 그녀에게 무어라 말해야 될지, 초토화되어 버린 머릿속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혼란스러워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윤정이 자신의 곁에 앉자 무의식적으로 몸을 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윤정을 본 선우는 조소로 인해 입술이 비틀렸다.'“이, 이 일을 우, 우리끼리 해결하자.”'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윤정을 안심시키고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깊이 박힌 딱딱하고 더듬거리는 선우의 말에 윤정은 한 남자로 인해 지금까지 안아왔던 신뢰감, 믿음이 한 순간에 무의미한 먼지가 되어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에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얼음처럼 차가운 대못이 가슴에 텅텅 박히는 정신이 혼미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그의 어물쩍한 태도. 윤정은 마음속 깊이 원망이 차고 있었다.'“겨우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거야?”'윤정의 따갑고 원망의 눈길을 느낀 선우는 자세를 바로잡았다.'“윤정아,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난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날 믿어.”'“저버린다고?”'윤정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선우 씨, 설마 이 아이를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지?”'여자의 직감으로 짚고 넘어오는 윤정, 선우는 거짓말을 꾸며 댈 생각은 없었다. 그저 최대한 그녀가 기분상하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뇌 회전에 자신을 맡기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우리 여건에서는…. 내 말은, 언젠가 우리가 결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어. 난 학교를 졸업을 해야 하고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는 몰라도 아직은 아기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어.”'윤정은 헛웃음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그의 물음에 달리 선택이란 없었다. 하지만 윤정은 그가 뭔가 말해주길 기다렸다. 마지막 희망을 조그맣게 쥐면서 말이다. '그 또한 윤정이 의견을 제시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답답한 투로 말을 이었다.'“그 아일 낳을 생각은 아니지?”'뚝. 눈물이 떨어졌다. 윤정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가 자신 곁에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선우는 급히 그녀를 따라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윤정아.”'윤정은 그의 손을 벌레라도 되는 양 진저리치며 몸을 뒤로 물렸다.'“어떤 생각인지 알아들었어.”'그를 그렇게 세워두고 그녀는 교정을 뛰어나갔다.'‘제기랄.’'임신이라니……. '